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폭풍에 고립된 韓 관광객들 집으로 불러 환대해준 미국인 부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6일 17시 59분


미국에 ‘눈 폭탄’이 쏟아진 23일(현지 시간) 뉴욕에 사는 알렉산더 캄파냐 씨(맨 앞 왼쪽)와 부인 안드레아 씨(캄파냐 씨 바로 뒤)가 최요셉 씨(오른쪽)를 비롯해 눈길에 발이 묶인 한국인 관광객들을 집으로 불러 들여 같이 식사하며 건배하고 있다. 최요셉 씨 제공


미국으로 신혼여행을 온 최요셉 씨(27) 부부와 단체 여행 온 한국인 관광객 일행은 23일(현지 시간) 오후 2시 뉴욕 외곽 작은 도시 윌리엄스빌을 지나고 있었다. 1시간 전부터 굵은 눈보라가 날리기 시작하더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였다. 승합차를 몰고 나이아가라 폭포로 향하던 이들은 목적지를 30분 정도 앞두고 눈에 파묻혀 오도가도 못했다. 승합차 문을 가까스로 열고 나온 최 씨가 앞에 보이는 집 문을 두드렸다.

“실례지만 삽을 빌릴 수 있을까요?”

집주인 알렉산더 캄파냐 씨(40)와 부인 안드레아 씨가 문을 열었다. 영하 12도 날씨에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다. 캄파냐 씨는 눈에 갇힌 차량과 그 안에서 초조하게 앉아 있던 한국인 관광객 9명을 바라봤다. 그는 삽을 빌려주는 대신 최 씨와 일행을 집으로 초대했다. “(폭설로 유명한) 버펄로 주민으로서 이번 눈은 차원이 확실히 달라요. 폭설 중에서도 ‘다스베이더(영화 ‘스타워즈‘ 속 최대 빌런)급’이라니까요.”

미국에 ‘눈 폭탄’이 쏟아진 24일(현지 시간) 한국인 관광객들이 타고 있던 승합차가 눈에 파묻혀 있다. 최요셉 씨 제공


최 씨 부부를 비롯해 딸과 여행 온 부부, 현지 유학생과 그 어머니, 서울에서 온 대학생들이 멈칫멈칫 캄파냐 씨 집으로 들어섰다. 캄파냐 씨 부부는 이들에게 따뜻한 물과 커피부터 건넸다. 그리고 침실 3개를 내어줬다. 방마다 충분한 소파 침낭 매트리스가 있었다.

주인 부부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던 한국인 관광객들은 그날 밤 한국 음식을 요리하기 시작했다. 최 씨는 26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가져온 한국 식재료들을 누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둘 내놓았다”고 말했다.

현지 한국 레스토랑에서 첫 데이트하고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캄파냐 부부 집에는 고추장 간장 참기름에 김치, 밥솥까지 있었다. 제육볶음 닭도리탕이 속속 만들어졌다. 다음날 저녁도 근사한 한식 메뉴들이 식탁에 올랐다. 캄파냐 부부는 “뜻밖의 인연으로 만난 손님들 덕분에 한국 음식 조리법을 제대로 알게 됐다. 정말 특별한 축복이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에 말했다.

23일(현지 시간) 눈 폭풍에 고립된 한국인 관광객 일행을 맞아준 알렉산더 캄파냐 씨(왼쪽)와 안드레아 캄파냐 씨. 최요셉 씨 제공


25일 도로 제설 작업이 끝나면서 최 씨 일행은 마중나온 차량에 올랐다. 캄파냐 부부와 컵라면에 밥까지 먹은 후였다. 최 씨 부인 클레어 씨는 가지고 있던 ‘한국산‘ 마스크팩을 모두 캄파냐 부부에게 건넸다.

최 씨는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눈 속에 고립돼 위험했을 것이다. 내가 한국에서 낯선 외국인들을 이렇게 환대할 수 있을까 싶었다”며 “예상치 못한 ‘눈 참사’가 맺어준 인연 덕분에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보냈다”고 말했다. 캄파냐 부부는 “절대 이 경험을 잊지 않을 것”이라며 조만간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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