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전문가가 본 이태원 참사]
英 ‘힐즈버러 참사’ 생존자로 재난관리 전문가 된 에어 박사
“수시간 걸쳐 군중 늘어… 대응 가능”
“정확한 진상조사, 정부의 의무”
“이태원 참사는 예측하기 굉장히 어려운 일(rocket science)이 아니었어요. 작년에 비슷한 행사가 있었다면 당국이 위험하다는 기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이번에도 군중은 몇 시간에 걸쳐 늘어났기 때문에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었어요.”
1989년 영국 힐즈버러 축구장에서 97명이 압사한 ‘힐즈버러 참사’에서 살아남아 재난관리 전문가가 된 앤 에어 박사(사진)는 13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태원 참사와 힐즈버러 참사의 공통점은 예측 가능했고, 예방 가능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주최자가 없어 경찰이 개입할 수 없었다’는 한국 정부의 초기 주장에 대해 논점을 흐리는 “레드 헤링(red herring·훈제 청어) 수법”이라며 “그렇게 말하는 건 책임 회피로 보인다”고 했다. 주최자가 있든 없든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다. 에어 박사는 힐즈버러 참사 피해자 연합단체 ‘재난행동(Disaster Action)’ 부의장으로서 유족들과 함께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해 왔다. 또 다른 재난 피해자를 치유하며 재난 예방 활동도 펴고 있다.
○ “정확한 진상 조사는 정부 의무”
에어 박사는 “유감스럽지만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조사하자고 계속 주장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확한 진상 조사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정확한 진상 조사는 당국의 의무일 뿐 아니라 유족들이 ‘사랑하는 가족을 아무도 되돌려 놓을 수는 없다’고 말할 때 사고 원인을 알려주고 변화를 만들어 내게 해 그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할 것으로 기대한 환경에서 재난이 일어나면 피해자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면서 “자세하고 정확하게 조사하지 않으면 발생 원인을 알 수 없고 미래 세대를 위한 교훈도 남길 수 없다”고 했다.
재난관리 전문가로서 에어 박사는 진상조사가 공개 조사, 사인 규명(Inquest), 범죄 수사 등 3개 유형으로 진행돼 서로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 공개 조사는 정부가 임명한 판사가 죽음뿐 아니라 사건 전체를 광범위하게 공개적으로 조사해 재발 방지를 위한 권고 사항을 도출한다. 사인 규명은 검시관이 원인과 장소, 시기 등 죽음 자체에 초점을 맞춰 조사한다. 범죄 수사는 사법 당국이 형사 처벌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진행한다.
그는 이 같은 진상 조사 과정에서 있을지 모르는 정부 개입을 견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에어 박사는 “영국에서도 그렇고 아마 한국에서도 향후 공개 조사 방식을 정하게 될 텐데 정부가 조사위원장을 지명할 것으로 본다”면서 “(그러나) 정부는 사건과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 “참사 관련 공직자 진실 말할 의무 법제화”
힐즈버러 참사 유족과 시민단체들은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더 정확한 진상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힐즈버러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은 국가적 재난 진상 조사의 대상이 되는 공직자는 진실만을 말하고 이를 어기면 처벌받도록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에어 박사는 “공직자는 진실을 말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과정에서, 또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그렇게 하지 못할 수 있다”며 “공직자가 진실을 말할 의무를 법제화해야 정확한 조사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태원 참사를 막을 수도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지역축제’ 관련 대응 매뉴얼이 정부에 있었는데도 시행되지 않은 것과 관련해 에어 박사는 2017년 영국 맨체스터 공연장 테러 사건을 소개했다. 당시에도 이와 비슷하게 매뉴얼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맨체스터 공연장 테러 진상 조사 보고서가 지난주 발간됐다면서 “이 보고서에는 사고 당일 매뉴얼이 잘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돼 있다. 단순히 각자 계획을 세워두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나서서 각 기관이 최근 마지막으로 매뉴얼대로 연습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까지 확인하는 등 매뉴얼 숙지 및 실천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
에어 박사는 정부가 향후 진상 조사 과정에서 유족과 각별히 소통하고 이들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유족과 생존자는 우리(정부나 일반 시민)와는 다른 상황에 처해 있음을 알고 행동과 태도를 주의해야 한다”며 “특히 참사를 그들 탓으로 돌리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참사 이후 사고 당시 현장에서 누군가가 앞사람을 밀었다는 점이 여러 언론 보도에서 언급된 데 대해 그는 “군중 속에 있으면 사고 발생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군중 관리 문제 때문임을 알 수 있다”며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누군가가 밀어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건 개인 탓이 아니다. 이 같은 말은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키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큰 슬픔에 빠진 유족들은 어떻게 고통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재난 피해자 트라우마도 관리하는 에어 박사는 “공공조사 같은 기회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트라우마와 슬픔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또 함께 슬픔에 빠진 한국인에게는 오히려 유족과 함께 슬퍼하고 연대해줄 것을 권했다. 에어 박사는 “크리스마스 같은 가족이 모이는 기간에 유족들은 더욱 슬프다”며 “이럴 때 함께 추모하는 행사를 열거나 아예 영구적으로 추모하는 날을 만드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유족을 위로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국제기구에서 각국 정상들이 추모한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다 사라져요. 우리 모두 이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힐즈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15일 영국 사우스요크셔 셰필드의 힐즈버러 경기장에서 97명이 압사하고 700명이 넘게 다친 사건이다. 이날 이 경기장에서는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리버풀’과 ‘노팅엄 포리스트’가 맞붙었다. 당시 경기장에 수용 인원을 초과한 관중이 몰려들면서 이미 입장한 관중이 철제 보호 펜스가 휘어지도록 밀려나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
사건 직후 경찰은 축구광 ‘훌리건’의 난동 탓에 참사가 일어났다고 발표했다. 일부 언론들 또한 훌리건들이 술에 취해 경기장으로 들어왔다고 보도했다. 이에 피해자들을 비롯한 관중이 순식간에 사고의 주범이란 오명을 썼다.
피터 테일러 판사가 이끄는 진상 조사가 진행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참사 약 9개월 뒤인 1990년 1월 조사단은 참사의 주원인이 ‘경찰의 통제 실패’라고 진단했다. 당시 사우스요크셔 경찰서장이던 데이비드 더켄필드가 군중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고, 경찰관들이 리버풀 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이런 조사 결과에도 더켄필드 전 서장은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형사 처벌을 면했다.
유족들은 계속 추가 조사를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참사가 드라마로 제작되는 등 사건 또한 계속 재점화했다. 참사 20년을 맞은 2009년 4월, 영국 안필드에서 열린 추모 행사에서 축구 팬들은 “힐즈버러의 공공기관이 보유한 모든 관련 정보를 공개하라”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이에 이듬해인 2010년 독립 인사들로 구성된 2차 조사단이 재차 진상 조사에 나섰다. 이 조사단 또한 2012년 “경찰과 응급 당국이 무고한 팬들에게 책임을 돌리려 했다”고 밝혔다. 경찰 고위 관료들이 사고 당일 경기장 출구를 열어 팬들이 과도하게 유입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구체적인 정황도 드러났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점은 경찰 진술서 164건이 변조됐다는 사실이었다.
법원은 “힐즈버러 참사의 책임이 경찰에 있다”고 2016년 평결했다. 이후 정부 또한 공식 사과했다. 참사 27년 만에 피해자와 생존자들의 명예가 회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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