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카타르 월드컵 현장에서 브라질은 한국 취재진들의 레이더망 먼 곳에 있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조별리그 1차전을 앞두고는 우루과이만을, 2차전에는 가나를, 최종전에서는 포르투갈만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처럼 취재진들도 한국 대표팀의 훈련 등을 챙기는 한편 대표팀의 ‘다음 상대’에 많은 관심을 갖는다. 또한 2차전까지 한국이 1무 1패로 16강을 장담할 수 없었으니, 아무리 세계적인 팀이라고 해도 옆조(G조)의 브라질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이 3일 포르투갈을 꺾고 극적으로 16강 진출권을 획득하고 같은 날 브라질이 G조 1위를 확정지으며 두 팀의 16강전 맞대결이 성사됐다. 3일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열린 브라질과 카메룬의 경기에 적잖은 한국 취재진이 몰렸고, 5일 공개된 브라질 대표팀의 훈련에도 많은 한국 취재진이 찾아갔다.
전 세계적으로 팬이 많은 팀답게 훈련장 시설도 달랐다. 도하 시내 남쪽에 있는 ‘알 아라비 훈련장’인데, 용도 자체가 훈련장이었다기보다 한국에 비유하면 K리그2 리그를 치를 수준의 소규모 경기장이었다. 관중석에 기자석이 마련돼 있고 취재진들을 위한 훈련장 내 기자실은 지역 클럽 팀의 핸드볼경기장을 임시 개조해 사용하고 있었다. 한국 대표팀의 훈련장이 비밀스러운 인상을 준다면 이곳은 언제든 보여줄 뜻이 있다는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훈련장 인심도 후했다. 당초 브라질 대표팀의 공개 훈련 공지가 뜨고 첫 15분만 공개한다고 했지만 30분 동안 브라질 대표팀 선수들의 훈련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몸을 풀고 훈련장에 나온 선수들은 축구를 ‘즐기고 있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내내 밝은 모습으로 훈련에 임했다. 멀리서 그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 지 알 수 없었지만, 한국식으로 술래잡기를 하는 모습이라든지 누구 하나가 벌칙 게임을 하다 걸려서 춤을 춘다든지 하는 모습이었다.
눈에 보이는 브라질 대표팀 훈련장 분위기는 저녁 시간에 환하게 켜진 조명처럼 밝았지만 한 꺼풀 벗겨보면 브라질의 분위기는 마냥 밝아 보이지만은 않다. 훈련이 시작되기 약 2시간 전 브라질 대표팀은 알라이얀의 메인미디어센터(MMC)에서 16강전을 하루 앞두고 열리는 공식 기자회견을 가졌다. 여기서 브라질 언론들은 치치 감독을 향해 날선 비판을 했다. 가브리에우 제주스(아스날), 알렉스 텔리스(세비야)가 월드컵 기간 중 부상으로 남은 경기 출전이 어려워졌는데, 브라질 대표팀의 치치 감독이 부상을 안고 있던 선수들의 경기 출전을 강행시켜 부상을 키웠다는 게 요지다. 치치 감독은 “선수의 소속팀과 대표팀의 의료진들이 바보는 아니다. 의료진이 안 된다고 했다면 나도 선수를 출전시키지 않는다. 내부 사정을 모르고 음모론을 펼치는 자들의 가짜뉴스에 선동되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크고 작은 부상자가 많았던 탓에 조별리그 3차전에서 카메룬에 0-1로 패했던 터라 취재진과 코칭스태프 모두 날이 서 있었다. 설상가상 암 투병 중으로 알려진 축구영웅 펠레(82)의 위독설이 심심찮게 돌아 영웅 앞에 우승트로피를 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미션이 주어진 브라질에게 의미없을 경기라도 패배는 있을 수 없었다.
5일 훈련장에 기자회견장에서 언급됐던 제주스, 텔리스 두 선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엉덩이 근육을 다친 알렉스 산드루(유벤투스)도 이날 훈련 대신 회복에 전념하기로 해 훈련장에 오지 않았다. 프레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파비뉴(리버풀)도 정상 훈련을 소화하는 대신 축구장 주변 트랙을 천천히 뛰며 몸을 풀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오른 발목 부상을 당한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맹)가 훈련 시작 8분 만에 모습을 드러내며 훈련을 소화해 골키퍼 3명을 제외한 23명 중 18명이 정상 훈련을 소화했다.
월드컵 우승을 노리려면 총 7경기를 치러야 한다. 경기를 거듭할수록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며 부상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기에 아직 3경기 밖에 안 치른 지금부터 부상자가 많으면 머리가 아프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오른 발목 부상을 당해 2, 3차전을 결장하고 최근 훈련에 복귀한 네이마르도 순간적인 좌우 방향전환 등이 매끄럽지 못해 100%는 아닌 모습이다.
훈련장에서 3km 떨어진 곳에 있는 브라질 대표팀의 숙소의 분위기도 훈련장과 달리 삼엄하긴 마찬가지였다. 조별리그 1차전이 열리기 전까지 이곳은 브라질 축구 팬들이 찾아와 응원전을 펼치던 축제의 장이었다. 하지만 토너먼트 첫 경기를 하루 앞둔 이곳은 브라질 대표팀이 없던 곳처럼 한산했다. 숙소 정문 말고 브라질 대표팀 차량이 드나드는 별도의 출입구가 있는데, 이곳은 경찰이 지키면서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숙소 정문에 근무하는 관계자들도 “아예 출입구가 달라 이곳에서 본지는 오래됐다. 숙소 안의 식당에 가야 선수들의 모습을 가끔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다른 레지던스와 공사장 등이 참호처럼 브라질 대표팀 숙소 주변을 빙 둘러싸 두 출입구 외에 다른 곳에서 브라질 대표팀의 분위기를 감지하기는 어려웠다.
다만 에이스 네이마르만이 훈련장 안팎에서 ‘하드캐리’를 하고 있다. 훈련이 끝나고 몇 시간 뒤 브라질 대표팀의 머리를 담당하는 미용사 나리코의 인스타그램에 이날 흰색으로 염색을 마친 네이마르의 사진이 올라왔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네이마르의 머리색은 갈색이었다. 바뀐 모습으로 한국전에서의 복귀를 예고하며 팀의 사기도 끌어올리고 있다.
브라질은 명실상부 세계 최강이다. 한국이 상대하기에 버거운 상대인 게 현실인 건 맞다. 하지만 브라질의 최근 모습들을 보면 한계 이상을 쏟아 부을 한국 대표팀이 마냥 어깨를 움츠릴 이유는 없다. 공은 둥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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