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러시아 점령지에서 러시아 협력자 색출작업이 진행, 현지 주민들이 갈등하고 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2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지움에 사는 이나 만드리카는 러시아 당국자들로부터 점령지 학교를 재개하고 러시아어를 가르치면 교장으로 승진시켜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만드리카는 생각해볼 것도 없이 “거절했다.” “러시아 커리큘럼에 따라 가르치는 것은 범죄”라는 것이다. 얼룩말과 곰 그림으로 장식돼 있는 학교는 지금도 닫혀 있다.
반면 이리나 오베레드나는 다른 선택을 했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가족들을 먹여 살릴 돈이 필요했다고 했다. 러시아 남서부 쿠르스크로 가서 러시아 커리큘럼 교육도 받았다.
이지움을 탈환한 우크라이나군이 진퇴양난의 까다로운 판단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 점령군 협력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일이다.
러시아군은 패퇴하면서 고문실과 집단 매장지를 남겼다. 점령 치하의 우크라이나인 수천명이 우크라이나법이 처벌 대상으로 정한 협력범죄자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협력 여부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의사, 소방수, 상하수도 설비 회사 직원들은 마을을 유지하는데 필수 요원이라는 이유로 반역자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찰관, 현지 당국 근무자와 일부 교사들은 협력자로 분류한다.
이중 교사들 문제가 특히 까다롭다.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은 러시아의 지시를 따르는 교사들을 맹비난해왔다. 우크라이나의 정체성과 언어를 훼손하려는 전쟁에 동의하고 우크라이나의 국가 존재를 부정하는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부 내에는 러시아 당국에 협력한 교사들에 대한 적개심이 팽배하다. 교육 옴부즈맨 세르히 호르바초우는 협력한 교사들은 적어도 신뢰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우크라이나 어린이들과 절대 함께 할 수 없다. 이들은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했다.
점령지에 있는 학교가 여전히 1200곳에 달한다. 우크라이나군이 탈환한 지역 내 학교는 모두 65곳이다. 이들중 절반 가량이 지난 1일 러시아 커리큘럼에 따른 교육을 시작했고 이에 참여한 교사는 약 200명이라고 우크라이나 검찰이 밝혔다.
하르키우 지역 검찰의 볼로디미르 리마르 검사보는 모두를 체포하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얼마나 적극적으로 협력했는지를 따져서 처벌 수위를 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사들 문제는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19세기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가득했던 이지움은 지금 폐허가 됐다. 우크라이나군이 진주하자 주민들이 집에서 만든 만두를 들고 맞이했고 끌어안았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주민들은 해방돼 안도한다며 울먹인다. 그러나 이들은 점령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 했던 협력을 단죄한다는 말에 발끈한다. 이런 분위기는 탈환지역 전체에 팽배해 있다. 분열과 불신이 퍼져나가고 있다.
일부 우크라이나 주민들이 러시아 벨고로트로 탈출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에 의한 보복이 두렵다면서다. 공격적인 소셜미디어 캠페인이 지역 주민들을 매도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2월 러시아군이 점령한 지 몇 주만에 주민들은 공포 속에 살았다고 했다. 길거리에 시신이 방치됐고 건물이 파괴되고 러시아 병사들이 순찰했다. 주민들은 폭격을 피해 지하실로 대피해야 했다. 주민들은 얼마 안가 마음에 들지 않는 선택을 해야 했다.
러시아어 교육을 거부했다는 러시아 문학 교사 옥사나 흐리조둡은 “누구나 결정을 해야 했다”면서 자신은 협력한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했다.
교사들은 대부분 러시아군이 점령하기 전 탈출하거나 러시아 커리큘럼 교육을 거부했다. 월급을 포기하고 마당에서 채소를 기르거나 다른 주민들이 나눠주는 음식으로 연명했다.
러시아 교육을 거부한 발락리야의 생물·지리·화학 교사 스비틀라나 시도로바는 “모든 교사들이 강요당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일부는 자의에 따라 협력했다. 경찰이 개개인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숨어 지내며 압박을 피한 사람도 있다. 영어 교사 이리나 샤포발로바는 점령기간 내내 집에 머물러 들키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운이 좋았다”면서 “아이들과 함께 숨어 있었다”고 했다.
학교로 복귀했던 오베레드나는 자신은 조금만 협력했다고 했다. 처음엔 양심의 가책을 거의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지난 6월 고등학생들의 졸업식을 위해 문화관의 파편을 치우는 일부터 참여해 식량 배급을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배급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축하받도록 하려고 일했다고 했다. 뒤에 러시아 점령 당국이 문화관 청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개교를 요청하면서 먼저 쿠르스크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해 동의했다고 했다. “점령이 몇 년 계속되면 어찌되는 거지요? 아이들은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 커리큘럼이 특별히 정치적이지는 않았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러시아 시인 코르네이 추코프스키와 미하일 프리슈빈을 가르치도록 돼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밖에는 일반적인 교사 지침서였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살기 위해서였다. 겨울에 살아남으려면 먹을 것이 있어야 했다. 먹기 위해선 일을 해야 했고 일을 하려면 교사교육을 받아야 했다”고 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교사들만 러시아에 협력한 것이 아니다. 세르히 살티우스키는 자기 밴으로 시신들을 옮긴 대가로 스파게티와 소고기 통조림이 든 배급을 받았다.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폭격이나 총격으로 숨진 사람들이 마당이나 공원에 깊지 않게 묻어 놓았었다. 날씨가 더워지자 러시아측이 마을 밖 소나무 숲으로 이장해달라고 했다. 이곳은 지금 400구 이상이 집단 매장된 곳으로 전쟁범죄 조사가 진행중이다.
살티우스키는 자신이 잘못한 게 없다고 했다. “마을을 무덤으로 만들 수는 없지 않느냐? 여자와 아이들이 있어 힘들었지만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었나?”고 했다.
그는 배급을 받아서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해방 뒤 대가를 치르고 있다. “사람들이 이제 와서 ‘그가 협력자’라고 손가락질을 한다”고 했다.
이지움 아파트 관리소장 예레나 예브메노바는 인도주의 지원을 받기 위해 주민 명단을 러시아 당국에 넘겼다. 그는 사람들을 살려야 했다며 전혀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러시아가 준 소고기 통조림을 먹었다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오베레드나는 학교가 문을 연 직후에 우크라이나군 공격이 시작됐기 때문에 자신이 우크라이나 학생들을 실제로 가르치진 않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가르치는 게 내 일”이라고 했다. 전쟁을 겪으면서 학교 생활이 복원되기를 고대했다고 했다. “교실을 떠난 나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도 했다.
그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누가 협력했고 적을 도왔다고 말하다가 지금은 모두가 ‘당신은 주민들의 적’이라고 한다고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