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날로 커지는 가운데 월드컵에 출전한 이란 축구 대표팀이 국가(國歌)를 제창하지 않아 주목을 받았다. 대표팀이 반정부 시위대와의 연대를 밝힌 것이다.
21일(현지시간) 카타르 알 라이얀 칼리파 국제경기장에서는 이란과 잉글랜드의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B조 1차전 경기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이란 축구 대표팀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 이란 국가가 연주됐음에도 같이 제창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같은 이란 축구 대표팀의 집단행동에 AFP 통신은 “이란 내 반정부 시위에 대한 지지 의사를 나타내려는 의도”라고 보도했다.
당시 경기를 생중계하던 이란 국영 TV는 관련 장면이 나오자 선수들 얼굴을 비추는 대신 경기장 전경으로 화면을 돌리기도 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축구 대표팀 감독은 “월드컵 규정을 준수하고 경기 정신에 부합한다면 이란에서 여성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항의할 수 있다”며 선수들의 국가 제창 거부를 두둔했다.
영국 BBC 방송에서 경기 해설을 하던 게리 리네커 또한 “강력하고 매우 중요한 제스처였다”며 이란 축구 대표팀 선수들에게 지지 의사를 보냈다.
이날 카타르 현지에서 이란 축구 대표팀을 응원하는 일부 팬들도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들은 이란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소리를 지르며 야유했고 ‘여성, 생명, 자유’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이란 정부의 군대를 투입한 강경 진압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란 축구 대표팀의 국가제창 거부는 사전에 계획된 일이었다.
경기 전날 이란 축구 대표팀 주장 에산 하지사피는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현재 상황이 옳지 않으며 이란 국민들이 즐겁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며 “우리는 지금 카타르에 와 있지만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거나 그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힘은 모두 이란 국민에서 나온다”고 말하면서 반정부 시위대와 연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란 축구 대표팀 선수 알리레자 자한바크시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하기 위해 국가 제창을 거부할지를 집단으로 정하겠다”고 말했다.
이란에서는 지난 9월 ‘마샤 아미니’라는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연행된 뒤 구금 도중 경찰의 구타로 사망했다. 이란 시민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반정부 시위를 시작했다.
이란 정부는 자국의 반정부 시위를 정부군과 특수부대로 평가받는 이란 혁명수비대까지 투입해 강경 진압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지하철역에서 이란 경찰이 반정부 의사를 밝힌 여성을 구타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이란의 축구 전설 알리 다에이와 자바드 네쿠남이 FIFA로부터 초대받고도 카타르 월드컵 참석을 거부하며 이란 정부에 저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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