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MS 등 투자한 ‘챗GPT’ 이용
美대학생 ‘흄 호러의 역설’ 과제 내
교수 “초보자엔 완벽해 보일 수준”
챗봇으로 과제 제출 사례 급증
미국 퍼먼대 철학과 대런 히크 교수는 이달 중순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를 읽다가 이상한 글을 발견했다. 문법과 문장은 완벽한데 과제의 핵심에서 벗어난 내용을 자신감 있게 펼치고 있었다. 히크 교수가 제시했던 과제는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이론과 ‘호러의 역설(paradox of horror)’에 대해 논하라는 것이었다.
히크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흄에 대해 모르는 초보자가 봤을 때 완벽해 보이는 에세이였지만 전문가가 볼 땐 헛소리를 완벽한 문장으로 늘어놓는 것 같았다”며 “알고 보니 한 학생이 최신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인 챗GPT(ChatGPT)로 숙제를 한 것이었다”고 적었다.
○ “학생들 AI에 숙제 맡길라” 교육계 비상
챗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투자한 AI 연구단체가 이달 1일 공개한 AI 챗봇이다. 챗GPT는 사람의 자연어를 바탕으로 개발된 초대형 AI로 말의 맥락을 정확히 이해해 빠른 시간에 답을 내놓아 공개 한 달도 안 돼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에 큰 반향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챗GPT는 IT 역사에서 구글의 검색엔진, 애플의 아이폰 뒤를 잇는 파괴적 혁신이 될 것”이라며 “구글 검색엔진의 미래를 위협한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구글 내부는 비상이 걸린 분위기라고 NYT는 전했다.
미국 교육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챗GPT 경계령이 내렸다. 초중고교생부터 대학생까지 챗GPT를 활용해 과제를 제출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히크 교수는 뉴욕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페이스북에 챗GPT 악용 사례를 올리니 동료 교수가 ‘나도 비슷한 사례를 잡아냈다’고 전해왔다. AI를 이용한 속임수를 걸러낼 수 있도록 구술시험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8일 워싱턴포스트도 “교사와 교수들은 대규모 부정행위를 야기할 수 있는 AI 혁명을 보고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며 “학생 2명이 ‘이미 챗GPT로 기말과제를 했다’고 제보했다”고 전했다.
○ 기자가 직접 챗GPT와 채팅해 보니
기자는 오픈AI 홈페이지에 접속해 챗GPT와 채팅하며 흄의 ‘호러의 역설’에 대해 직접 물었다. 그랬더니 1초도 안 돼 영어 1500자 분량의 에세이를 써냈다.
‘호러의 역설이란 철학자 데이비드 흄이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에서 제기한 인간 사고의 실험이다. (중략) 이는 우리의 감정적 반응이 늘 이성적인 것은 아니며 문화적 규범, 개인적 경험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호러의 역설’ 또는 ‘비극의 역설’이라고 불리는 흄의 이론은 사람이 예술 속에서 그려지는 비극이나 공포 같은 불쾌한 감정에서 쾌락을 느끼는 모순을 설명한 것이다. 챗GPT의 설명은 핵심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지만 비전문가에겐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다. 히크 교수는 “다행히 AI가 철학의 높은 경지에 오르진 못했지만 1학년 교양강의에서는 잡아내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챗GPT는 시나 수필도 척척 쓴다. 기자가 채팅창에 “뉴욕에 대한 시를 써보라”고 쓰니 순식간에 ‘잠들지 않는 도시, 흥미로운 것들의 허브’ 같은 구절을 영어로 답해왔다. “살을 빼고 싶다”고 하니 운동과 수면에 대한 5가지 방법과 함께 ‘다이어트를 긴 여정이라고 생각하고 인내심을 가지며 자신에게 친절하라’는 조언도 해줬다.
국내 IT업계 관계자는 “챗GPT는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순식간에 논문도 쓸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며 “한국어로는 아직 미숙하지만 세상의 판도를 바꿔놓을 ‘게임 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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