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기 중 심정지로 쓰러졌던 크리스티안 에릭센(30·덴마크·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에서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가 이날 경기에서 뛴 거리는 팀 내 가장 많은 12.5km. 성냥갑 크기의 이식형 제세동기(ICD·Implantable cardioverter defibrillator)를 심은 에릭센이 월드컵 본선 첫 경기를 건강하게 치른 것이다.
에릭센은 22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조별리그 D조 1차전 튀니지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경기에서 에릭센은 팀 내 가장 많은 16개의 크로스를 올리는 등 덴마크의 공격을 책임졌다. 경기는 득점 없이 0-0으로 마무리됐지만, 경기장을 찾은 축구 팬들은 에릭센에게 박수를 보냈다.
에릭센은 지난해 6월 2020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 2020) 핀란드와의 경기에서 전반 42분 심정지로 쓰러졌다. 그라운드에서 심폐소생술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진 에릭센은 차츰 건강을 회복했지만,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에릭센은 이식형 제세동기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은 뒤 재활을 거쳐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이식형 제세동기는 심장의 비정상적인 박동을 감지하면 전기 충격을 보내 이를 교정하는 장치다. 심장 박동이 불규칙해 돌연사의 위험이 있는 환자 등이 이식형 제세동기를 심게 된다. 경기 중 심정지를 겪은 에릭센은 향후 재발 방지를 목적으로 이식형 제세동기를 심었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의사들은 이식형 제세동기를 장착한 이들에게 격렬하게 운동하지 말 것을 권했다. 하지만 이식형 제세동기를 심은 운동선수 440명을 4년간 관찰한 조사에서 제세동기 작동 실패 사례가 나타나지 않았다. 합병증을 앓거나 사망한 선수도 없었다. 단, 대상자의 10분의 1은 운동 중에 제세동기의 자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식형 제세동기를 심은 에릭센은 당시 이탈리아리그 세리에A 인터 밀란 소속이었지만, ‘제세동기를 단 채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 리그 규정 탓에 뛸 수 없게 됐다. 이에 에릭센은 올 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브렌트퍼드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다시 섰다. 3월에는 덴마크 대표팀 복귀전을 치렀고, 7월에는 프리미어리그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3년 계약을 맺었다.
에릭센에게 이번 월드컵은 특별하다. 그는 첫 경기를 앞두고 기자회견장에서 “카타르 월드컵은 내게 무척 특별한 무대”라며 “다시 뛰기 시작한 첫날, 카타르 월드컵 출전을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에릭센은 “매 경기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로 보답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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