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념 미래 헬기 美 V-280 시대 눈앞

  • 주간동아
  • 입력 2022년 12월 18일 10시 17분


평양까지 20분 만에 침투… 한국도 美 ‘합동 다목적 항공기’ 공동개발 나서야

미국의 미래 장거리 강습 항공기(FLRAA) V-280 밸러. [텍스트론 제공]
미국의 미래 장거리 강습 항공기(FLRAA) V-280 밸러. [텍스트론 제공]
한국군의 주력 기동헬기 UH-60 ‘블랙호크’는 1970년대 첫 등장 이후 거듭 개량돼 지금도 세계 최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군은 베트남전쟁 당시 UH-1을 대량 운용하며 헬기의 장점과 단점을 두루 파악했다. 당시 미국이 확보한 헬기 기술을 집약한 결과물이 블랙호크다. 그 덕에 블랙호크는 시제기 완성 50년이 다 된 지금도 경쟁자를 찾기 어려운 최강 헬기로 군림하고 있다.

‘100년 헬기’ 앞둔 블랙호크
UH-60의 최신 개량 버전이 바로 UH-60V다. 현재 미군이 대량 운용 중인 UH-60L, UH-60M 모델의 엔진과 동력계통을 대거 교체해 속도, 탑재 능력, 악천후 비행 능력이 강화됐다. 같은 시리즈의 헬기 최초로 반(半)자율 비행 기능도 추가됐다. 군용 헬기에 요구되는 속도·항속거리·비행 안정성·신뢰성은 물론, 가격경쟁력도 갖춰 2050년대 초반까지 사용될 예정이다. 블랙호크의 민수용 라인인 S-70 시리즈도 끊임없는 개량을 거쳐 새 모델이 계속 출시되고 있다. 블랙호크 시리즈가 앞으로 ‘100년 헬기’의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블랙호크 시리즈는 분명 명품 헬기이지만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전장 환경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블랙호크의 완성도가 아무리 높아도 헬기는 헬기일 뿐이다. 로터(rotor·회전부품)를 돌려 양력, 추진력을 얻는 헬리콥터 구조상 속도와 탑재 중량을 늘리는 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 로터의 회전 속도를 올리는 것은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지만, 섣부른 가속은 심각한 부작용을 야기한다. 우선 로터 블레이드 주변 제트기류가 비행 안정성을 위협할 정도로 강해질 수 있다. 로터 블레이드 끝단의 속도가 음속을 넘어서면 그 충격파로 기체가 파손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모든 헬기는 설계 과정에서 메인 로터의 분당 회전수를 약 600회 미만으로 제한한다. 기체 형상과 중량에 따라 다르지만 이 정도 회전수로 얻을 수 있는 최대속력은 시속 500㎞ 정도다.

헬기의 또 다른 치명적 단점은 짧은 항속거리다. 헬기는 고정익 항공기에 비해 양항비(lift-drag ratio: 양력과 항력의 비율)가 대단히 떨어진다. 고정익 항공기는 엔진이 꺼져도 관성 에너지와 날개가 만들어내는 양력으로 어느 정도 활공할 수 있다. 반면 헬기는 엔진이 꺼지면 로터 블레이드가 멈추고 양력과 추진력이 사라져 곧장 추락한다. 관성 에너지, 양력 덕분에 엔진 회전수를 적절히 조절해 연비를 끌어올릴 수 있는 고정익 항공기와 달리, 헬기는 공중에 떠 있으려면 엔진에 계속해서 연료를 퍼부어야 한다. 여러 차례 공중급유를 하더라도 헬기의 대륙 간 횡단 비행이 사실상 불가능한 이유다.

‘테러와 전쟁’에서 드러난 헬기의 한계
미군의 UH-60 블랙호크 헬리콥터. [GETTYIMAGES]
미군의 UH-60 블랙호크 헬리콥터. [GETTYIMAGES]
2000년대 초반 미군은 ‘테러와 전쟁’에서 헬기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다. 수직이착륙할 수 있는 헬기는 공중강습과 침투작전에서 핵심이다. 하지만 고정익 항공기에 비해 너무 느리고 항속거리도 짧은 게 근본 문제다. 중동 전장에서 속도가 느린 헬기의 생존성은 상당히 낮았다. 항속거리가 짧아 수시로 급유를 받아야 했고 중화기나 차량을 실어 나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미국은 헬기 전력을 지속적으로 개량했지만 헬기라는 항공기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긴 어려웠다. 그래서 미국이 시작한 게 미래 수직 항공기(FVL) 계획이다. 이 사업은 소형 정찰헬기 OH-58 시리즈부터 블랙호크, 아파치, 치누크 등 모든 유형의 회전익 항공기를 대체하는 사업으로 점점 몸집을 불렸다. 급기야 공군 전술 수송기 C-130도 수직이착륙 항공기로 대체한다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됐다. 그 결과물이 합동 다목적 항공기(JMR) 사업이다.

미국의 미래 공격정찰항공기(FARA) 사업 수주에 나선 벨 헬리콥터의 ‘벨 360 인빅터스’(위)와 시코르스키의 ‘라이더-X’. [벨 헬리콥터 제공, 록히드 마틴 제공]
미국의 미래 공격정찰항공기(FARA) 사업 수주에 나선 벨 헬리콥터의 ‘벨 360 인빅터스’(위)와 시코르스키의 ‘라이더-X’. [벨 헬리콥터 제공, 록히드 마틴 제공]
미군의 JMR 사업은 헬기 체급에 따라 다양한 갈래로 진행된다. 우선 JMR-L(light)은 OH-58 ‘카이오와 워리어’를 대체하는 소형 무장 정찰헬기 사업이다. 미래 공격정찰항공기(FARA) 사업으로도 불린다. 현재 미국 벨 헬리콥터의 ‘벨 360 인빅터스’와 시코르스키의 ‘라이더-X’가 수주를 놓고 경합 중이다. JMR-L보다 하나 위 체급인 JMR-ML(medium light)의 경우 현재 구체적인 사업안을 검토하고 있다. UH-60 블랙호크와 AH-64 아파치를 대체할 중간 체급 JMR-M(medium)은 미래 장거리 강습 항공기(FLRAA)라는 명칭으로 벨-텍스트론 컨소시엄의 ‘V-280 밸러’, 시코르스키-보잉 컨소시엄의 ‘SB-1 디파이언트-X’가 경합해 전자가 승리했다. 현재 미 국방부와 항공기 제조업계가 사업 일정을 조율하는 JMR-H(heavy)는 CH-47 치누크를 대체할 대형 항공기로 2035년 이후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C-130과 A-400급 전술수송기를 수직이착륙 수송기로 대체하는 JMR-U(ultra) 사업은 현재 기술 검토 단계다.

美, V-280 성능 향상에 13억 달러 추가 투자
미국의 수직이착륙기 V-22 오스프리. [뉴시스]
미국의 수직이착륙기 V-22 오스프리. [뉴시스]
JMR 사업으로 기존 항공기 구분법을 뛰어넘는 혁신적 형태의 기체가 등장할 전망이다. 향후 세계 헬기 시장 및 산업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는 게 가장 규모가 큰 JMR-M, 즉 FLRAA 사업이다. 해당 사업 수주전은 틸트로터(tiltrotor)와 동축반전로터(coaxial rotor) 방식 모델이 맞붙은 세기의 헬기 대결로 관심을 모았다. 미 국방부는 12월 5일 틸트로터 방식을 채택한 벨-텍스트론 컨소시엄의 V-280 밸러 손을 들어줬다.

틸트로터란 이착륙할 때 로터 블레이드를 수직으로 세워 헬기처럼 양력을 얻고, 일정 고도·속도에서는 터보 프롭 항공기처럼 수평으로 눕혀 고속 비행하는 항공기다. 헬기와 고정익 항공기의 장점을 결합해 등장 당시 엄청난 화제가 됐지만 그만큼 구조가 복잡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미군 최초 실용 틸트로터 항공기 V-22는 1989년 첫 비행에 성공했지만 양산까지 무려 18년이 걸렸다. V-22를 발전시켜 크기를 줄인 모델이 V-280이다. 당초 FLRAA 사업은 헬기 속도 및 항속거리 부족을 해결하고자 등장했기에 미 육군과 해병대는 방산업체 측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성능을 요구했다. 특히 해병대는 현재 주력인 UH-1Y 계열 헬기를 훌쩍 뛰어넘는 스펙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각각 △속도 성능 시속 565㎞ △급유 없이 676㎞ 비행 △공중급유 시 3195㎞ 논스톱 비행 △화물 수송 능력 내부 2t, 외부 4.5t이다. 이 같은 ‘최저 요구 성능’에 헬기 제조업체 대부분이 나가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승자가 바로 V-280이다.

V-280은 안전사고를 여러 번 낸 V-22 ‘오스프리’ 개발·운용의 교훈을 반영해 개발됐다. 오스프리와는 전혀 다른 구조의 틸트로터 시스템을 채택해 이른바 2세대 틸트로터 항공기로 분류된다. 엔진과 로터 축 전체가 회전하는 기존 V-22와 달리, 엔진은 그대로 있고 로터 축만 90도로 움직이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움직이는 부분을 최소화해 고장 가능성을 줄인 설계다. V-280은 동체와 날개 중앙에 구동축을 연결해 엔진 하나가 피격돼 멈춰도 반대쪽 엔진을 이용해 모든 로터를 돌릴 수 있게 설계됐다. 디지털 플라이 바이 와이어(FBW) 시스템을 3중으로 구축해 비행 안정성도 크게 높였다. V-280은 2017년 12월 시제기 등장 후 5년 동안 보완·개선을 통해 기계적 신뢰성을 제고했다. 미국은 향후 19개월 동안 13억 달러(약 1조6800억 원)를 추가 투자해 V-280의 성능을 끌어올리고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런 개량을 통해 V-280 성능은 기존 회전익 항공기를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V-280의 최대 이륙중량은 약 14t으로 블랙호크(10.6t)보다 많다. 탑재중량은 내부 2t, 외부 4.5t으로 각각 1.2t, 4.1t인 블랙호크보다 늘어났다. 탑승 가능 병력이 11명에서 14명으로 증가했는데, 내부 공간이 상당히 커져 편의성도 향상됐다. 속도는 블랙호크(294㎞/h)의 2배 수준인 565㎞/h로, 무(無)급유 작전반경은 블랙호크(590㎞)의 2.5배인 1480㎞로 증가했다. 물론 이런 스펙은 시제기 기준으로, 양산기의 속도와 작전반경은 더 향상될 예정이다.

헬기 대격변기, 한국도 참여해야
한국군이 블랙호크를 대체할 차세대 공중기동 플랫폼으로 V-280을 도입하면 어떨까. 그럼 수도권 북부 군사시설에서 평양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저까지 20분이면 침투할 수 있다. 항속거리가 길어 1시간이면 북한 상공에 침투해 작전을 수행하고 현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일반 헬기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미국은 현재 운용하는 UH-60 계열 헬기 2300여 대를 2030년부터 V-280으로 대체할 예정이다. V-280 기반의 무장형 모델로 AH-64 계열 공격헬기도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V-280 양산기 목표 가격을 4300만 달러(약 557억 원)로 잡고 있다. V-280이 UH-1, UH-60, AH-64 계열을 모두 대체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체 사업 규모는 수백조 원에 달할 전망이다. 사업 규모가 워낙 크다 보니 미국 정부는 물론, 제작사들도 해외 파트너를 구하고 있다. 이미 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IAI)은 2016년 사업에 합류해 V-280 주요 부품을 납품 중이다. 유럽과 일본 업체들도 사업 참여를 타진하고 있다.

미군은 2030년부터 V-280을 본격 도입할 예정이다. 비슷한 시기에 블랙호크 대체기 사업을 진행할 한국도 V-280 개발 및 생산에 참여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다른 체급 JMR 사업의 공동개발국으로 나설 필요도 있다. 지금은 회전익 항공기의 역사가 바뀌는 대격변기다. JMR 사업은 그 중심에 선 사업이다. 정부의 결단과 적극적 투자 및 지원으로 군사력 강화와 항공산업 도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69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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