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0일 처음 열린 제77회 유엔총회에서 서방 정상들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핵심 주제로 거론하며 러시아를 겨냥했다. “세계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는 안토니오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경고’에 이어 연단에 오른 서방 주요국 수반들은 “겨울이 오고 있다”며 러시아 비판에 한목소리를 냈다. 이번 유엔총회를 계기로 러시아를 아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퇴출론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 佛 마크롱 “러시아 제국주의 귀환”
이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침략과 영토 병합을 위해 (유엔) 집단안보를 깼다”면서 “우리가 2월 24일 목격한 것은 제국주의와 식민시대의 복귀”라고 지적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쟁에 중립을 표방하는 국가들을 향해 “그들은 역사적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침묵을 지키는 국가는 신제국주의에 공조하는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한 폴란드 안제이 두다 대통령은 “폴란드인은 러시아의 침공이, 테러가, 어떤 의미인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이 전쟁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다. 세계는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된다”며 러시아를 비판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도 “힘이 아닌 규칙에 근거한 세계 질서가 자리 잡아야 한다”며 러시아를 우회적으로 비난했다. 그동안 러시아와 서방의 중재자를 자처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마저 “이 전쟁에 누구도 승자는 없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를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튀르키예의 중재 메시지가 주는 힌트를 알게 됐다”고 평했다.
○ “안보리에서 러시아 퇴출하자”
더 나아가 미국 등 서방은 현재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5개국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확대하고 러시아를 퇴출하자는 안보리 개편론을 잇달아 내놓았다. 거부권(비토)을 쥔 러시아, 중국의 반대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 결의안, 대북 제재 결의안 등이 무산되면서 분출된 ‘유엔 무용론’의 연장선상이다. 경제력을 앞세워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려 온 일본과 독일이 ‘러시아 퇴출론’의 총대를 멨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조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구테흐스 사무총장 및 주요국 지도자와의 회담에서 안보리 개혁 관련 논의를 한다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한 상임이사국(러시아)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며 유엔 안보리를 뒤흔든다는 것을 전 세계가 알고 있다. 러시아가 경로를 바꾸도록 세계가 연대해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20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엔 헌장에 명시된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들었다. 이제 안보리 개혁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유엔 안보리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제때 대응하지 못했으며 세계 평화를 지키려면 유엔의 변화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독일이 상임이사국이 되어 유엔에서 더 많은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는 물론 북한 시리아 등의 인권 탄압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유엔 안보리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유엔 안보리는 임기 제한 없는 5개 상임이사국과 2년 임기의 10개 비상임 이사국으로 구성된다. 거부권이라는 큰 권력을 행사하는 현 상임이사국들의 횡포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제기됐지만 각국의 엇갈린 이해관계 등으로 개혁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일본 독일 인도 브라질은 1990년대부터 ‘주요 4개국(G4) 그룹’을 형성해 안보리 권력 분산을 주장했지만 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과 독일이 상임이사국이 된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 적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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