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운데 앞)와 아베 신조 전 총리 유골을 든 부인 아베 아키에 여사(가운데)가 9월 27일 일본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아베 신조 전 총리 국장에 들어서고 있다. 교도 AP=뉴시스
“우리는 아베 칠드런이다.” “아베파 이대로가 좋다.”
13일 낮 도쿄 나가타초 자민당 본부. 매주 목요일 점심시간마다 일본 집권 자민당 당사에서 열리는 파벌 정례모임이 이날도 어김없이 열렸다. 같은 파벌 소속 의원들이 도시락을 함께 먹으며 단합을 다지는 목요일 자민당 본부의 풍경은 일본 정치를 상징하는 모습 중 하나다.
이날 일본 정치권에서 단연 눈길을 끈 건 세이와정책연구회, 자민당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모임이었다. 계획대로였다면 이번 주 중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뒤를 이을 파벌 대표를 선출할 예정이었다. 아무리 파벌에 아베 전 총리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졌다고 해도 3개월 전에 세상을 떠난 전직 총리의 이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파벌을 운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니혼TV 등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파벌 내에서 새 대표 선출에 가장 반대가 컸던 이들은 3선 이하 신진 의원들이었다. 2010년대에 아베 전 총리가 영입한 이른바 ‘아베 키즈’들이다. 2012년 재집권 이후 주요 선거에서 연전연승을 거둔 ‘선거의 왕’ 아베 전 총리의 그늘 밑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돼 정무관, 부대신(차관) 등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온 이들이다.
7월 8일 오전 일본 나라현 참의원 선거 유세현장에서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유세 도중 총을 맞고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 AP=뉴시스
이들은 대놓고 “우리는 아베 칠드런이다” “아베파 그대로가 좋다”며 새 대표 선임에 반대한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아베파 회장 대리를 맡으며 애초 금주 내 결론을 내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던 시오노야 류(塩谷立) 의원은 모임 뒤 기자들과 만나 “가볍게 결정하면 결속을 해친다. 조만간 결정하겠다고 한 내가 너무 쉽게 봤다”라며 고개를 숙였다.
아베 전 총리의 간판으로 정계에 입문한 10년 차 안팎 의원들로서는 파벌 대표 선출은 자신들의 정치생명이 걸린 문제다. 부친에게 지역구를 물려받은 세습 의원이나 수십 년간 지역에서 기반을 닦아온 중진 이상은 ‘개인기’로라도 살아남을 수 있지만 이들은 상황이 다르다. “아베 칠드런”을 자칭하는 아베파 소속 신진 의원들에게 아베 전 총리의 후광은 정치 자산의 절반 이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베파는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다. 파벌 내 물밑에서는 “시오노야 의원을 정식 회장으로 승격시켜야 한다”라는 의견부터 “하기우다 고이치 정무조사회장을 밀어야 한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 등과 집단 지도체제를 꾸려야 한다” “세코 히로시게 참의원 간사장을 회장으로 해야 한다”라는 등 제각각의 목소리들이 분출하고 있다. 대부분 아베 전 총리 시절 당 간부와 내각 포스트를 맡으며 보수 강경 색깔을 숨기지 않아 온 인물들이다. 하지만 차기 회장으로 거론되는 이들에 대해 자민당 내에서조차 ‘아베 전 총리를 대신할 만한 회장감은 아니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아베 전 총리 국장은 마무리됐지만, 파벌 내 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아베파 내에서는 “이대로면 파벌이 3, 4개로 분열될 수 있다”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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