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최대 격전지 중 하나였던 동부 도네츠크주의 작은 탄광도시 시베르스크. 이곳의 한 지하실에서 남성의 고성이 들려왔다. 올렉산더 뮤레네츠 씨(68)는 이날도 부인 루드밀라 씨(66)에게 언성을 높였다. 직전까지 루드밀라 씨는 수제 보드카에 얼마나 많은 물을 넣어야 하는지 그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계속되는 전투와 혹한의 날씨에 갇혀 장시간 좁은 기간에 함께 생활하는 부부들이 폭발 직전의 ‘한계 상황’에 놓여 있다고 AFP통신은 9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뮤레네츠 부부처럼 많은 부부들이 10개월 넘는 기간 동안 춥고 비좁은 지하 대피시설에 계속 붙어 있다 보니 다툼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AFP는 덧붙였다.
도네츠크주 동쪽 경계 인근에 있는 시베르스크는 지난해 여름부터 러시아군의 끊임없는 미사일 공습이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와 돈바스 지역 간 ‘길목’ 역할을 해 양국 모두에게 중요한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장기화되는 공격에 뮤레네츠 부부의 휴대전화는 이미 끊긴 지 오래이며, 식수와 난방도 해결되지 않은 열악한 상황이다. 함께 위로를 나눌 이웃주민들도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AFP통신은 이곳 주민 1만2000명 중 대부분이 이미 피난을 떠났다고 밝혔다.
이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 부부관계는 점차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전쟁 이전 철도차량 수리를 했던 뮤레네츠 씨는 “이전에는 저녁에만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요즘은 (계속 함께 있다 보니) 언쟁이 잦아졌다“며 ”아내에게 ‘입 좀 닥치라’고 해도 도무지 듣지를 않는다“고 불평했다. 루드밀라 씨는 ”겨울이 오면서 밖으로 나가기 어려워져 더 힘들어졌다“며 ”과학소설(SF)을 읽는 것을 부부싸움의 탈출구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절벽 끝’ 상황일지라도 함께 있어서 다행이라고 밝힌 부부도 있었다. 올렉산더 시렌코 씨(55)와 부인 타마라 씨(63)는 “(지하 대피소에서) 혼자였으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고 AFP는 전했다.
특히 시렌코 씨가 당뇨로 부어오른 아내의 다리를 매일 새 붕대로 감아주고 농담을 건네 준 덕분에 부부관계가 유지될 수 있었다. 시렌코 씨는 “떨어지지 못하고 줄곧 같이 있는 것은 정말 어렵다”며 다만 “(아내가) 계속 투덜거려도 지하실 안에 다른 누군가 있는 것이 (혼자보다) 낫다”고 덧붙였다. 타마라 씨 역시 “남편 없이 혼자서는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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