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1일 일본 해상자위대는 신형 호위함 1척을 진수했다. 새 호위함은 후쿠시마현과 니가타현을 따라 흐르는 강의 이름을 따 아가노(あがの)로 명명됐다. 아가노함이 진수되면서 일본은 2년여 만에 동형 호위함을 6척이나 보유하게 됐다. 혹자는 “한국도 지난 2년간 4척의 호위함을 진수했고, 그래 봤자 호위함인데 대단한 일인가”라고 평가 절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새로 선보인 호위함의 덩치와 성능을 찬찬히 살펴보고 그 속에 담긴 건함(建艦) 계획의 방향을 진단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3배 커진 日 신형 호위함 덩치
아가노함은 차세대 호위 구축함(DEX) 사업으로 탄생한 여섯 번째 모가미(もがみ)급 호위함이다. 해상자위대 2선급 함대인 지방대(地方隊)의 기존 주력 전투함 아사기리(あさぎり)급 호위함, 아부쿠마(あぶくま)급 호위함을 대체한다. 당초 해상자위대는 DEX 사업 목표가 ‘1800t급 소형 호위함 건조’라고 자국 의회에 보고했다. 2선급 보조함답게 대함 미사일, 중장거리 함대공 미사일 탑재는 고려되지 않았고, 자체 방공을 위한 단거리 함대공 미사일과 소구경 함포, 어뢰와 소나(sonar) 정도만 장착될 예정이었다. 작고 값싼 전투함을 만들어 저강도 분쟁에 대비하자는 미국 연안전투함(LCS) 개념의 영향을 받은 설계 사상이었다. 하지만 2015년 이후 중국이 대규모 건함 사업에 나서며 폭발적으로 해군력을 확장하자 2017년 일본 내각 회의에서 사업 계획이 완전히 변경됐다.
새로 나온 설계안은 초창기 DEX와 전혀 달라졌다. 새 설계도상 DEX는 길이 132.5m, 폭 16.3m, 만재배수량 5500t 이상 중형 호위함이다. 한국 해군 광개토대왕급 구축함(만재배수량 3900t)보다 큰 덩치다. 해상자위대 ‘2선급 전투함’이 한국 해군 해역함대 기함(旗艦)보다 크고 강력해진 것이다. 분명 모가미급은 2선급 전력으로 건조됐지만, 세부 성능을 살펴보면 주변국 어떤 전투함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강력한 1선급 성능을 갖췄다.
모가미급에는 일본이 자체 개발한 4면 고정형 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레이더(AESA) OPY-2가 장착됐다. 일본이 1990년대 중반부터 꾸준히 발전시킨 함정용 위상배열레이더의 최신 버전이다. 미국 이지스 레이더처럼 마스트 4개 면에 고정되는 형태다. 레이더 하나로 공중·해상 표적을 탐지해 추적할 수 있고 미사일 유도와 전자전까지 동시에 수행 가능한 고성능 다목적 레이더다. OPY-2의 구체적 성능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전 모델 FCS-3A 레이더는 300㎞급 탐지거리, 12개 표적과 동시 교전 능력을 보유했다고 알려졌다. “레이더 소자를 교체해 2배 이상 성능을 향상시켰다”는 일본 방위장비청의 발표를 감안하면 500~600㎞급 탐지거리, 약 20개 표적과 동시 교전 능력을 갖춘 사실상 이지스급 레이더로 판단된다.
함 내 공간 넓은 모가미급, 무장 능력 향상
현재 진수된 모가미급 호위함 6척에는 당초 계획된 무장(武裝)이 모두 탑재되지 않았다. 현재 모가미급 호위함은 근접 방어용 무기 시램(SeaRAM) 단거리 함대공 미사일 발사기, 17식(式) 중거리 함대함 미사일, 12식 단거리 경어뢰, Mk.45 5인치 함포를 장착했다. 신속한 건조와 향후 개조 일정 때문에 일부 무장 탑재를 연기한 것이다. 한국 해군의 주력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급도 처음엔 미국산 Mk.41 수직발사기만 일부 장착했다 개량 과정에서 한국형 수직발사기 KVLS를 달았다. 모가미급 역시 단계적 무장 강화 계획이 잡혀 있다. 5500t에 달하는 덩치에 걸맞게 함 내 여유 공간이 많은 점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우선 적어도 16셀(cell) Mk.41 수직발사관(VLS)을 장착할 예정이다. 향후 일본이 자체 개발한 장거리 함대공 미사일, 함대지 순항미사일용 수직발사기도 탑재될 계획이다. 무장이 완료되면 최소 48셀, 최대 64셀 규모 VLS가 탑재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모가미급 VLS에는 어떤 미사일이 장착될까. 우선 미국제 중거리 함대공 미사일 ESSM을 주력 방공무장으로 탑재할 예정이다. 개발 마무리 단계인 일본 03식 기반 장사정 함대공 미사일이 완성되면 이 미사일로 무장을 바꿀 것이다. 일본판 SM-6로 불리는 신형 미사일은 기존 03식 미사일(사거리 50㎞급)에 사거리 연장용 부스터를 달고 유도장치를 개량한 모델이다. 합동사격관제네트워크로 협동 교전도 가능한 고성능 미사일이다. 사거리는 100~300㎞에 달하며, 군함 자체 레이더를 사용하지 않고도 조기경보기나 전투기가 찍어준 표적을 공격할 수 있다. 추가 개량 모델부터는 극초음속 미사일,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도 부여될 예정이다. 2030년대 후반이 되면 일본 2선급 호위함도 미사일 방어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모가미급은 고성능 순항미사일도 장착할 예정이다. 모가미급이 탑재하는 17식 함대함 미사일은 초저공비행, 회피 기동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현재 그 후속 모델로 일본판 합동 공대지 장거리미사일(JASSM)로 불리는 스텔스 순항미사일이 개발되고 있다. 이 신형 미사일은 미국 JASSM처럼 스텔스 설계가 적용돼 적 방공망에 탐지되지 않고 사거리가 1000㎞에 달한다. 2023년 1분기에 먼저 나오는 지대함 버전의 실사격 평가를 거쳐 2030년대 중반 군함용 모델이 도입될 전망이다. 순차적 개량을 거치면 사거리는 1500㎞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다. 미래 모가미급은 강력한 일본판 JASSM도 탑재할 예정이다. 고성능 레이더와 미사일을 탑재한 모가미급은 한국 주력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급을 넘어선 공격력과 방어력을 갖추게 된다.
2025년 1선급 전투함 도입 본격화
일본은 2032년까지 이처럼 강력한 2선급 호위함 22척을 전력화할 계획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들 함정(艦艇)과 함께 쏟아져 나올 1선급 전투함이다. 해상자위대 수상전투함 전력은 기동함대인 4개의 호위대군(護衛隊群, 한국 기동전단)과 이를 보조하는 지방대로 나뉜다. 모가미급은 어디까지나 지방대 소속 전투함을 대체하는 전력이다. 현재 호위대군의 주력 전투함인 무라사메(むらさめ)급 9척과 다카나미(たかなみ)급 5척을 대체할 차세대 구축함 사업은 별도로 진행되고 있다. 일본 연호로 레이와(令和) 7년(2025)에 시작될 예정이라고 해서 07DD로 명명된 차세대 구축함 사업이다. 일본은 2025~2034년 최소 14척의 07DD를 전력화할 계획이다. 기존 이지스 구축함을 가볍게 뛰어넘는 대형·고성능 전투함이 될 것으로 보인다.
07DD는 사업 초기 배수량 5400t 수준의 덩치로 계획됐다. 이후 탄도미사일·극초음속미사일 방어 능력, 장거리 지상 타격 능력, 무인기 및 무인 수상·수중정 운용 능력 등이 추가되고 있다. 완성 단계에선 7000~8000t급이 넘는 덩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해상자위대의 주력 함대인 호위대군의 주력함인 만큼 VLS의 수는 모가미급보다 훨씬 많고 레이더와 센서 성능도 향상될 예정이다. 앞서 소개한 03식 기반 장사정 함대공 미사일 말고도 일본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불리는 N-SAM이 탑재돼 현용 이지스 구축함을 압도하는 통합공중미사일방어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미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대군 수상전투함 전력은 강력하다. 면면을 살펴보면 무라사메·다카나미급 14척, 7000t급 준(準)이지스 구축함인 아키즈키(あきづき)·아사히(あさひ)급 4척, 1만t급 이지스 구축함인 마야(まや)급과 아타고(あたご)급 각각 2척, 9500t급 이지스 구축함인 곤고우(こんごう)급 4척 등 30여 척이다. 1개 호위대군은 기함인 헬기 탑재 구축함 1척, 이지스 구축함 2척, 아키즈키 또는 아사히급 구축함 1척, 무라사메 또는 다카나미 3~4척으로 구성된다. 현재 전력만으로도 한국 해군 기동전대를 압도한다. 이런 상황에서 호위대군 최하급 전투함인 무라사메·다카나미급이 07DD 같은 대형·고성능 전투함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2030년대 중반 구형 곤고우급 이지스 구축함이 차세대 방공 구축함으로 대체되면 한국 해군 기동함대 전력을 모조리 투입해도 일본 해상자위대 1개 호위대군을 상대하지 못하게 된다.
‘뜨거운’ 동북아 바다
최근 일본은 국방예산을 폭발적으로 증액하고 있다. 군비 증강의 브레이크를 풀면서 대규모 해군력 확장에 나섰다.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예전과는 다른 수준으로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 하에 북한 미사일 위협은 날로 고도화되고 있다. 중국은 일본을 압도하는 규모로 해군력을 키우는 중이다. 인류 역사상 모든 군비경쟁이 그랬듯, 일본 해군력 팽창은 중국의 추가적인 해군력 증강을 불러올 것이다. 머잖아 동북아시아 바다는 세계에서 고성능 군함이 가장 밀집한 ‘뜨거운 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
주변국이 고성능 전투함을 대량으로 건조하는 지금, 한국은 드라마틱한 해군력 증강과 군사력 개혁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해군은 30년째 정원(定員)을 확대해달라고 읍소하고 있으나 정치권 누구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최근 안보 상황이 반영되지 않은 수십 년 전 건함 계획을 고칠 기색도 없다. 조선왕조는 국제 정세에 신경 쓰지 않고 군비 투자를 소홀히 하다 열강의 전쟁터가 됐고, 급기야 국권을 빼앗겼다. 지금 같은 혼란 시대에 역사가 되풀이되지 말란 법은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입으로만 떠들 게 아니라,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고 실천으로 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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