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래 러시아와 ‘에너지 전쟁’을 치르고 있는 유럽 국가들이 올겨울 대규모 정전사태(블랙아웃)까지 각오하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가 유럽연합(EU) 위기 관리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슬로바키아 외교관인 야네스 레나르치치 EU 위기관리담당 집행위원은 독일 RND 인터뷰에서 “기온이 떨어짐에 따라 자원을 보강하면서도 가능한 시나리오 두 가지를 각오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경고했다.
그가 잡은 두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란, 극히 소수의 회원국이 정전을 겪거나 다수의 회원국이 동시에 대규모 정전사태를 맞닥뜨리는 것이다.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자체 비상발전기를 포함, 타격을 입은 국가에 맞춤형으로 도움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정전사태가 더 넓게 확산할 경우 EU 집행위원회 차원의 전략에너지비축은 철회되고, 개별 회원국은 긴급 원조 전달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레나르치치 위원은 설명했다. 이른바 ‘각자도생’이다.
이 같은 언급은 EU가 오는 7일 체코에서 에너지 위기 대응 관련 비공식 정상회의를 여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에 따르면 EU는 현재 유가 상한제 실시에 대해선 합의에 도달한 상황이다.
다만 러시아산 가스 가격 상한제를 두고는 EU 27개 회원국 간 좀처럼 의견 수렴이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에 따르면 현재 EU의 대러 가스 수입 비중은 약 7.5%로,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41% 대비 크게 줄었다.
위기 시나리오를 각오하고 뒤늦게 에너지원 다각화에 뛰어들었지만, 사실 대책이란 ‘아끼는 수’밖에 없다.
올여름 독일 전역의 도시들은 기념물을 소등하고 공공 분수를 잠그는 등의 에너지 절약 조치를 취했다.
프랑스에서는 명품그룹 루이비통모엣헤네서(LVMH)가 이달부터 매출 변화까지 감수하며 각 매장 소등 시각을 앞당기기로 했고, 파리의 에펠탑은 이미 기존보다 한 시간 이른 자정부터 불이 꺼지고 있다. 에펠탑의 야간 전력 소비량은 프랑스인 56명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유럽 국가들은 심한 경우 통신기업 전력 공급 중단으로 올겨울 모바일 네트워크 중단 사태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단순히 전력 부족을 넘어, 기업 경쟁력 하락과 경제 타격이 불가피한 것이다.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은 “독일이 천연가스 비축량을 늘려 가스 부족 위험을 줄이긴 했지만, 남부 지역 등에서의 국지적이고 갑작스러운 정전 사태 발생 가능성은 점진적인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비공식 정상회의에서 EU 국가 수장들은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누출·폭발 사고에서 확인된 인프라 결함 문제와 대책 필요성도 논의할 예정이라고 WP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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