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다니는 포탄’이 싫었던 이 대통령[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5일 12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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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서 풍기는 ‘군대의 추억’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영어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사인 시사 뉴스와 영어 공부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기사보다 한 주 빠른 월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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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해 판문점 군사분계선 앞에서 선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백악관 홈페이지
“The commitment of the United States to the defense of the Republic of Korea is ironclad.”(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은 굳건하다)

최근 한국을 찾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습니다. DMZ 감시초소에서 망원경을 통해 북한 쪽을 유심히 관찰하기도 했습니다. DMZ 방문은 한국을 찾은 미 고위 정치권 인사들에게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정입니다. 한국을 떠난 후 해리스 부통령이 가장 먼저 트위터에 올린 사진과 메시지도 DMZ 방문에 관한 것들입니다. 한국 대통령과 만나 환담한 사진보다 많습니다.

백악관은 해리스 부통령의 DMZ 방문을 감시초소,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T2), 공동경비구역(JSA) 캠프 보니파스 등 동선별로 따라가며 발언 내용을 상세히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다른 현안들은 “경제기술 파트너십”(economic and technology partnership)이라는 한 단락의 설명으로 끝낸 것과 비교됩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대통령의 ‘뉴욕 발언 논란’ 등 미국과 주고받을 얘기가 많은 한국으로서는 섭섭할 수도 있지만 한국은 미국에게 안보의 나라’ ‘군사적으로 중요한 나라’라는 인식이 지난 70여 년 동안 굳어졌습니다.

헤리스 부통령은 DMZ 연설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안보 공약을 “ironclad”(아이언클래드)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인사들이 한국을 언급할 때 ‘핵심축’을 의미하는 “linchpin”(린치핀)과 더불어 가장 많이 쓰는 단어입니다 ‘iron’(철)으로 ‘clad’(덮여있다), 즉 ‘파괴할 수 없다’ ‘변경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남북전쟁 때 버지니아 해상 전투에서 철로 두른 증기선이 처음 등장한데서 유래했습니다. 미국 전쟁사에 한 획을 긋는 이 전투를 ‘battle of ironclads’(철갑 전투)라고 부릅니다. 미국인들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규칙을 ‘ironclad rule’이라고 합니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철통같은 계약조건을 ‘ironclad contract’라고 합니다. 군대나 전투에서 유래된 단어들을 알아봤습니다.

한국에는 ‘허망한 경주’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1975년 미국 영화 ‘참고 견뎌라’(bite the bullet)의 포스터. 위키피디아
한국에는 ‘허망한 경주’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1975년 미국 영화 ‘참고 견뎌라’(bite the bullet)의 포스터. 위키피디아
“Bite on the bullet.”(이 악물고 참아라)

옛날에는 상처를 치료할 때 지금처럼 마취제 진통제가 없었습니다. 치료나 수술을 받는 환자들은 천, 가죽 등을 윗니와 아랫니 사이에 물고 참았습니다. 하지만 군인들은 전장에서 부드러운 재료를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사방에 널려있는 탄피를 입에 물고 참았습니다. 여기서 유래한 ‘bite the bullet’(총알을 물다)은 힘든 상황을 꾹 참고 이겨내는 것을 말합니다. 약간 어감은 다르지만 한국 속담 ‘울며 겨자 먹기’와 일맥상통합니다.

‘정글북’을 쓴 영국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러디아드 키플링의 1891년 작품 ‘the Light That Failed’(사라지는 빛)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프리카 내전에서 참전 기자로 활동하던 중 부상을 당해 혼수상태에서 하는 말입니다. 총알을 문다는 시각적 효과가 크기 때문에 지금도 미국인들이 고난을 이겨내야 할 때 즐겨 쓰는 표현입니다. 한국에는 ‘허망한 경주’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1975년 동명의 미국 영화도 있습니다. 거액의 상금을 노리고 목숨을 건 전미 횡단 경주대회에 참가한 카우보이들의 대한 내용입니다.

커피를 ‘조의 한 잔’(cup of Joe)라고 부르게 된 계기가 된 조지퍼스 대니얼스 미 해군장관. 위키피디아
커피를 ‘조의 한 잔’(cup of Joe)라고 부르게 된 계기가 된 조지퍼스 대니얼스 미 해군장관. 위키피디아
“Cup of Joe”(커피)

옛날 군인들은 고된 전투를 술로 푸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1913년 조지퍼스 대니얼스 미 해군장관은 군대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 술을 금지시켰습니다. 당시는 사회 전반에 금주 운동이 불붙던 시대였습니다. 1917년 미국에서 금주법(Prohibition)이 시행됐습니다.

술이 금지되자 전투 에너지가 필요한 군인들은 카페인 성분이 강한 커피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술을 금지시킨 대니얼스 장관의 이름 ‘Josephus’의 애칭 ‘Joe’(조)에 빗대 자주 마시는 ‘cup of coffee’(커피 한 잔)를 ‘cup of Joe’(조의 한 잔)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933년 금주법 폐지 이후 군에서는 다시 제한적 음주가 허용됐지만 커피에 붙은 ‘cup of Joe’라는 별명은 그대로 남아 지금도 널리 사용됩니다. 잠에서 깨기 위해 커피가 필요하다면 “I need a cup of Joe to wake me up”라고 하면 됩니다.

대니얼스 장관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음료’라는 뜻으로 ‘cup of Joe’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Joe’는 평범함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모든 것이 평균치인 중산층의 미국인을 가리켜 “Average Joe”라고 부릅니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커피를 찾고, 한가득 끓여놓고 물처럼 마시기도 합니다. ‘평범한 미국인이 마시는 평범한 음료’가 바로 ‘cup of Joe’입니다.

영국 공군의 아브로 랭커스터 폭격기가 1944년 독일 뒤스부르크 상공에서 블록버스터 폭탄을 투하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Blockbuster”(초대형 폭탄)

‘블록버스터’는 할리우드 대작 영화를 말합니다. 요즘은 ‘한국형 블록버스터’도 많습니다. 대형 영화사들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제작하는 오락 영화를 말합니다. 영화에서 주로 쓰이지만 원래 군에서 출발한 단어입니다.

‘blockbuster’는 영국 공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 투입한 초대형 화력을 가진 폭탄을 총칭하는 단어입니다. 얼마나 화력이 대단한지 도시의 블록(block)을 통째로 부순다(bust)는 뜻입니다. 화력은 4,000파운드(1.8t)에서 1만6000파운드(7.2t)급으로 건물이나 거리 파괴가 주목적인 재래식 폭탄을 말합니다. 1941년 엠덴 지역을 시작으로 독일 도처에 투하된 블록버스터 폭탄은 연합군의 승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핵이나 생화학 무기 등을 탑재하는 방식으로 폭탄 기술이 발전하면서 블록버스터 폭탄은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됐습니다. 대신 미국으로 건너가 대형 폭발력을 가진 할리우드 영화를 가리키는 단어가 됐습니다.
명언의 품격
“굴러다니는 대포알(loose cannon)이 되고 싶지 않다”며 은퇴 후의 삶을 걱정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퇴임 후 오지 탐험을 하며 지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직접 사냥한 코끼리. 위키피디아
“굴러다니는 대포알(loose cannon)이 되고 싶지 않다”며 은퇴 후의 삶을 걱정했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퇴임 후 오지 탐험을 하며 지냈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직접 사냥한 코끼리. 위키피디아
“I don’t want to be the old cannon loose on the deck in the storm.”(폭풍우 속 선상에 굴러다니는 포탄 신세는 되고 싶지 않다.)

지난 회에서 소개했듯이 제26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신조어를 만드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loose cannon’이라는 단어도 그가 만들었습니다. 예측불허의 언행으로 주변에 피해를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42세에 대통령이 된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재선까지 성공해 8년 임기를 채운 뒤 50세에 물러났습니다. 아직도 창창한 나이에 퇴임한 그는 ‘인생 2막’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이 됐습니다. 그는 “폭풍우에 배 위를 굴러다니는 묵은 포탄 신세는 되고 싶지 않다”며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놨습니다. 대중의 관심을 다시 받고 싶어서 돌출 언행을 일삼는 전임 대통령은 되고 싶지 않다는 진솔한 고백이었습니다.

옛날 군함은 포탄을 장전해 발사했습니다. 포탄은 화력이 총보다 뛰어나지만 관리가 쉽지 않았습니다. 선상에서 굴러다니는 대포알은 위험했습니다. 특히 폭풍우 때 배가 흔들려 서로 부딪히기라도 하면 대형 폭발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loose cannon’은 느슨한, 즉 굴러다니는 포탄을 말합니다. 군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정치에서 더 많이 쓰입니다. 예측불허의 행동으로 당과 동료들에게 해를 끼치는 정치인을 말합니다.

2016년 대선 때 ‘loose cannon’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는 “an unqualified loose cannon is within reach of the most powerful job in the world”라며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를 비난했습니다. “무자격의 굴러다니는 포탄이 세계 최강 권한의 자리에 근접해 있다”는 경고였습니다. 예측불허, 돌출행동의 소유자 트럼프 대통에게 딱 맞는 별명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발끈한 트럼프 후보는 트위터에 “she is a lose cannon with extraordinarily bad judgement & insticts”라고 올렸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급했으면 ‘loose’를 ‘lose’로, ‘instincts’를 ‘insticts’로 잘못 썼습니다. “힐러리는 지독하게 나쁜 판단력과 직관력을 가진 굴러다니는 포탄이다”라는 뜻입니다.
실전 보케 360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인공지능(AI) 데이 2022’ 행사에서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를 소개하고 있다. 테슬라 유튜브 영상 캡쳐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최근 테슬라가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 ‘옵티머스’를 공개했습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탑재한 옵티머스는 무대에서 손을 흔들고 걸어 다니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We just didn’t want it to fall on its face.”(로봇이 실수하지 않기만을 바랬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옵티머스의 기술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굴은 체면을 의미합니다. 한국인들은 체면을 구기는 일을 당했을 때 “내 얼굴이 뭐기 되냐”고 합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face’(얼굴)는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save face’는 ‘얼굴을 구하다’가 아니라 ‘체면을 지키다’ ‘창피를 면하다’는 뜻입니다. 정부가 여론의 화살을 피하려고 내놓는 임시방편 조치를 ‘face-saving measure’라고 합니다. ‘면피용 대책’이라는 뜻입니다.

머스크가 말한 “fall on face”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선 직역대로 로봇이 시연 행사 중에 ‘얼굴 위로 넘어지는,’ 즉 ‘엎어지는’ 불상사를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한 말입니다. 한 발 더 나아가 ‘fall on face’는 ‘실수, 실패를 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특히 공개 망신을 당하는 실수 실패를 의미합니다. 머스크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로봇 때문에 전기차, 우주탐사 분야에서 쌓은 명성에 금이 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의미에서 한 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미국과 러시아의 군사 대결에 대한 내용입니다. 오랫동안 미국의 적수는 러시아(옛 소련)였습니다. 냉전시대 미-러 갈등은 수많은 스파이 영화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계 역사의 두 주인공이었던 미-러 관계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알아봤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때 군장비를 실은 소련 함정을 미군 넵튠 정찰기가 감시하는 모습.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쿠바 미사일 위기 때 군장비를 실은 소련 함정을 미군 넵튠 정찰기가 감시하는 모습. 존 F 케네디 대통령 도서관 홈페이지
▶2021년 6월 21일자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10621/107549230/1


최근 스위스 제네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치열한 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냉전 시대 미-러 관계를 상징하는 명언들을 알아봤습니다.  

“From Stettin in the Baltic to Trieste in the Adriatic an iron curtain has descended across the Continent.”(발트 해의 슈체친부터 아드리아 해의 트리에스테까지 철의 장막이 대륙에 드리워졌다)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1946년 미국 방문 연설에서 “iron curtain”(철의 장막)을 언급했습니다. 처칠 총리가 처음 쓴 단어는 아니지만 그의 발언이 가장 유명합니다. ‘철의 장막’은 소련과 그 영향권 내에 있던 동부유럽 국가들을 가리킵니다. ‘철’의 차가운 이미지와 ‘커튼’의 포근한 이미지를 대비시켜 유럽의 이념적 대치를 묘사한 명언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커튼은 ‘가린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밀실 공작’을 말할 때 쓰는 ‘behind the curtain’(커튼 뒤)은 ‘몰래’ ‘막후’라는 뜻입니다. 

“We′re eyeball to eyeball. I think the other fellow just blinked.”(우리는 서로 노려보고 있다. 지금 저쪽 친구가 눈을 깜빡인 듯하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 때 미-러 관계는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까지 갔습니다.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배치를 시도하자 미국은 해상봉쇄로 맞섰습니다. 당시 긴박한 해상대치 상황은 미국 전역에 TV로 생중계됐습니다. 봉쇄 사흘 만에 소련은 쿠바 쪽으로 향하던 미사일 장비를 실은 선단의 뱃머리를 돌려 후퇴했습니다. 양쪽이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정면 대치하는 것을 눈싸움에 비유해 ‘eyeball to eyeball’(안구 대 안구의 대결)이라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먼저 눈을 ‘blink’(깜빡이다) 쪽이 지는 겁니다. 소련 함정이 물러나는 순간 백악관 긴급 안보회의에 참석 중이던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옆자리에 앉은 맥조지 번디 국가안보보좌관에게 귓속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 외교사에 길이 남는 명언입니다.  

“Mr. Gorbachyov, tear down this wall!”(미스터 고르바초프, 이 벽을 허무세요!)

1987년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연설을 했습니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추진 중이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에게 베를린 장벽을 허물 것을 호소했습니다. 연설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2년 후인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냉전의 종말을 의미하는 명언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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