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이르면 이번 주 중국에 대한 고강도 반도체 수출 규제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AI), 슈퍼컴퓨터 등에 활용되는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이른바 ‘화웨이식 제재’에 나선다는 것.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중국 화웨이에 대한 제재처럼 미국 기술을 사용한 기업들이 중국에 반도체를 수출하는 것을 막겠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한국 기업들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3일(현지 시간) 반도체 규제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다수의 중국 기업과 연구소들에 화웨이식 제재가 이뤄질 것”이라며 “미국산 기술을 사용한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판매가 금지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NYT는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 접근을 막기 위한 가장 강력한 조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제재 대상 반도체 기술은 AI와 슈퍼컴퓨터, 이를 위한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고성능 그래픽카드 등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국영 반도체 기업인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YMTC) 등 다수의 중국 반도체 기업과 연구소 등에 대한 제재도 단행될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 산업 관계자는 “AI부터 메모리까지 규제의 범위가 포괄적일 경우 AI용 그래픽카드에 사용되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등을 생산하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문태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정책팀장은 “최근 반도체 재고 급증과 가격 하락 속에서 기업들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리스크로 작용할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美, 삼성-SK 첨단 반도체 中수출중단 요청 가능성… 韓 “우려”
美 반도체 對中수출 차단
中무기개발에 기술 활용 차단 목적 삼성-SK제품, AI-슈퍼컴 등에 사용… 中공장 메모리 반도체 생산도 차질 외신 “美정책, 亞경제 희생시킬것”… 韓中 반도체 기술격차 줄어들 수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중국에 수출된 첨단 반도체 기술이 무기 개발에 활용되면서 미국 국가안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반도체에 대한 대대적인 수출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인공지능(AI)과 슈퍼컴퓨터 기술이 중국의 차세대 무기 개발과 핵무기 시뮬레이션은 물론이고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이뤄지고 있는 소수민족 감시와 인권 침해에 사용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 “韓반도체 산업 성장력 꺾일 수도”
미국의 고강도 반도체 수출 규제는 중국 화웨이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제재에 활용했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적용해 미국은 물론이고 미국 기술을 활용하는 모든 외국 기업에도 주요 반도체 수출을 차단할 수 있게 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수출 규제에 따라 국내 반도체 기업들도 작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최우선 제재 대상으로 꼽히는 AI, 슈퍼컴퓨터 등에 사용되는 그래픽카드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생산하는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지난달 27일 보고서에서 “미국이 AI 반도체의 핵심 구성 요소인 고(高)대역 메모리 반도체의 주요 제조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중국에 대한 최신 규격 메모리 수출 금지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는 낸드플래시 메모리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까지 미국이 규제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8월 바이든 행정부가 YMTC 등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123단 이상의 낸드플래시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규제가 포함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국 공장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에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반도체 기업 A사 관계자는 “규제 대상으로 거론되는 고성능 반도체 생산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전체 매출로 봤을 때 비중이 작다”면서도 “중장기적으로는 키워야 할 시장이다. 미중 갈등 영향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B사 관계자는 “(한국 반도체) 산업 전반의 성장력을 꺾을 수 있는 규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韓 정부, 美에 국내 기업 우려 전달
정부는 미국과 메모리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해 협의를 갖고 바이든 행정부에 국내 기업들의 우려를 전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반도체 업계는 미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많은 우려를 갖고 있다”며 “(첨단과 저사양 반도체의) 경계선에 있는 제품과 관련해 미국 정부와 이견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수출 제한에 따라 미국 내 반도체 기업들이 매출 감소로 타격을 입고 반도체 수출 시장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대규모 추가 투자로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면 일부 반도체 시장에선 기술 격차가 빠르게 좁혀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은 3일 달러 초강세 속에 지난달 국내 기업의 반도체 수출이 지난해보다 5.7% 줄어들면서 한국이 6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낸 것을 언급하며 “미국의 첨단 제조업 부활 정책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경제를 희생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반도체과학법과 관련해 “미국의 정책이 한국과의 깊은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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