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선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박람회인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가 열린다. IT 신제품과 최첨단기술의 향후 발전 방향을 보여주는 이벤트다. 지난 2년간 CES는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온라인 비대면으로 열리거나 기간이 단축되는 등 반쪽짜리 행사에 그쳤다. 이제 엔데믹 국면에서 정식 오프라인 행사로 열린 올해 CES는 활기를 띠었다. CES를 주최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꼽은 올해 행사의 주요 키워드 중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모빌리티, 로봇, 메타버스다. 인류 미래 산업의 이정표가 될 이번 CES를 결산해본다.
기조연설 나선 자동차업계 CEO들
자동차는 최근 CES의 주요 화두다. 2021년 ‘vehicle technology’, 지난해 ‘automotive’에 이어 올해 ‘mobility’가 CES의 핵심 키워드로 주목받았다. 2011년부터 포드와 GM,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자동차 업체 최고경영자(CEO)가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올라 이목을 끌었다. 자동차 시장에선 테슬라를 필두로 전기차 기반의 기술 대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어떤 전자기기보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혁신의 장이다.
2021~2022년 잇달아 CES를 찾은 메리 배라 GM 회장은 전기차로의 대전환을 천명하며 자율주행용 센서와 배터리, 차량 네트워크와 클라우드 관제 시스템 기술 등을 선보였다. 올해 행사 기조연설자로 나선 올리버 집세 BMW그룹 회장은 현실과 가상을 융합한 디지털 혁신 기술을 자동차에 적용해 차량-운전자 간 상호작용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BMW는 이번 행사에서 차량 전면창에 혼합현실(MR)을 적용해 운전 편리성을 높인 기술, 외관 색상을 운전자 취향과 날씨 등 주변 상황에 따라 32개로 바꿀 수 있는 E-ink 기술을 선보였다. 폭스바겐과 아우디는 각각 자율주행 기술 기반의 콘셉트카를 공개했다. 단순히 자율주행이라는 기술뿐 아니라, 이를 통해 운전자가 어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인포테인먼트 서비스를 중심으로 선보였다.
배터리 등 자동차 부품 업체가 CES에서 활약한 점도 눈에 띈다. 모빌리티 전장화(電裝化)에 따라 부품 업체도 미래 전기차용 인포테인먼트 서비스 기술을 선보였다. 가령 현대모비스는 미래 모빌리티가 저마다 용도에 따라 외관과 내장(內裝)이 바뀔 것이라는 전망을 반영해 ‘목적 기반(PBV)’ 차량 관련 솔루션을 내놨다. 자동차 부품 업체 콘티넨탈은 AI 자율주행 기술 향상을 위한 고성능 라이다(LiDAR: 레이저 화상 검출 및 거리 측정), 운전석에서 활용할 수 있는 1.2m 길이의 곡선형 울트라 와이드 디스플레이를 선보였다. SK온은 전기차용 초고속 충전 슈퍼 패스트 배터리와 차세대 소재로 개발한 NCM9 등 신제품 배터리를 소개했다.
모빌리티 결합 나선 빅테크
전통 자동차산업과 무관했던 빅테크나 전자제품 업체도 모빌리티 분야의 새 흐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구글은 이미 ‘안드로이드 오토’라는 스마트폰 서비스를 차량에 연결해 운전자가 새로운 인터넷 경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이번 CES에선 아예 자동차에 자사 스마트폰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탑재해 빅테크가 지향하는 미래 전기차 모형을 전시했다. MS는 자동차 제조 업체, 부품 업체가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를 개발하는 데 유용한 클라우드, AI, 빅데이터 기술은 물론, 차량 개발 효율화를 위한 소프트웨어와 새로운 메타버스 솔루션을 제공해 업계의 호응을 받았다. 일본 대표 IT 기업 소니와 완성차 브랜드 혼다가 합작한 소니-혼다모빌리티는 전기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올해 CES에선 프로토타입 콘셉트카 ‘아필라’를 선보였다. 소니-혼다 전기차는 흔히 ‘달리는 게임기’로 평가된다. 소니의 콘솔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의 최첨단 엔터테인먼트 기술이 모빌리티에도 적용됐기 때문이다. 차량 주행 중 마치 게임하는 것 같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소확행’ 기술 로봇 주목
CES에서 차세대 기기로 주목받는 또 다른 단골 제품이 바로 로봇이다. 2021~2022년 소개된 기술의 흐름을 보면 라스트마일(last mile: 상품이 소비자에게 배송되는 마지막 물류 단계), 음료 제조, 가정용 컨시어지, 소셜 로봇이 주류였다. 반면 올해 소개된 제품들은 특정 용도에 특화된, 당장 실현 가능한 ‘소확행’ 기술이 특징이다. 잔디, 꽃, 나무를 다듬는 가드닝 로봇이나 청소 로봇, 제설 로봇 등 특정 목적에 최적화된 모델이 주목받았다. 국내 기업 중에선 LG전자가 로봇을 소개하는 단독 부스를 꾸려 가정에서 사용 가능한 다양한 생활형 로봇을 선보였다. 삼성전자는 헬스케어 보조기구로 쓸 수 있는 로봇 사업에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가정은 물론, 사회간접자본 관리에 활용할 수 있는 신개념 로봇도 등장했다. 프랑스 스타트업 ACWA로보틱스는 뱀을 연상케 하는 모양의 로봇 ‘클린 워터 패스파인더’를 선보였다. 물 흐름을 막지 않으면서도 수도관 안을 돌아다니며 관 두께와 부식, 석회화 여부를 확인하는 로봇이다. 프랑스 파리에서만 누수로 매년 수자원의 20% 이상이 손실된다고 한다. 이 로봇이 본격 도입되면 수자원의 지속가능한 활용은 물론, 편리한 수도관 유지·보수까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수도관 관리용 로봇 뱀을 앞세운 ACWA로보틱스는 스마트시티, 지속가능성, 인간 안보 등 3개 부문에서 CES 혁신상을 수상했다.
VR·AR·MR 연계 메타버스 각광
메타버스는 최근 CES에서 단골처럼 주목받는 기술이다. 2016년부터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분야의 디바이스가 출품됐다. 그런데 이번 CES에선 단순한 디바이스 소개를 넘어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사용 가능한 솔루션이 대거 등장했다. 가령 국내 스타트업 메타뷰는 3차원(3D) 스캐너와 엑스레이, 음파탐지기로 지하 배관, 선로를 스캔하고 이를 가상공간에 그대로 재현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건물이나 땅속 모습을 마치 눈으로 보듯 재현해 토목·건설 분야에서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소니가 제시한 ‘볼륨메트릭 캡처’ 기술도 흥미롭다. 카메라 7대로 실제 사람을 촬영해 그 모습을 고스란히 가상현실의 3D 아바타로 옮겨놓는 것이다. 향후 홈쇼핑이나 미디어 분야에서 응용될 수 있는 기술이다.
코로나19 유행 3년 동안 비대면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메타버스는 다양한 기술적 요구에 직면했다. 단순히 미래 청사진이 아닌, 소비자가 몰입감·사실감을 느끼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업의 요구다. IT 첨단을 달리는 메타버스가 산업 현장에 이용되면서 최근 CES의 화두이기도 한 웹 3.0이나 블록체인,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 등 기술 트렌드도 덩달아 주목받았다.
그간 CES에 소개돼 언론의 주목을 받은 기술과 제품 중 상당수는 실용화되지 못하고 실험실에만 머물렀다. 이번에 등장한 신기술, 신제품도 대부분 비슷한 운명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뒤로하고 시장과 소비자의 요구를 충족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신기술 트렌드를 보여준 화려한 상품과 기업 중 어느 것이 진짜 ‘알곡’이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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