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직장인들이 연말만 되면 스트레스 받는 까닭은[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31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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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의 스트레스 ‘송년회’
미국은 즐거운 파티라던데…
의상은 어떻게? 대화는 어떻게? 복잡한 규칙

미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십니까. 영어를 잘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정미경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으로 모이십시오. 여러분의 관심사인 시사 뉴스와 영어 공부를 다양한 코너를 통해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래 링크로 구독 신청을 해주시면 기사보다 한 주 빠른 월요일 아침 7시에 뉴스레터를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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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영화 ‘Office Christmas Party’는 회사 송년 파티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영화다. 위키피디아
2016년 미국 영화 ‘Office Christmas Party’는 회사 송년 파티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영화다. 위키피디아


“It’s back!”
(그것이 돌아왔다!)

미국 직장인들은 어디서 잡담을 나눌까요. 정수기 앞입니다. 정수기에서 목을 축이며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눕니다. 그래서 직장인들의 격의 없는 대화를 ‘water cooler talk’(워터쿨러 토크)라고 부릅니다. ‘water cooler’는 냉각 기능을 갖춘 정수기를 말합니다.

요즘 워터쿨러 토크의 화제는 “it’s back”이라고 미국의 한 경영 전문지가 전했습니다. 마치 암호처럼 주고 받는 ‘it’(그것)은 괴물도 아니고, 무서운 상사도 아닙니다. 바로 회사 송년 파티입니다. 팬데믹 때문에 몇 년을 건너뛴 송년 파티가 올해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직장인들은 회사 송년 파티가 끝나야 일년을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을 가집니다. 송년회를 필수 코스로 여기는 한국 직장인들과 비슷합니다.

크리스마스를 전후해 열리는 회사 송년 파티는 ‘office Christmas party’로 불립니다. 크리스마스를 즐기지 않는 직원들에 대한 포용성 차원에서 ‘Christmas’를 ‘holiday’로 대체하는 것이 요즘 추세입니다.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가 있을 정도로 회사 송년 파티는 화제가 넘치고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행사입니다. 올해는 오랜만에 열리는 행사인 만큼 축제 분위기가 한층 달아올랐다고 CNN은 최근 기업들의 송년 파티 현장을 취재하면서 전했습니다.

한국 직장 송년회는 부서 중심이지만 미국에서는 전사적, 또는 디비전(사업 부문) 차원에서 대규모로 열립니다. 일단 앉고 보는 한국 송년회와 달리 계속 서서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는 ‘스탠딩 파티’ 형식으로 열립니다. 미국인들은 파티에서 신나게 즐기지만 회사 송년 파티는 다릅니다. ‘일의 연장’이라고 보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회사의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긴장감을 가지고 참석합니다. 미국 직장 문화를 알고 싶다면 빠질 수 없는 현장, 회사 송년 파티를 들여다봤습니다.

미국 카드사가 제작한 회사 송년 파티 초대장 견본. 무료로 내려받아서 초대장을 꾸미면 된다. 재즐 홈페이지
미국 카드사가 제작한 회사 송년 파티 초대장 견본. 무료로 내려받아서 초대장을 꾸미면 된다. 재즐 홈페이지
“Will you attend?”
(참석하시겠습니까?)

파티는 초대장으로 시작됩니다. 송년 파티 시즌이 되면 직장인들은 e메일을 열심히 체크합니다. 초대장은 e메일로 날아옵니다. 초대장 인사말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commitment’(사명감). 회사는 송년 파티에 참석해 조직에 대한 사명감을 보여 달라고 직원들을 독려합니다. 송년 파티 참석을 의무화하는 회사는 없지만 참석률은 매우 높습니다. 경영 전문지 조사에 따르면 미국 포천 500대 기업 임직원의 송년회 참석률은 90%대입니다.

초대장은 ‘RSVP’(프랑스어 répondez s‘il vous plaît의 약자) 형식이므로 꼭 답신을 해줘야 합니다.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답신을 줘야 합니다. 우선 ‘will you attend?’(참석하겠는가) 공란에 표시합니다. 가족 등 동반객도 허용되는 파티라면 ‘number of guest’(동반객 수)도 알려줘야 합니다. 요즘은 ‘dress code’(복장 규정)와 ‘codes of conduct’(행동수칙)를 초대장에 포함시키는 회사들이 늘고 있습니다.

복장은 회사 송년 파티에서 가장 까다로운 부분입니다. 남성 직원들은 업무 의상을 그대로 입고 참석하면 됩니다. 반면 여직원들은 파티 의상으로 갈아입습니다. 파티 의상은 어느 정도 노출이 허용됩니다. 노출 의상을 ‘show some skin’(피부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출이 지나치면 “trash”(쓰레기) “cheap”(싸구려) 등의 구설수에 오르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여직원들의 의상 불문율은 “something elegant”(우아한 쪽)로 통합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나오는 회사 송년 파티 장면. 위키피디아
“Don’t talk shop!”
(일 얘기는 사절!)

미국 파티에서 대화 능력은 필수입니다. 대화에 어울리지 못하고 구석진 곳에 혼자 있는 사람에게는 “party loner”(외로운 파티객)라고 부릅니다. ‘파티 로너’가 되지 않으려면 상대에게 다가가 대화를 터야 합니다. 파티나 모임에서 잘 모르는 상대와 친해지기 위해 던지는 질문을 ‘icebreaker question,’ 또는 줄여서 ‘icebreaker’라고 합니다. 술술 말 잘하는 미국인들이지만 아이스브레이커 질문을 던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이스브레이커 질문을 다룬 책도 많고 인터넷을 검색해도 줄줄이 뜹니다.

“What bucket list item do you most want to check off in the next six months?”(6개월 내로 가장 실현하고 싶은 당신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이냐?) 한 경영서가 꼽은 모범 아이스브레이커 질문입니다. 질문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동시에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보여줘야 합니다. 또 너무 가볍지 않으면서 상대에게 생각할 여지를 줘야 합니다. 반면 하지 말아야 할 아이스브레이커 질문으로는 “how much money do you make?”(돈은 얼마나 버냐?), “who is your office crush?”(같은 사무실에서 좋아하는 동료가 있냐?) 등이 꼽혔습니다.

대화의 불문율은 ‘업무 얘기는 사절’입니다. 이를 “don’t talk shop”이라고 합니다. ‘shop’은 가게, 즉 회사를 말합니다. “가게 얘기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한국인들이 흔히 회사 얘기를 하는 것을 “공장 얘기 한다”고 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미국의 한 회사 송년 파티에서 건배를 하는 장면. 미국외과의사협회 홈페이지
“Know your limits.”
(너의 한계를 알아라)

송년 파티 초대장에 직원들이 지켜야 할 행동수칙 1호로 “know your limits”라고 못을 박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한계를 알라”는 것은 “과음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송년 파티에서 문제를 일으켜 HR file(인사고과 기록)에 남는 직원의 대부분은 술과 관련된 사건사고 때문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회사 파티에 암묵적으로 적용되는 음주 규칙은 시간당 1잔 이내입니다. 그냥 술잔을 들고 있는 시늉만 하는 정도여야 합니다. 술 종류를 섞어 마시지 말도록 권하는 회사들도 많습니다. 이를 “do not mix grape and grain”라고 합니다. “포도와 곡물을 섞지 말라,” 즉 “과실주와 곡물주를 섞어 마시지 말라”는 뜻입니다.

“Always be first into the office the next day.” 성공 지향적 직장인들 사이에 널리 알려진 격언입니다. “회식 다음날 가장 먼저 출근하는 직원이 되라”는 것입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송년회 다음날 행오버(숙취) 때문에 지각이나 결근하는 직원을 가장 싫어합니다. 실은 술 때문이면서 아프다는 거짓 핑계로 회사에 지각 결근 전화를 거는 것을 “call in sick”이라고 합니다.
명언의 품격
1901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오른쪽)이 흑인 운동가 부커 T 워싱턴을 백악관에 초청해 만찬을 열었을 때 삽화. 시어도어 루즈벨트 센터 홈페이지
1901년 10월 16일은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날입니다. 흑인이 처음으로 백악관 파티에 초대된 날입니다. 초대된 손님은 흑인 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부커 T 워싱턴. 대선 때 흑인 표를 모으는데 도움을 받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워싱턴을 위한 만찬을 열었습니다.

흑인이 손님 자격으로 백악관 만찬에 참석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쇼킹한 사건이었습니다. 백악관은 흑인 노예들을 인부로 써서 건설된 곳입니다. 흑인을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조차도 엄두를 내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흑인 차별이 심했던 남부의 백인들로부터 거센 반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워싱턴은 남의 눈을 피해 백악관 뒷문으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만찬 후에는 살해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도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욕을 들어야 했습니다.

“I see a way to settle it/ Just as clear as water/ Let Mr. Booker Washington/ Marry Teddy‘s daughter.”
(나는 논란을 해결할 확실한 방법을 안다네. 부커 워싱턴이 테디의 딸과 결혼하면 되지)

당시 유행했던 ‘niggers in the White House’(백악관의 깜둥이들)라는 시의 한 구절입니다. 워싱턴의 백악관 만찬을 조롱한 이 시는 작자 미상으로 남부 백인이 지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는 살벌한 내용입니다. 그나마 정제된 표현이 나오는 곳은 워싱턴과 테디(루즈벨트 대통령의 애칭)의 딸을 결혼시켜야 한다는 구절입니다. 워싱턴의 백악관 만찬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가족도 참석했었습니다. 과거 미국에서는 흑인 남성을 백인 여성에 대한 성적 위협으로 간주하는 문화가 지배적이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딸이 워싱턴과 대면한 이상 그와 결혼시켜 흑인 계급으로 추락시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과 굴욕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 시는 오늘날까지 미국 흑인들 사이에 널리 전해져 내려옵니다.
실전 보케 360
최근 미국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가 백악관 크리스마스 장식을 공개했다. 질 여사는 10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 백악관 곳곳에 41개 크리스마스트리를 설치하고 수천 개의 장식품을 달았다. 백악관 홈페이지
실생활에서 쓰는 쉬운 단어를 활용해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출입 기자들을 위한 송년회를 열었습니다. 8일 방송 매체, 13일 신문 및 기타 매체 기자들을 대상으로 열렸습니다. 그런데 일부 기자들을 초청객 명단에서 제외시키면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폭스뉴스, 뉴욕포스트, 데일리콜러 등 주로 보수 성향의 매체들이 제외됐습니다. 제외된 기자들은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언론 브리핑에서 초청객 선정 기준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I can’t comment on what determines which outlets make the list.”
(매체가 명단에 포함되는 것을 결정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코멘트할 수 없다)

‘list’는 ‘명단’ ‘목록’을 말합니다. ‘make the list’는 ‘명단을 만들다’가 아니라 ‘명단에 들다, 포함되다’는 뜻입니다. ‘명단을 만들다’는 ‘make a list’입니다. ‘make the list’는 이미 명단이 있고, 그 명단 안에 ‘들어가다’는 뜻입니다. 대신 ‘make the cut’을 써도 됩니다. ‘컷을 만들다’는 ‘합격선 안에 들어오다’는 의미입니다. 매체 포함을 결정하는 요소가 무엇인지에 대해 코멘트 할 수 없다는 장피에르 대변인은 대답은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18년 12월 18일 소개된 영화 ‘다이하드’에 대한 내용입니다. 영화는 잘 모르는 사람과도 대화를 트기 쉬운 주제입니다. “What’s your favorite Christmas movie?”(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뭐예요?) 송년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입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영화로는 1988년 개봉한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다이하드’가 꼽힙니다. 크리스마스에 관한 영화는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TV에서 단골로 틀어줘서 미국인들 사이에 크리스마스 영화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2018년 12월 18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81218/93346963/1

영화 ‘다이하드’를 크리스마스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위키피디아
영화 ‘다이하드’를 크리스마스 영화로 분류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위키피디아
최근 미국 연예잡지 ‘할리우드 리포터’ 조사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TV에서 가장 많이 방송되는 특집 영화는 ‘다이하드(Die Hard)’라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마치 사골 우려먹듯이 ‘다이하드’가 이 채널 저 채널에서 방송됩니다. 소셜미디어에서는 ‘다이하드’ 논쟁이 뜨겁습니다. 논쟁의 핵심은 과연 ‘다이하드’를 ‘크리스마스 영화’로 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다이하드’는 크리스마스가 배경이지만 핵심 줄거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I do get offended, because what is your benchmark?”
(기분 나쁘다, 당신들에게 기준은 무엇이냐?) 

‘다이하드’의 각본가 스티븐 드 수자는 ‘다이하드’가 크리스마스 영화가 아니라는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기분이 나쁘다”(get offended)고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배경으로 나오니 당연히 크리스마스 영화라는 겁니다. 아니라는 사람들에게 “당신들에게 크리스마스 영화의 기준(benchmark)은 무엇이냐”고 반문합니다.

“‘Die Hard’ fails the test quicker than you can say, ‘Yippee-ki-yay’.”
(‘다이하드’는 ‘이피 카이 야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빠르게 크리스마스 영화 테스트에서 떨어진다)

할리우드 영화평론가 레너드 마틴은 크리스마스 영화인지 아닌지 판단하려면 ‘크리스마스가 영화 스토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가’에 대한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고 합니다. 그 테스트에서 ‘다이하드’는 순식간에 불합격이라는 겁니다. ‘yippee-ki-yay’(이피 카이 야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불합격이라고 합니다. 발음이 쉽지 않은 ‘yippee-ki-yay’는 브루스 윌리스가 극중에서 작전 개시 전에 말하는 대사입니다. ‘신난다’라는 뜻으로 과거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감탄사였습니다.

“‘Die Hard’ is not a Christmas movie!”
(‘다이하드’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아니다!)

논란을 평정하고자 주인공 브루스 윌리스가 나섰습니다. 그는 “‘다이하드’는 크리스마스 영화가 아니다!”라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이유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다이하드’는 여름철 7월에 개봉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크리스마스 영화로 분류되는 영화들 중에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하지 않은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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