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착용 여성 의문사’ 항의 번져
‘독재자에게 죽음을’ 구호도 외쳐
이스탄불 등 해외서도 동조시위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후 16일 수도 테헤란에서 의문사한 22세 이란 쿠르드족 여성 마사 아미니 사태로 이란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20∼21일(현지 시간) 테헤란을 비롯한 15개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대가 히잡과 이란 국기 등을 불태우고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규탄하며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란 구호를 외쳤다.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에는 시위 참여 여성들이 히잡을 불태우는 영상이 올라왔다. 시위대 일부는 “억압의 상징(히잡)을 불태웠다”고 외치거나 스스로 머리까지 잘랐다. 시위대가 이란 국기를 태우며 반정부 구호에 맞춰 박수를 치거나 환호하는 영상도 돌고 있다. 20일 튀르키예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도 여성 시위대가 아미니 사진을 들고 이란 정부를 비판했다.
이란 당국은 “아미니가 심장마비로 자연사했다”는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경찰의 잔혹한 폭력에 희생됐다는 증언이 속속 등장해 시위대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시위대 사상자는 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19일 아미니의 고향인 북서부 사케즈에서 보안군이 시위대에 발포해 최소 4명이 숨졌다. 이란 당국은 이를 부인하며 “시위대가 이란 경찰이 사용하지 않는 무기에 의해 사망했다”면서 테러조직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당국은 이날까지 적어도 1000명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이번 사태는 이란에서 고조되던 히잡 강제 착용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만 9세 이상 여성에게 공공장소에서의 히잡 착용을 강제하고 있다. 히잡은 얼굴만 내놓고 머리에서 상반신 윗부분까지 가리는 이슬람 여성 전통 복장이다. 아랍어로 ‘가리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이슬람 경전 ‘코란’에 나올 정도로 역사도 길다.
특히 이슬람 전통 복장 위반을 단속하는 ‘도덕 경찰’ 조직을 만들고 사실상 무제한 체포 및 구금 권한을 부여해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의 마구잡이식 단속으로 적지 않은 여성이 징역형 선고, 해고, 폭력 등에 시달렸다. 아미니 역시 13일 테헤란에서 도덕 경찰에 체포돼 구금된 끝에 숨졌다. 일부 시위대는 “이번 기회에 도덕 경찰을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 비판도 커지고 있다. 나다 알나시프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부대표는 20일 스위스 제네바 유엔 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아미니가 도덕 경찰이 휘두른 지휘봉에 머리를 맞고, 차량에 머리를 부딪혔다는 보고가 있다”며 이란 정부에 신속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이란 당국이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지만 제대로 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쿠르드족인 아미니 사망을 계기로 이란을 비롯한 중동 일부 국가의 고질적인 소수민족 차별도 도마에 올랐다. 세계 각국의 쿠르드족 밀집 지역에서도 동조 시위가 이어졌다.
히잡(Hijab)
얼굴만 내놓고 머리에서 상반신 윗부분까지 가리는 이슬람 여성 전통 복장. 아랍어로 ‘가리다’라는 뜻. 이슬람 경전 ‘코란’에도 나올 정도로 역사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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