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오전 일본 도쿄 지하철 한조몬역 출구.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국장(國葬)이 열리는 도쿄 부도칸 인근 구단자카 공원의 일반인 헌화대에 조문하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지하 개찰구부터 장사진을 이뤘다. 지하철역 입구에서 시작된 참배객 줄은 인근 주택가를 에워싸는 걸로 부족해 일왕(日王) 왕궁을 감쌌다. 3km 이상 이어진 줄은 시작과 끝을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7월 8일 참의원 선거 유세 중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에 앙심을 품은 42세 남성에게 사제 총을 맞고 사망한 아베 전 일본 총리의 국장이 사망 2개월 20일 만인 이날 도쿄 부도칸에서 거행된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반인 국장을 거행하는 건 1967년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 국장 이후 55년 만에 처음이다.
국장이 열린 부도칸 인근은 이른 아침부터 꽃다발을 든 참배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유모차에 3세 아이를 태우고 헌화하기 위해 온 30대 도쿄 거주 여성은 “총리 하면 아베 총리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일본을 위해 큰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가슴에 일장기와 욱일기 배지를 함께 달고 온 50대 남성은 “지금처럼 안보가 어려운 시대에 아베 총리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한국 기자라고 소개하자 “위안부, 징용공 문제에서 일본의 총리로 옳은 말을 했다”라며 옹호했다.
정오쯤, 부도칸 인근에는 국장에 반대하는 수백명의 시위대가 행진했다. ‘국장 따위는 있을 수 없다’ ‘국장 반대’ 등의 피켓을 든 시위대는 집회를 열고 정부가 개최한 국장에 반대한다고 성토했다. 시위에 참여한 70대 여성은 “정부 멋대로 국장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와 어긋난다”라며 “아베 전 총리가 해 왔던 걸 생각하면 국장은 절대 안 된다”라고 말했다. 26일 도쿄 국회의사당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에 나선 시민단체 대표 후지카 다카카게 씨는 "정당성이 없는 행위로 헌법을 짓밟는 행위"라고 밝혔다.
이날 오후 2시에 열리는 아베 전 총리 국장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아베 전 총리 유골의 식장 도착을 맞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가 연주된 뒤에 실시되는 1분간의 묵념에는 '구니노시즈메(國の鎮め)'라는 곡이 연주된다고 일본 주간 매체 겐다이비즈니스가 보도했다. 이 음악은 2차대전 당시 일본군 군가로 쓰였다. 현재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행사곡 및 자위대 의례곡으로 사용된다.
사망 2개월이 지난 뒤 국장이 열리지만 국장을 둘러싼 반대 여론이 갈수록 커지면서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26일 사설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반대론이 커지는 이상한 상황에서 국장이 실시된다. 민주 정치의 절차가 부족한 대응이 국민의 불신을 초래했다”라고 언급했다. 우익 성향인 산케이신문은 이날 칼럼에서 “아베 전 총리는 안보 구조 개혁을 진행했고 동맹국 미국과 상호방위의 틀을 마련해 신냉전의 시대를 살아가는 기반을 마련했다”라며 “국장을 비웃고 어지럽히는 행동이야말로 일본의 품격을 손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이날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이해를 얻기 위해 확실히 설명을 다 해 나가겠다"라면서도 "(국장 예산 발표의) 구체적 시기는 미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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