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23일(현지시간) 계속된 포격으로 외부로부터의 전원공급이 차단된 자포리자 원전 상황에 관해 “원전 사고를 피하는 행운만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최근 이어졌던 자포리자 원전 단지 주변의 포격의 주체에 관한 질문에 “발전소 내부에 누가 그런 일을 하고 있지 확인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주요한 목표는 (안전을 위해 당장) 포격을 멈추는 것이지, (정치적) 게임 안으로 들어가 누구의 책임인지 밝혀낼 권한은 우리에게는 없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교전 속에서 이뤄진 포격의 책임을 가리기 어려우며, 원전의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의미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자포리자 원전 주변을 안전·보호지대로 설정하기 위해 진행 중인 외교적 중재 노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22일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회담에 이어 튀르키예에서 러시아측 대표단과 협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현재 당사자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원전 안전·보호지대 설정 논의에) 진전이 없다는 외부 평가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창 진행 중인 전쟁의 최전선에 안전·보호지대를 설정할 것을 제안했다”며 “물론 실제 전쟁 속 당사자가 교전을 계속하고 있어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합의를 위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IAEA는 CNN 인터뷰와는 별개로 그로시 총장 명의의 별도 성명을 내고 자포리자 원전이 외부로부터의 전력 공급이 중단됐으며 원자로 냉각을 위한 필요 전력을 비상용 디젤 발전기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최근 며칠 간 자포리자 원전을 둘러싼 반복적 포격이 진행되면서 핵 안전 및 주변 안보 상황이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IAEA는 보유하고 있는 20대의 디젤 발전기 가운데 8대의 발전기가 원전 시설을 유지하는 데 동원되고 있으며, 10여 일 정도 비상 가동체제를 지속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유럽 최대 원전인 자포리자 원전은 러시아의 침공 전 총 6기의 원자로를 통해 우크라이나 전력 공급의 20%를 담당했었다. 개전 후 양측의 포격 속에 2기만을 가동했고, 나머지 4기는 냉온 정지(cold shutdown)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포격이 지속적으로 이어지면서 남은 2기의 원자로 마저도 비상가동체제를 반복하고 있다. 전원을 공급하는 송전선 훼손에 따라 외부 발전기를 통한 비상가동체제와 해제를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외부 전력망 분리로 일정 시간 이상 냉각 시스템이 멈춘다면 원자로 노심이 녹아 내리는 멜트다운(노심용융)이라는 최악의 핵재앙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되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