“엘리자베스 장례식을 마지막으로 TV 시대도 끝났다” NYT

  • 뉴시스
  • 입력 2022년 9월 20일 10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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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여왕이 세계에 널리 알려진 것은 TV를 통해서다. 여왕 재임 70년 기간은 현대 TV 시대와 정확히 일치한다. 1953년의 대관식은 전세계 동영상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19일(현지시간)의 장례식의 전면 칼러 동영상을 전세계 수십억명이 시청했다.

이와 관련 미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여왕의 장례식이 영국 왕실과 TV라는 제도의 마지막을 장식한 장면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나는 보여져야만 신뢰받을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왕실의 현대적 의무를 강조한 발언이다. 보여지지 않는 누구라도 사랑을 받든 미움을 받든 할 수가 없다. 여왕의 권위는 더 이상 제국 함대가 아닌 TV를 통해 구축돼야만 하는 것이다. 여왕은 TV를 통해 영국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지난 번 조지 6세의 장례식은 TV 중계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장례식이 처음 중계된 것이다. 여왕은 새로운 위력을 가진 방송을 통해 결의에 찬 젊은 표정으로 세계 무대에 등장했다. 여왕은 보석달린 왕관을 자주색 방석 위에 놓아두면서 시각적 상징으로만 남겼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놓인 여왕의 관을 아래로 보면서 촬영한 장면이 방영됐다. 이어서 수많은 각국 지도자들이 등장했고 수많은 군중이 윈저궁으로 따라 움직이면서 꽃을 바쳤고 코기들도 뒤를 따랐다.

TV는 아무런 설명없이 현장 상황을 장시간 중계했다. BBC 방송은 골프 중계하듯 침묵을 지키면서 관이 포차에 실리는 것을 전하면서 화면 아래에 설명만 삽입했다.

미국의 상업 TV들은 장면 사이사이에 역사와 분석을 끼워넣었다. 영국에 보도국을 설치했고 이중 폭스 TV는 해리 왕자와 메컨 마클이 언론에 등장한 걸 논평했다. “왕실 평론가”들이 장례식 절차와 왕관과 홀, 보주의 재료와 상징성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TV들조차 장례식 동안 조용해졌다. 카메라들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비추고 찬송가가 울렸으며 왕실 보석들을 부각시키고 “신이시여 왕을 보호하소서”라는 기묘한 영국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찰스 3세가 지은 엄숙한 표정을 방송했다. 마침내 여왕의 관이 옮겨지는 동안 참석자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며 존경과 관광객으로서 호기심을 표시했다. 이 모든 장면들은 우리 모두 보고 싶어했던 것들이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는 전에 없이 대중에 낱낱이 공개됐다. 좋은 모습이든 나쁜 모습이든 빠짐없이 말이다. 1953년 영국인들이 여왕의 즉위식을 보려고 TV를 사면서 TV 시대가 도래했고 대중들이 상류층만이 누리던 장면을 볼 수 있게 됐다.

덕분에 왕실과 대중 사이의 관계가 변화했다. 과거 대관식에서 제사장은 신의 축복을 통해 왕실이 신과 유일하게 연결된 존재임을 알렸다. 그러나 이 모든 장면이 공개되면서 통치자와 대중의 관계가 협상의 관계로 바뀌었다.

젊은 여왕은 카메라가 들이대는데 반대했다. 윈스턴 처칠 총리는 대관식이 “극장 공연”처럼 되는 걸 우려했었다. 그러나 여왕은 선조 크누트 대왕(11세기 덴마크와 잉글랜드의 왕이었던 인물)과 달리 대세를 거스를 수 없었다.

TV는 왕실의 신비를 훼손했지만 이미지를 확산해 식민지가 줄어드는 와중에도 여왕의 영역을 넓혔다. 전세계에 다른 왕정이 많지만 윈저 왕실 만큼 TV의 각광을 받는 왕실은 없었고 여왕은 여러 세대에 걸친 리얼리티-TV 드라마의 주연이었다. 왕실의 스캔들, 결혼, 사망이 여왕을 전세계적 셀러브리티로 만들었다.

대관식이 전세계에 미친 파장은 더 있다. 대관식은 TV가 가정에 보급되기 시작한 시대에 이뤄졌다. 1953년 미국과 유럽 모두 실황중계는 할 수 없었으며 CBS와 NBC가 비행기로 대관식 촬영 필름을 실어나르는 경쟁을 벌였다. 비록 캐나다 CBC 방송보다는 한발 늦었지만 말이다.

대관식 다음날 NYT는 “국제 TV의 탄생”이라는 제목으로 대관식을 보도했다. NBC 방송이 대관식을 라디오로 중계하면서 내보낸 화면이 침팬지 마스코트였던 것은 쇼비지니스의 탄생을 알린 것이었다. 당시 대관식의 하일라이트였던 축성장면은 빠졌지만 2022년 현재에도 대중들은 이를 신성한 의식으로 여겨 공개되지 않는 것을 당연시한다. 원했다면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을 것이다.

여왕의 장례식 모든 장면이 중계됐다. 스코틀랜드 밸모럴성에서 런던까지 유리상자 속 관이 옮겨지는 장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조용히 놓여 있는 관을 여러 각도에서 지켜볼 수 있었으며 당시의 침묵을 깨는 건 아기의 울음소리와 경호대의 기침소리 뿐이었다. 여왕의 손자들 표정까지 빠짐없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왕의 재임기 70년 동안 TV도 독점력을 잃었다. 역사상 가장 많이 시청됐다는 TV 장면은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SNS)를 통해 공개된 덕분이었다.

여왕과 특정 매체 사이의 결합은 더이상 볼 수 없게된 현상이다. 영국인 모두가 왕정을 지지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여왕은 분열된 나라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존재였다. TV가 분열된 대중이 동시에 하나의 장면을 보도록 만들었다.

왕실 평론가 티나 브라운이 CBS에서 “여왕만큼 다시 사랑받을 사람이 있을까?”라고 말했다. 내년에 있을 찰스의 대관식이 이번처럼 전세계적 이벤트가 될 수 있을까? 다른 사건들은?

19일의 장례식은 2개의 시대가 마감됐음을 상징한다. 왕정이 다스린 농경시대와 TV가 좌지우지한 전세계 시청자들의 시대 말이다.

미국 TV들은 비공개된 매장 장면을 제외한 장례식의 모든 장면을 중계했다. TV들이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의 마지막 구경거리를 누렸다. 이제 여왕은 대중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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