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무장 군인들이 병합투표 강요”… 투표지 안 접고 투명함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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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 새 국면]
우크라 4개 점령지서 투표 진행… 러, 결과 나오는 30일경 편입 추진
“점령지 공격은 러 공격” 핵사용 시사… 바이든 “대러 추가제재 논의할 것”
G7 정상들 “가짜 주민투표 무효”… 中도 러 투표에 부정적 “주권 존중을”

러, 점령지 4곳서 병합 주민투표… ‘찬성’ 투표용지 접지도 않고 투명함에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출신 여성이 2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러시아 남서부 크라스노다르의 임시 투표소에서 도네츠크 지역의 러시아 병합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병합에 찬성한다는 뜻으로 ‘예’라는 부분에 기표(점선 안)한 투표용지를 접지도 않은 채 
안이 훤히 보이는 투명 투표함에 넣고 있다. 투표함 앞면 중앙에 친러 세력이 설립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약자 ‘DNR’를 뜻하는 
러시아어 ‘ДНР’가 쓰여 있다. 러시아는 27일까지 점령지 4곳의 러시아 병합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진행한다. 
크라스노다르=AP 뉴시스
러, 점령지 4곳서 병합 주민투표… ‘찬성’ 투표용지 접지도 않고 투명함에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출신 여성이 2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러시아 남서부 크라스노다르의 임시 투표소에서 도네츠크 지역의 러시아 병합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병합에 찬성한다는 뜻으로 ‘예’라는 부분에 기표(점선 안)한 투표용지를 접지도 않은 채 안이 훤히 보이는 투명 투표함에 넣고 있다. 투표함 앞면 중앙에 친러 세력이 설립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의 약자 ‘DNR’를 뜻하는 러시아어 ‘ДНР’가 쓰여 있다. 러시아는 27일까지 점령지 4곳의 러시아 병합 찬반을 묻는 주민투표를 진행한다. 크라스노다르=AP 뉴시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을 자국 영토로 병합하기 위해 23일(현지 시간)부터 진행 중인 주민투표에서 투명 투표함을 사용하고 무장한 군인들이 투표를 강요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비밀투표 등 투표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을 뿐 아니라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 러시아가 병합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이들 점령지 편입이 결정되면 “점령지 공격은 러시아 (영토) 공격으로 간주하겠다”며 핵무기 사용까지 시사하는 등 확전 의지를 밝히고 있어 전쟁은 국면 전환의 중대 기로에 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가혹한 경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러, 투명한 투표함에 투표 강행

24일 로이터통신과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에 따르면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세력이 장악한 우크라이나 동남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주, 남부 자포리자와 헤르손주에서 27일까지 진행되는 러시아 편입 찬반 주민투표 결과는 30일경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AP통신이 촬영한 영상에는 루한스크 주민 여러 명이 개방된 장소에 모여 투표한 뒤 투명 투표함에 투표용지를 넣는 모습이 포착됐다. 로이터가 촬영한 도네츠크주 마리우폴시 투표 영상에도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접지 않고 투명한 플라스틱 투표함에 넣는 모습이 찍혔다. 병합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가 다 드러나는 것이다.

투표를 강요하는 정황도 나타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 세르히 하이다이 루한스크 주지사는 AP통신에 “총(위협) 아래서 투표가 진행되는 것 같다”며 “러시아 당국이 투표 기간 주민들이 도시를 떠나는 것을 금지하고 무장한 군인들이 가택을 수색한 뒤 투표에 참여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지원한 지방 관료들이 무장병력을 보내 러시아 합병에 반대한 유권자의 이름을 적으려고 한다”고도 했다.

러시아가 투표를 염두에 두고 점령지 주민들에게 구호물품을 대가로 개인정보를 수집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크라이나군이 최근 탈환한 동북부 하르키우주 발라클레아 주민들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러시아는 주민들에게 여권과 우크라이나 신분증을 요구해 복사한 뒤 스파게티 한 봉지와 쇠고기 통조림 몇 개를 지급했다”고 말했다. 점령 지역 주민들에게 생활필수품을 미끼로 개인정보를 빼내 선거 조작 등에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기를 든 시위대가 1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근처 붉은 광장에서 점령지역 병합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모스크바=AP/뉴시스
러시아 국기를 든 시위대가 11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 근처 붉은 광장에서 점령지역 병합 국민투표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모스크바=AP/뉴시스


○ 中, 러 병합 투표에 부정적 시각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24일 병합 지역 보호를 명분으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유엔총회 연설 후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 병합 지역 방어를 위해 핵무기를 사용할 근거가 있느냐’는 질문에 “러시아 헌법에 추가로 명시된 영토를 포함한 러시아 영토는 국가의 완전한 보호 아래 있다”고 밝혔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러시아 국가 두마(하원) 의원은 “러시아 편입 승인이 이르면 30일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편입 승인 절차에 직접 참석할 것 같다고도 전했다. 타스통신은 점령지 주민투표에서 편입 찬성이 우세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국제사회는 반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러시아 주민투표는 가짜”라며 “러시아에 추가 국제은행간통신협회 결제망 (차단) 및 막대한 경제 비용을 안기는 제재를 논의하겠다”고 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도 “러시아와 괴뢰 정부가 오늘 시작한 가짜 주민투표는 법적 효력이나 정당성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도 우크라이나 주권 존중과 영토 보전을 강조하며 주민투표에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22일 미국 뉴욕에서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각국 주권과 영토의 완전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장위구르 티베트 등에서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가 벌어질 경우를 우려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점령지#영토 병합#러시아 주민투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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