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감세안 열흘만에 ‘없던 일로’
英경제 살리려다 세계시장 흔들… 재무장관에 책임 전가 발언까지
집권당 내부서도 비판론 확산 “수낵으로 총리 교체해야” 주장도
지난달 6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47)가 스스로 밀어붙인 대규모 감세안을 철회하면서 집권 한 달 만에 위기에 처했다. ‘제2의 마거릿 대처’를 표방하며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등으로 난국에 빠진 영국을 구하겠다고 외쳤지만 정책 판단 실수로 세계 금융시장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비판을 받으며 국제사회에서도 체면을 구기게 됐다.
더타임스, 텔레그래프 등 주요 언론은 지난달 23일 50년 만의 최대 규모인 450억 파운드(약 73조 원) 감세안을 발표한 트러스 총리가 불과 열흘 만인 이달 3일 이 안을 전격 철회한 데에는 버밍엄의 호텔에서 긴급 소집한 각료 회의가 결정적이었다고 4일 전했다.
집권 보수당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버밍엄에 온 트러스 총리는 2일 밤부터 3일 0시까지 하이엇호텔 스위트룸에서 주무 장관인 쿼지 콰텡 재무장관 등과 마라톤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각 부처 장관 의견을 취합했을 때 대부분의 장관까지 감세안에 부정적이었다는 점을 알고 더 이상 밀어붙일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감세안 발표 후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고 국제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졌을 때도 “감세안을 계획대로 실행하겠다”고 강조했던 그였지만 내각의 반발마저 무시할 수는 없었던 셈이다. 결국 트러스 총리와 콰텡 장관은 몇 시간 뒤 날이 밝자 감세안 철회를 발표했다.
그는 철회 발표 직후 BBC방송에 출연해 “더 나은 정책 기반을 마련해야 했다”고 일종의 정책 실패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다만 이 와중에도 진행자의 발언을 여러 번 끊으며 “감세안이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란 믿음엔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후폭풍은 상당하다. 보수당 일각에서는 총리 자리를 두고 마지막까지 그와 경쟁했던 리시 수낵 전 재무장관을 추가 당 대표 경선 없이 총리직에 앉혀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트러스 총리의 사퇴를 위해 조기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청원에 이미 50만 명이 서명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원 팀’을 이뤄야 할 콰텡 장관과의 관계도 삐걱대고 있다. 트러스 총리는 BBC 인터뷰에서 감세안이 콰텡 장관의 생각이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그러자 콰텡 장관 또한 “감세안 철회는 총리의 결정이었다”며 이견을 드러냈다. 논란이 고조되자 콰텡 장관은 “두 사람 모두의 결정이었다”고 정정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BBC는 트러스 내각이 스스로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모르고 사안을 통제하지도 못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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