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가나가와현의 참치 도매업체 M사는 지난달 중순 요코하마 지방법원에서 파산 절차 개시를 확정 받았다. 1968년 창업해 참치 가공 공장, 해물 요릿집도 함께 운영하며 연 7억 엔(66억 원)의 매출을 올리던 견실한 업체였다. 하지만 최근 2년 새 수입 참치 도매가격이 60% 오르면서 버티는 데 한계가 왔다. 부채 5400만 엔(5억1200만 원)을 갚기 막막했던 이 업체는 끝내 사업을 포기하고 파산에 들어갔다.
일본에서 최근 중소·영세 기업을 중심으로 ‘엔저 도산’이 확산되고 있다. 대기업 및 상사는 수출 호조, 환차익 증가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지만 작은 기업일수록 엔화 환율 급변동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원자재 값 상승을 이기지 못한 채 매출의 10분의 1도 안 되는 빚에 쓰러지는 사례마저 나타나고 있다.
● 엔저 도산 5년 새 최대 증가
16일 일본 정보업체 데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올 1~10월 엔저에 따른 도산 기업 수는 21곳에 달했다. 2019년 도산 기업 22곳을 뛰어넘을 게 확실시된다고 이 업체는 전했다. 10월 한 달에만 7곳이 엔저 도산을 당해 지난해 1년간의 전체 규모보다 많았다.
엔저 도산이란 엔화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 가격 증가 때문에 기업이 도산하는 것을 뜻한다. 한국처럼 일본도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해외에서 원자재 및 중간재를 들여와 가공한 뒤 대기업에 납품하거나 해외로 수출한다. 환율이 상승하면 그만큼 수입 가격은 높아진다. 일본에서 엔저 도산을 당한 중소기업은 식품, 섬유 등 원자재를 수입해 가공 판매하는 업종이 많았다.
한국, 일본 등 대기업들은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에 대비해 금융 파생상품을 활용해 다양한 환헤지를 한다. 하지만 중소 영세 기업들은 환헤지를 할 만큼 거래 규모가 크지 않고 전문 지식이 부족해 환율 변동에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도 기업의 60%는 부채 5억 엔 미만의 중소·영세 기업이었다.
대기업들은 소비자 가격 및 납품가격을 올릴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하청을 하거나 갑을 관계에서 을(乙)의 입장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속으로만 앓는 경우가 많다. 연료비, 전기요금 등의 물가가 최근 상승하고 있는 것도 중소기업을 어렵게 한다.
데이코쿠 데이터뱅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어려워진 중소 기업들은 환율이 오르고 수입가격이 상승했다고 이를 판매가격에 전가할 만한 여력이 없다”며 “엔저 도산이 당분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 일본 내 소득은 ‘감소’ 경향
이런 가운데 올 3분기(7~9월) 일본의 국내총소득(GDI)이 전 분기보다 3.9%(연율 환산)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도쿄신문이 16일 보도했다. 4개 분기 만에 전 분기 대비 1.2% 줄어든 일본 국내총생산(GDP)보다 감소 폭이 더 컸다.
GDI는 국가 안에서 가계, 기업, 정부 등 경제 주체가 벌어들인 소득의 합계를 가리키는 지표로 GDP보다 피부 체감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각부에 따르면 3분기 일본의 대외 소득 유출은 19조 엔(약 180조 원)에 달했다. 에너지 등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저 현상에 따른 수입 가격 오름세로 일본 밖으로 빠져 나가는 돈이 많아 GDP와 GDI의 괴리가 발생했다.
도쿄신문은 “실질 소득 악화가 지속되면 소비가 정체돼 경기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어려워진 경제가 정상화되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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