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노르트 스트림 복구 비용 산출…폭발 수사 더 미궁

  • 뉴시스
  • 입력 2022년 12월 27일 10시 22분


15년 전 발트해 해저에 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노르트 스트림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계획이 아이디어 수준일 당시 스웨덴 국방연구원이 “잠수부 1명으로도 폭발물을 설치할 수 있다”면서 이걸 막기 위한 감시가 불가능하다고 경고했었다.

지난 9월 파이프라인 폭발이 발생한 뒤 사건을 수사해온 스웨덴 당국은 특정 국가가 배후일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은 선박에서 폭발물을 떨어트렸거나 잠수함 또는 잠수부가 폭발물을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노르트 스트림처럼 중요한 자산을 어떻게 들키지 않고 파괴할 수 있었는지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미 뉴욕타임스(NYT)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발트해는 완전 범죄를 벌이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해저에 통신케이블과 파이프라인이 복잡하게 깔려 있지만 감시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발트해 연안 9개 나라의 선박들이 빈번하게 오가는 곳이며 선박들은 언제든 자신의 위치 발신 장치를 끌 수 있다.

발트해 해저에는 세계 대전 중 투하된 불발 폭발물이 널려 있다. 이들을 찾아 제거하는 과정에서 해저 폭발을 일으키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러시아를 포함한 발트해 연안 국가들은 해저 작업을 할 수 있는 특수 잠수팀을 보유하고 있다. 소음이 적은 소형 잠수정으로 발각되지 않고 활동할 수 있는 팀이다.

노르트 스트림 폭발이 발생한 직후 여러 나라가 공식, 비공식으로 러시아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직접적 증거는 없지만 갈수록 대범해지는 러시아의 대외 공작활동이 이유가 됐다. 반면 러시아도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영국을 비난했다.

여전히 러시아의 소행으로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러시아 정부가 지배하는 노르트 스트림 파이프라인 소유회사 노르트 스트림 AG가 최근 파이프를 수리해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데 드는 비용을 산출하고 있는 점이 러시아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추측을 일으키고 있다.

노르트 스트림 AG는 수리비용을 일단 5억 달러(약 6351억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했으며 폭파로 인해 해수에 노출된 파이프라인의 내구성이 어느 정도인지도 따져보는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가 노르트 스트림을 폭파했다면 보이기 어려운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러시아의 움직임이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가능성도 있다. 한편 스웨덴 정부가 수사 결과를 서방국에 알리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스웨덴이 누구의 소행임을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1.2m 직경의 철관을 콘크리트로 쌓은 파이프라인을 1150여㎞ 가량 설치하는 노르트 스트림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은 두 번에 걸쳐 진행됐다. 느르트 스트림 I은 2011년에 완공됐고 직후 독일은 러시아의 값싼 천연가스 공급을 늘리기 위해 추가로 건설키로 했다.

미국은 물론 거의 모든 유럽국들이 유럽의 과도한 러시아 에너지 의존을 이유로 추가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에 반대했지만 러시아가 노르트 스트림 II 건설을 밀어붙인 끝에 지난해 9월 완공됐다. 당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에 군대를 집결시키기 시작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우회해 유럽에 천연가스를 공급할 수 있게 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마음대로 타격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르트 스트림 파이프라인을 파괴해야할 이유를 가진 나라들이 한 두 곳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핵심 에너지 기반시설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행위로 간주된다.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공격한 것이 밝혀지면 회원국 사이 신뢰가 크게 악화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한편 우크라이나가 충분한 동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 능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적다. 우크라이나는 발트해 연안국이 아니며 2014년 1척 뿐이던 잠수함도 러시아에 빼앗겼다.

서방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파이프라인 폭발이 러시아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블라디미르 푸틴은 천연가스 공급을 지렛대 삼아 유럽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독일 등 유럽국들이 푸틴의 예상을 깨트렸다. 유럽국들이 여름 내내 천연가스를 비축하자 러시아는 지난 8월 노르트 스트림 I 파이프라인의 가동을 기술적 문제를 이유로 중단했고 다음 달 무기한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직후인 9월26일 폭발이 발생해 노르트 스트림 I, II 파이프라인 일부가 파괴되고 노르트 스트림 II의 일부만 가동이 가능한 상태로 남았다.

천연가스 가격이 고공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점이 러시아가 노르트 스트림 파이프라인을 파괴해도 좋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노르트 스트림 II의 일부를 남겨둔 것은 독일이 에너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책을 바꾸는 상황에 대비한 것일 수 있다.

노르트 스트림 파이프라인 폭발은 스웨덴에서 폴란드로 이어지는 해저 전력선과 매우 가까운 지점에서 발생했다. 이에 대해 스톡홀름동유럽연구센터 마르틴 크라프 부소장은 “어느 곳에서든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폭발 당시 파이프라인을 통한 천연가스 수송이 이뤄지지 않고 있었던 점도 신호를 주기 위한 행위라는 추정을 뒷받침한다. 반면 파이프라인에 천연가스가 이동하지 않고 있었기에 폭발물을 흘려보내 폭발시켰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스웨덴 수사당국은 폭발물 잔여물을 확보했지만 다른 증거를 확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발트해 해저의 상황이 매우 열악해 해저 사진 촬영을 통한 증거 확보가 불가능했다. 파이프라인 보안 장치는 러시아가 파이프라인에 설치한 음파탐지기가 유일했지만 서방 수사 당국은 음파탐지기 자료를 입수하지 못했다.

증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도청과 증인 확보를 위한 첩보전이 가장 유력한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정보 당국은 아직 수집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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