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시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 명분으로 불법 이민자를 즉시 강제 추방하도록 허용한 정책은 연방법 위반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이 정책을 그대로 시행하던 조 바이든 행정부 이민 정책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15일(현지 시간) 미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수도 워싱턴 연방 지방법원 에밋 설리번 판사는 ‘불법 이민자 즉시 추방’ 정책인 ‘42호(Title 42)’가 행정절차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설리번 판사는 이날 판결문을 통해 42호는 “극단적이고 변덕스럽다”면서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규제를 최소한 적용해야 하는 행정기관 의무를 저버렸으며 42호가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효과적이라고 입증되지도 않았다”고 판결 사유를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중보건법 조항에 근거해 코로나19 확산이 우려된다며 2020년 3월 도입한 42호는 국경을 넘으려고 시도하는 불법 이민자를 별도 법적 절차 없이 바로 강제 추방할 수 있도록 했다. 친(親)이민, 친난민 정책을 표방한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유세 과정에서는 이를 비판했지만 취임 이후 폐지나 개정을 추진하지는 않았다.
설리번 판사는 “(미 정부는) 이민자들이 박해 고문 폭행 또는 강간 확률이 높은 곳으로 추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추방했다”며 “이 조항이 이민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정말 심각했다”고 설명했다.
CNN방송은 바이든 행정부가 불법 이민자 증가를 막기 위해 42호에 의존해왔다며 이번 판결로 바이든 행정부 이민 정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바이든 행정부는 4월 42호를 종료하겠다고 밝혔으나 다음달 루이지애나주 연방법원이 42호는 유지돼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지속돼왔다. 지난달 바이든 행정부는 불법 월경이 급증한 베네수엘라 불법 이민자를 멕시코로 추방할 수 있도록 했다.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에 따르면 지난달 미 남부 국경에서 체포된 불법 이민자는 20만4000명이며 이 중 7만8400명이 곧바로 추방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9월까지 남부 국경 중심으로 불법 이민자 240만 명 이상이 추방됐다.
바이든 행정부는 “국경 관리 인력을 추가 배치하고 주정부 및 비영리단체 등과 협의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며 “판결 효력을 5주간 미뤄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이민 관련 시민단체들은 환영한다는 반응을 내놨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리 겔런트 변호사는 “불행하게도 42호는 유통기한이 길었지만 마침내 끝났으며 이민자들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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