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 1940~2022]
대장암 투병중 82세로 별세… “영원히 사랑하라” 마지막 메시지
월드컵 3회 우승 유일한 선수… 생전 “하늘서 마라도나와 공 찰것”
‘살아 있는 전설’이던 펠레가 ‘영원한 전설’로 이름을 남기고 영면에 들었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가 30일 오전 3시 27분 브라질 상파울루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향년 82세. 딸 켈리 나시멘투(55)는 아버지가 임종하기 전 자녀들과 손을 함께 모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편히 잠드세요”라는 글로 펠레의 별세를 알렸다. 펠레의 사망 이후 그의 공식 인스타그램에는 “영감과 사랑으로 가득 찬 여정을 보낸 펠레가 오늘 영면했다. 펠레의 삶이 남긴 ‘사랑, 사랑, 영원히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다음 세대에 유산으로 남을 것”이라는 글이 올랐다. 작년 9월 대장암 수술을 받은 펠레는 지난달 29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따른 폐손상 등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펠레는 2년 전 먼저 세상을 뜬 아르헨티나 ‘축구 영웅’ 디에고 마라도나(1960∼2020)의 사망 당시 “훌륭한 친구를 잃었다”고 슬퍼하며 “언젠가는 하늘에서 함께 공을 찰 것이다”고 말했다.
펠레는 92년의 월드컵 역사에서 우승 트로피를 3번(1958, 1962, 1970년) 들어올린 유일한 선수다. 월드컵 데뷔 무대이던 1958년 스웨덴 대회 웨일스와의 경기에서 당시 17세 239일의 나이로 넣은 골은 지금까지도 월드컵 역대 최연소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대회에서 펠레는 역대 최연소 해트트릭(17세 244일), 최연소 우승(17세 249일) 기록도 세웠다. 펠레가 월드컵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1970년 멕시코 대회 결승 상대였던 이탈리아의 수비수 타르치시오 부르니치(1939∼2021)는 “펠레도 나와 똑같이 살과 뼈로 만들어진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축구에서 펠레가 신계(神界)로 등극하는 계기가 된 발언이다.
펠레의 월드컵 우승 꿈은 아버지의 눈물에서 시작됐다. 펠레는 1940년 10월 23일 상파울루에서 300km가량 떨어진 트레스코라송스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그가 열 살이던 1950년 브라질에서 월드컵이 열렸다. 월드컵 첫 우승을 노리던 브라질은 결승에서 우루과이에 패했다. 라디오로 결승전 중계를 듣던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는 걸 펠레는 보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를 위해 반드시 브라질을 월드컵 우승국으로 만들겠다고 예수상 앞에서 다짐했고 8년 뒤 뜻을 이뤘다.
‘축구의 나라’ 브라질에서 A매치(국가대항전) 통산 최다 득점(77골) 기록을 보유한 선수도 펠레다. 1971년에 A매치 마지막 골을 넣었는데 올해 카타르 월드컵에서 2골을 추가한 네이마르에게 51년 만에 공동 1위를 허락했다. 펠레는 1999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운동선수’, 2000년엔 국제축구연맹(FIFA)이 뽑은 ‘세기의 선수’로 이름을 올렸다.
펠레는 축구 외 영역에서도 여러 노력과 영향력의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1995년부터 3년간 브라질 체육부 장관을 맡아 축구뿐만 아니라 스포츠계 전반에 걸친 부정과 부패를 없애는 데 힘을 쏟았다. 펠레가 뛰던 브라질 클럽 산투스FC가 1969년 시범경기를 위해 나이지리아를 방문했을 땐 2년간 이어지던 내전이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 일을 두고 미국 타임지는 “많은 외교관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지만 펠레가 나이지리아 땅을 밟자 전쟁이 사흘간 멈췄다”고 전했다.
브라질 축구 스타 네이마르는 “펠레는 축구를 예술로 바꿔놨다”고 말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우리는 펠레의 육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슬퍼하지만 그는 이미 오래전 불멸의 존재가 됐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것”이라고 했다. 브라질 정부는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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