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모든 것을 건 불꽃같은 정면승부였다. 다시 이 회의장에서 말과 영혼을 맞대며 붙고 싶었건만, 이제 당신은 의사당에 오지 못하게 됐다.”
25일 오후 일본 도쿄 국회의사당. 전 총리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입헌민주당 의원이 연단에 등장했다. 7월 사망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추모 연설을 위해 제1야당 거물이 마이크 앞에 섰다.
일본에서는 현직 국회의원이 세상을 떠나면 그의 상대 당 최대 라이벌이 추모 연설을 하는 게 관례다. 생전 현장에서는 정치 운명을 걸고 양보 없이 치열하게 경쟁했지만 마지막 떠나는 길만큼은 한마음으로 고인을 기억하자는 취지에서다. 일본에서 야당 대표급 인사가 여당 의원을 위해 추모연설을 한 건 2000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가 뇌경색으로 사망했을 당시 사민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 이후 22년 만이다.
아사히신문은 “일부러 라이벌에게 추모 연설을 맡겨 국회 전체가 애도한다는 걸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다 전 총리에게 아베 전 총리는 필생의 숙적이었다. 2012년 11월 의회 토론에서 당시 야당이던 자민당 총재 아베 전 총리가 거칠게 몰아세우자 노다 당시 총리는 “국회를 해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자민당이 대승을 거두며 노다 전 총리는 아베 전 총리에게 총리 직을 넘겨야 했다. 민주당을 계승한 입헌민주당은 지금까지 정권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노다 전 총리는 “싸우는 정치가였고 원수 같은 정적이었지만, 국회 밖에서는 마음씨 좋은 사람이었다”고 아베 전 총리를 회상했다. 2012년 퇴임 직후 왕궁에서 자리를 함께한 기억을 떠올리며 “아베 전 총리는 ‘나도 5년 만에 (총리에) 복귀했다. 당신에게도 조만간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 위로해 줬다”고 말했다.
전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 처음으로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에 연루된 장관이 사퇴하면서 여야 정국(政局) 긴장감이 어느 때보다 팽팽해진 상황이지만 노다 전 총리의 담담한 연설에 본회의장은 잠시나마 숙연해졌다. 이날 연설을 두고 일본 정치권에서는 “대립하는 여야 간에 모처럼 품위 있는 정치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왔다.
9월 아베 전 총리 국장에 입헌민주당 간부진은 일제히 불참했다. 그러나 노다 전 총리는 당 기조를 어기고 참석했다. 비판이 일자 그는 “전직 총리가 전 총리 장례식에 가지 않는 것은 내 인생관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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