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파시스트 지도자 베니토 무솔리니(1922∼1943년 집권) 이후 100년 만의 ‘극우 총리’이자 사상 첫 ‘여성 총리’ 등장이 확실시된다. 정치권 변방에 있던 극우 정당이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에서 집권에 성공하며 유럽 정치에 대격변이 예상된다. 고물가로 신음하는 유럽에 포퓰리즘을 앞세운 친러 성향의 극우 세력들이 약진하면서 러시아 제재 전선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26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공영방송 라이(Rai)가 발표한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탈리아 조기 총선에서 극우 정당이 주축이 된 우파연합이 45% 득표할 것으로 예상돼 선두를 차지했다. 우파연합은 하원 400석 중 227∼257석, 상원 200석 중 111∼131석 등 상·하원 모두 과반 의석 차지가 유력하다.
우파연합은 조르자 멜로니 대표(45·사진)의 극우 정당 ‘이탈리아형제들(FdI)’과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이 대표인 극우 성향 ‘동맹(Lega)’,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설립한 중도우파 성향 ‘전진이탈리아(FI)’가 연합했다. 우파연합에서 득표율이 가장 높은 FdI의 멜로니 대표가 총리직을 맡을 것이 유력하다. 멜로니 대표는 15세에 무솔리니 지지자들이 창설한 네오파시스트 성향의 정치 단체 이탈리아사회운동(MSI) 청년 조직에 가입해 정치에 뛰어든 극우 성향 정치인이다. ‘여자 무솔리니’로도 불린다.
유럽 극우세력, 경제난 불만 파고들며 약진… 伊정권도 삼켰다
反난민-反EU 앞세운 극우물결 伊로… 멜로니 우파연합, 상하원 과반 유력 스웨덴 총선서도 원내 제2정당 부상… 佛 극우정치인 르펜은 차기대권 노려 “인플레-불평등-이민이 절망 심어줘”… 伊 친러성향 정권 등장에 서방 긴장 러와 관계 개선땐 대러제재 흔들려
프랑스 스웨덴 헝가리 등에서 맹위를 떨친 극우 세력이 이탈리아에서 집권에도 성공하면서 유럽 정치 지형이 요동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와 식품 가격이 치솟자 양극화에 지친 서민층을 중심으로 반(反)난민, 반유럽연합(EU)을 외치고 기존 정치권을 비판하며 포퓰리즘 정책을 앞세운 극우 세력에 표심을 내줬다. 이탈리아 극우 세력은 친(親)러시아 성향이어서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중심의 대러시아 제재 전선에 균열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인플레와 양극화에 유럽 극우 열풍
25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조기 총선 출구조사 결과 극우 세력이 주축인 우파연합이 상·하원 과반 의석을 차지할 것이 유력하다. 우파연합을 이끄는 이탈리아형제들(FdI) 조르자 멜로니 대표(45)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극우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극우 물결은 이탈리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1일 스웨덴 총선에서는 네오나치 세력이 만든 극우 스웨덴민주당이 집권 사회민주당에 이어 원내 제2정당이 됐다. 1988년 설립 후 2010년에야 원내에 입성했을 정도로 유권자 지지가 미미했지만 이후 집권당에 맞먹는 수준으로 세를 불렸다. 26세인 2005년 대표로 선출된 후 17년간 당을 이끈 임미 오케손 스웨덴민주당 대표(43)는 극우 색채를 희석해 지지층을 넓혔다.
프랑스 대표적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54)도 집권을 노리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 프랑스 극우 정치인 중 최초로 결선 투표에 진출했다. 올 4월 대선에서도 한때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재선을 위협할 정도로 지지율이 올랐다.
2010년부터 집권 중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59)도 대표적 극우 정치인이다. 그는 “유럽인과 비(非)유럽인이 섞인 국가는 국가도 아니다”라며 극단적인 인종주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까워 EU 차원의 러시아 제재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9년 스페인 총선에서도 극우 정당 ‘복스’가 집권 중도좌파 사회당, 중도우파 국민당에 이은 제3당으로 약진했다.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도 2017년 총선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연방의회에 입성했다.
극우의 부상엔 최근 극심해진 인플레이션과 양극화가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닉 치즈먼 영국 버밍엄대 교수(정치학)는 “식품 및 연료 값 상승, 불평등 증가, 계층 이동 감소, 이민(난민) 등이 절망을 심어주고 있다”며 극우 지도자들이 이를 쉽게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伊도 국가 부채-경제난에 민심 돌아서
특히 이탈리아는 그간 좌우 정부 모두 포퓰리즘 정책으로 재정을 풀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150%일 정도로 나랏빚이 많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 재정 여력이 더욱 빠듯해졌다. 멜로니 대표는 강력한 재정 지출과 대대적 감세를 내걸며 여론몰이를 했다.
이탈리아 1인당 GDP는 10년 전 수준이고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최근 한국에도 역전되는 분위기다. 유럽 국가 비교를 위한 조화소비자물가지수(HICP)는 지난달 전년 대비 9.0% 상승하는 등 에너지 및 식료품 가격 급등으로 서민 고통이 가중됐다. 멜로니 대표는 이런 불만을 잘 활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러시아 제재 균열 오나” 서방 불안
멜로니 대표의 우파연합이 집권하면서 미국과 서방의 다른 주요국들은 긴장하고 있다.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가 높은 데다 우파연합 참여 정당 지도자들은 푸틴 대통령과의 친분 관계가 깊다. 이탈리아가 에너지난 타개를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한다면 대러 제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우파연합 다른 두 축인 마테오 살비니 상원의원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대표적인 친푸틴 인사다. 살비니 의원은 대러 제재가 러시아보다 유럽과 이탈리아에 더 큰 피해를 주고 있다고 공개 비판하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푸틴 대통령의 ‘20년 절친’으로 함께 휴가도 다녀온 것으로 알려졌다.
반(反)EU 행보를 보인 멜로니 대표의 성향을 고려하면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구조 개혁 등을 주문받은 이탈리아와 EU의 경제 공조도 삐걱거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루이지 스카지에리 유럽개혁센터(CER)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EU와 합의한 이탈리아 개혁 프로그램을 시행하려면 돈이 많이 들어 이탈리아의 차입 비용이 높아지고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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