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 열리는 제 77회 유엔총회 일반토의가 20일(현지시간) 막을 올렸다.
첫날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프랑스, 일본, 독일, 튀르기예, 이탈리아, 브라질 등 총 35개국 정상이 연설에 나서 세계적 위기 상황에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한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거의 모든 이슈를 선점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사무총장이 “우리 세계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경고로 시작한 데 이어 프랑스 폴란드 등 유럽은 “겨울이 오고 있다”며 러시아를 강력히 규탄했다. 반면 브라질, 세네갈 등 제3 세계는 식량위기를 우려하며 러시아 제제를 일부 풀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등 미묘한 온도차를 보였다. 또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리는 일본은 상임이사국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유엔 내 일본의 역할 확대가 필요함을 내비쳤다.
● 마크롱 “러, 제국주의의 귀환”, 기시다 “안보리 개혁”
러시아 규탄에 가장 목소리를 높인 정상은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러시아를 “제국주의”로 지칭하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침략과 영토 병합을 위해 우리의 집단적 안보를 깼다”고 외쳤다. 이어 “우리가 2월 24일(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일) 목격한 것은 제국주의와 식민시대의 귀환”이라며 중립을 지키는 국가들을 향해 “그들은 역사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오늘날 침묵을 지키는 국가는 신제국주의에 공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주어진 15분의 두 배인 30분을 연설에 쏟았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폴란드인은 러시아의 침공이, 테러가 어떤 의미인지 2차 세계대전 때부터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이 전쟁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다. 세계는 이를 그냥 두고 보면 안 된다”며 러시아를 비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러시아를 겨냥해 “힘이 아닌 규칙에 근거한 세계 질서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며 이를 위해 “유엔과 안보리 개혁이 필요하다” 강조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안보리 상임이사 체제를 바꿔 일본이 상임이사국이 돼야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서방세계 간 중재자를 자처하는 레젭 타입 에르도안 튀르기예(옛 터키) 대통령은 “이 전쟁에는 누구도 승자가 없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고 언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에 대해 “터키가 러시아 중재에 전하는 메시지의 힌트가 됐다”고 평가했다.
● 브라질 “러 제재 유연해져야”…서방과 온도차
러시아를 강력하게 규탄한 유럽, 일본 등 서방 진영과 달리 브라질, 세네갈, 요르단 등 제 3세계는 식량위기가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유엔총회 관례대로 가장 먼저 연설자로 나선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우리는 러시아로부터 비료를 사들이고 있다. 공급망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선 식량 부문 등에 대해선 금융 제재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은 러시아를 언급하지 않았지만 “개발도상국은 배가 고픈 채 침대에 들고 있다”며 식량 위기가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라고 밝혔다. 마키 살 세네갈 대통령은 “아프리카는 어느 한 쪽 편을 들어야 하는 압력을 받고 있다”며 신 냉전 세계 질서를 우려했다.
이미 이번 유엔총회에 중·러 정상이 참여하지 않는 등 세계질서가 신 냉전으로 가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최근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에는 참석했지만 이번 유엔총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이란도 SCO 가입을 밝힌데 이어 튀르기예의 에르도안 대통령도 중·러가 주도하는 SCO 가입을 저울질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자유와 연대로 위기를 극복하자”며 11분 간 연설했다. NYT는 “윤 대통령은 (러시아, 중국, 북한 등) 특정 국가를 언급하지 않았다”면서도 “NYT와의 인터뷰에서는 북핵 위협에 대한 한미일 공조를 언급했다. 최대 무역 파트너인 중국을 겨냥한다는 데에는 신중했지만 최근 중국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윤 대통령 발언 당시 북한 대사 자리는 비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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