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12일(현지 시간) 수입품에 ‘탄소국경세’를 물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이어 또 하나의 무역장벽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CBAM가 내년 10월부터 시범 운영되기 전에 탄소 배출량 산정 방식이 국내 기업에 유리하게 확정되도록 EU와 협의하기로 했다.
유럽의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완벽히 준수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다”며 보호무역주의가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하지만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가 철강 등 탄소 배출이 많은 역내 산업계에는 무료 배출권을 부여했다는 점을 들어 많은 전문가들이 이를 국제규범 위반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3일 국무조정실, 산업통상자원부, 기획재정부 등 유관부처들 또한 정부 서울 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대응 현황을 점검했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CBAM이 본격 시행될 때 철강 등 대(對)EU 수출 산업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비해 중소·중견기업을 포함한 국내 기업의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또한 이달 초 벨기에 브뤼셀에서 EU 관계자들과 만나 “CBAM이 ‘유럽판 IRA’가 될 수 있다”며 우려를 제기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CBAM 적용 품목의 EU 수출 규모는 지난해 기준 △철강 43억 달러 △알루미늄 5억 달러 △시멘트 140만 달러 △비료 480만 달러 등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제품 및 생산 방식 별로 유리한 탄소 배출량 산정법을 국내 산업계와 협의한 뒤 이를 바탕으로 EU와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CBAM은 수입품의 탄소 함유량을 조사한 후 배출량이 EU 기준을 초과하면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한 탄소 가격을 추가로 부과하는 제도다. 수출 기업에는 일종의 추가 관세 성격을 지녀 무역 장벽 우려가 높다. 이번 합의에 따라 EU에 수출하는 기업은 첫 3년간 탄소 집약도가 높은 철강, 시멘트, 비료, 알루미늄, 전력, 수소 관련 수입품의 탄소 배출량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2026년 정식 시행 때 대상을 확대한다는 것이 EU 측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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