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하원의원 도전 데이비드 김
아버지 美 이민 온 뒤 태어나 로스쿨 졸업 후 이민 변호사 활동
빈민가 본 뒤 정치 뛰어들 결심
“기본소득-건강보험” 공약 내걸어… 2년 전 첫 도전서 거물 상대 석패
《악조건을 두루 갖췄다. 돈도 배경도 없는 정치 신인에 소수인종, 성정체성 장벽까지…. 주민 다수가 히스패닉인 지역에서 히스패닉 출신 3선 의원에게 도전한 한국계 데이비드 김. 그는 이번 미국 중간선거에서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승부를 펼쳤다.》
한인 청년의 美하원의원 도전기
선거는 이제 40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미국 연방하원에 출마한 한국계 미국인 데이비드 김(38)은 다음 날 유권자들에게 나눠줄 퍼즐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 봤다. 30개 조각이 다 채워진 퍼즐에는 두 손에 돈다발을 쥔 거인과 그를 올려다보는 작은 청년이 그려져 있었다. 데이비드 선거 캠프의 20대 봉사자들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 연상되도록 만든 홍보물이었다.
데이비드는 “저희 지역엔 아이에게 늘 미안한 부모가 많아요. 어린이용 퍼즐을 드리면 도움이 될 거 같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아동복지 전문 국선변호사로 일하며 취약 가정을 자주 접했다. 부모들은 대개 투잡, 스리잡을 뛰며 주 6, 7일 일을 했다. 자녀들은 집에 방치되기 일쑤였다. 그가 출마한 캘리포니아(CA) 34지구는 연방하원 지역구 435개 중 가장 가난한 20곳 중 하나다.
○ 히스패닉 근거지에서 거물과 맞서다
퍼즐에서 거인으로 묘사된 인물은 상대 후보인 이 지역 3선 현역의원(민주당) 지미 고메즈였다. 주민 70만 명 중 히스패닉(중남미계 이주민) 인구가 65%에 달하는 CA 34지구는 고메즈 같은 민주당 히스패닉 정치인들의 근거지였다.
그와의 대결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데이비드는 2년 전인 2020년에도 이곳에 출마했다. 당시 고메즈는 선거운동 내내 데이비드의 이름을 언급조차 하지 않을 정도로 그를 경쟁 상대로 보지 않았다. LA한인타운이 34지구에 있긴 했지만 데이비드는 한인타운에도 알려지지 않은 정치 신인이었다. 현지 한국계 언론마저 고메즈를 공식 지지했다.
당시 데이비드는 낮엔 피켓을 든 채 주민들을 만나고 밤엔 우버 기사로 일할 때 쓰던 구형 소나타를 몰고 다니며 벽보를 붙였다. 그가 유일하게 앞섰던 것은 200여 명에 달하던 자원봉사자 수였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데이비드는 47%의 지지를 얻어 고메즈에게 6%포인트 차로 패했다. 이 지역 연방하원 선거에서 표차가 이렇게 근소했던 것은 1976년 이후 44년 만이었다. 데이비드의 2020년 선거 과정은 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 ‘초선’(감독 전후석)에 상세히 담겼다. 이 영화는 당시 연방하원에 출마한 한국계 후보 5명의 도전을 그렸다.
○ 한인 이민자의 험난한 성장기
“제 부모님은 1982년 미국으로 이주하셨어요. 아버지가 목사여서 개척교회를 하셨는데 이민자로 살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죠.”
데이비드가 청소년기를 보낸 워싱턴주 터코마에는 주한미군과 결혼한 뒤 남편을 따라 이주한 한국인 여성이 많았다. 한국에서 ‘흑인의 아내’ ‘혼혈’이라며 천대받았던 이 여성들과 자녀들은 미국에서도 멸시를 받았다. 이들은 아버지의 교회에 와서 위안을 찾았다.
“부모님이 영어를 못하셔서 영어가 필요한 집안일은 어떻게든 제가 처리했어요. 공과금에 연체료가 너무 많이 붙으면 제가 관공서에 따라가 대신 따졌죠. 어려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한 한국분들 대신해서 목소리를 내야 할 일도 많았어요.”
데이비드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를 거쳐 뉴욕 예시바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변호사가 돼 미국의 주류로 들어가라는 아버지의 뜻을 충실히 따랐다. 그가 사회로 나온 2010년 미국 법률시장은 금융위기 여파로 얼어붙어 있었다. 그는 낮에는 경력을 쌓기 위해 공짜 변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우버 기사, 엑스트라 배우, 학원 강사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그땐 하루빨리 변호사로 자리를 잡아 학자금 빚 20만 달러(약 2억6000만 원)를 갚아야 했어요. 가까스로 소니픽처스 사내변호사로 취업이 됐어요.”
소니픽처스는 LA 교외의 부유한 지역인 컬버시티에 있었다. 데이비드는 빈민가에 있는 집에서 출퇴근하며 완전히 다른 두 세상을 매일 오갔다. “미국에 힘들게 정착했던 경험 때문인지 주 7일을 일해도 생활이 안 되고, 병원에 못 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데이비드는 결국 소니에서 나와 아동복지와 이민 사건을 맡는 국선변호인으로 일했다. “변호사나 열심히 하지 무슨 정치냐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 하지만 변호사만 해서는 사람들 삶이 나아지는 진도가 너무 슬로해서 답답했어요.” 그가 공약으로 내건 기본소득, 전 국민 건강보험, 이민 규제 완화 등은 소수자로 살아오며 절실하다고 느낀 것들이었다.
○ 2년 만의 재도전
데이비드가 2년 만에 다시 도전장을 냈을 때 고메즈는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미 연방하원은 2년마다 새로 뽑는다). 방심하다 질 뻔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 했다. 제약회사와 군수업체 등에서 받은 수백만 달러의 후원금으로 정책 홍보집과 각종 전단을 만들어 등록 유권자 32만 명에게 여러 번 발송했다.
고메즈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 거물들의 공개 지지도 받았다. 민주당의 한국계 하원의원인 앤디 김(뉴저지)과 매릴린 스트리클런드(워싱턴)마저 고메즈를 지지했다. 미국엔 현역 의원들끼리 지지 선언을 주고받으며 의석을 방어하도록 상부상조하는 관행이 있다.
데이비드 역시 민주당 후보였다(캘리포니아주는 같은 당이라도 예비선거 2위 후보까지 출마할 수 있다). 하지만 기득권의 벽 앞에선 장외 선수였다. 2년 전 59%였던 히스패닉 인구 비율은 이번 선거 직전 선거구가 조정되면서 65%로 늘어나 고메즈에게 더 유리해졌다. 아시안은 한국계(13%)를 포함해 20% 정도였고, 백인이 10%, 흑인이 5%였다.
데이비드의 선거 캠프에는 봉사자들이 일일이 손으로 접은 편지 8만여 통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공약과 포부를 담은 이 편지들은 각각 영어와 한국어, 스페인어, 중국어, 태국어 등 여러 언어로 쓰여 있었다.
“저희 지역구의 왼쪽과 위쪽 지역구는 백인이 대다수이고, 오른쪽 지역구는 중국인, 아래쪽은 흑인이 대부분이에요. 저희 지역만 모든 인종이 살아요.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이라면 달라야 하지 않을까요.”
데이비드는 영어로만 소통했던 고메즈와 달리 히스패닉 동네에선 스페인어로, 코리안타운에서는 한국어로 말했다. 광고판을 세울 때도 해당 지역 출신 시의원이나 활동가들과 나란히 찍은 사진을 넣었다. 상대의 물량 공세에 맞서 데이비드는 ‘맞춤형’ 전략을 폈다.
○ 거절의 상처
데이비드가 출마를 결심하면서 가장 두려워했던 건 그의 성정체성이 알려지는 것이었다. 그는 2018년 부모에게 동성애자임을 털어놓았을 때 뼈아픈 거절의 상처를 받았다. 영화 ‘초선’에는 공화당 지지자인 아버지가 데이비드에게 모멸적인 내용의 보이스 메시지를 수시로 보내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너나 네 보이프렌드를 뭘로 보느냐. 그저 애니멀(동물)로 봐. 그런 짓들을 하는 애들일 뿐이지.” ‘이렇게 살면 너는 72시간 안에 죽을 것’이란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데이비드가 2020년 선거 때 한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못했던 것도 교회 중심의 한인 커뮤니티가 동성애에 특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성정체성을 숨긴 채 다른 모든 면에서 부모님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갖고 성장했어요. 한인 사회를 대할 때도 그런 부담이 있었던 거 같아요. ‘초선’이 상영되면서 제 성정체성이 알려져 이번 선거에선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죠. 한인들이 제가 동성애자라는 걸 알고 ‘저리 가’ 할까봐 무서웠어요.”
데이비드는 여러 한인 대표들과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 다행히 상당수 한인들이 그를 받아들였다. 2020년엔 선거자금 18만 달러 중 한인 후원금이 500달러에 불과했지만 이번엔 22만 달러 중 5만 달러가 한인 후원금이었다.
“하원의원이 되면 한반도 평화에도 기여하고 싶어요. 미국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대북 정책이 출렁거려요. 그래서 종전 70년이 되도록 아무 변화가 없는 거 아닐까요. 제 뿌리인 한국의 생존을 한반도 평화에 진지한 관심이 없는 백인 정치인들 손에 맡겨 둬선 안 되잖아요.”
○ 고메즈의 흑색 공격
선거를 8일 앞둔 10월 31일, 데이비드는 가깝게 지내던 유니시스 허낸데즈 LA 시의원으로부터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지역 활동가 출신의 히스패닉 여성인 허낸데즈는 고메즈 측 운동원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인종차별적 언행을 한다고 알려왔다.
그날 허낸데즈는 집에 찾아온 고메즈 측 운동원이 가족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며 “상대 후보가 아시안인 거 알죠, 그렇죠?”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허낸데즈는 집 밖으로 나서던 운동원을 멈춰 세웠다.
“그런 말을 왜 하는 거죠? 그런 게 인종차별인 거 몰라요?”(허낸데즈)
“그냥 사실을 전했을 뿐이에요.”(운동원)
허낸데즈는 트위터에 이날 일을 올리며 “충격적이고 실망스럽다. 우리는 적어도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데이비드는 “그녀가 같은 소수인종으로서 다른 집단이 겪는 부당함에 함께 분노해 줬다는 게 고마웠다”고 했다.
선거가 다가올수록 히스패닉과 당원들을 결집시키려는 고메즈 측 공세는 거세졌다. 구글에 ‘데이비드 김’을 치면 고메즈 측이 만든 웹사이트가 여러 개 떴다. 사이트에는 데이비드가 18세 때 아버지의 요구로 6개월가량 공화당에 가입했던 기록을 제시하며 민주당원으로 위장한 공화당원이며 열렬한 트럼프 지지자라는 등의 허위 사실이 나열돼 있었다.
○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선거 후 2주쯤 지난 11월 21일, 데이비드는 LA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 세계 한인들이 모이는 ‘디아스포라 다이얼로그’ 행사에 초청을 받아 가던 길이었다. 탑승을 10여 분 앞두고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데이비드는 커밍아웃 이후 아버지의 연락을 피해 왔지만, 7월 두 부자는 한인타운의 한 식당에서 서로 끌어안고 울었다. 그날 아버지는 “네가 그렇게 태어난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너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있다면 내가 대신 받겠다”고 했다. 데이비드가 한인타운의 대형 교회에서 연설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놔준 것도 아버지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생각이 완전히 바뀌기까진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선거도 질 거 같은데 동성애자라는 게 세상에 알려지고 이게 무슨 망신이냐. 이제라도 그 영화에서 동성애 부분은 빼달라고 해.” 데이비드는 아슬아슬한 개표 상황보다 아버지의 말에 더 기운이 빠졌다.
데이비드는 서울에 5일간 머물며 한국의 청년 정치인들과 재외동포로부터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개표 결과가 매주 2번씩 업데이트되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롤러코스터예요. 영화를 보신 어느 분이 ‘데이비드는 지더라도 이긴 것’이라고 격려해 주셔서 용기가 나더군요. 떨어지더라도 어려운 분들을 도울 수 있는 포지션에 있고 싶어요.”
이번 중간선거에서 연방하원에 출마한 한국계 후보는 데이비드를 포함해 총 5명이다. 이 중 현직 의원인 4명은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CA 34지구는 아직 개표가 끝나지 않았다. 11월 말 기준(개표율 98%)으로 데이비드는 49%의 지지를 받아 고메즈를 3000여 표 차로 추격하고 있다. 최종 결과는 12월 5일 확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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