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부터 계속된 내전,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난립 등으로 고통받았던 시리아가 강진으로 더 큰 고통에 처했다. 8일 미국 뉴욕타임스(NYT), CNN 등은 내전을 피해 튀르키예로 건너간 시리아 난민이 지진으로 싸늘한 주검이 된 채 고향에 돌아왔다고 보도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고난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전 발발 후 시리아를 떠나 튀르키예로 향한 사람은 전 인구(2100만 명)의 19%인 400만 명이 넘는다. 이 와중에 6일 시리아 북부와 튀르키예에서 발발한 강진으로 9일(현지 시간) 기준 시리아에서만 3000명이 이상이 숨졌다. 내전 후 대부분의 인프라가 무너져 정확한 통계 작성이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 원조품 대신 시신 가방만 통과
CNN에 따르면 7, 8일 양일간 300구가 넘는 시신이 튀르키예에 인접한 국경통제소 ‘바브 알하와’를 지났다. 시신 가방에 담기지 못한 일부 시신은 푸른색 방수포나 담요 등을 두른 상태였다. 지진 발생 후 8일까지 사흘간 이 통제소에는 원조 물품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오직 시신 가방만 통과했다. 9일에야 음식 등을 실은 구조 트럭 6대가 들어온다고 CNN은 전했다.
오촌 조카인 13세 소녀 야라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왔다는 아흐마드 알유수프(37) 씨는 NYT에 “야라의 부모와 형제는 아직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있다”고 했다. 자신 또한 천막 생활을 하는 처지지만 수습을 도맡았다며 “모든 사망자가 가족 곁에 묻히기 바란다”고 했다. 야라의 가족 시신을 수습할 때까지 계속 이 곳에 오겠다는 뜻도 밝혔다.
통제소 주변은 시신을 확인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 남성은 “여자 형제의 시신을 확인하라”는 다른 남성의 말에 “못 한다”며 머뭇거렸다. 망자의 얼굴이 영원히 기억될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결국 다른 남성이 대신 신원을 확인했다.
● 내전-IS-강대국 이해관계로 고통 가중
다민족 다종교 다종파 국가인 시리아의 고질적인 내부 갈등 또한 주민 고통을 키웠다. 2000년 집권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다. 그가 집권 후 반대파를 잔혹하게 탄압하자 다수인 수니파의 불만이 누적됐고 내전이 발발했다.
아사드 정권이 반군에 화학무기까지 사용하는 와중에 일부 수니파 극단세력이 IS에 가담했다. 소수민족 쿠르드족도 분리 독립을 주창했다. 수니파, 쿠르드족, IS는 ‘반(反)아사드’ 전선에 있다. 그러나 수니파와 쿠르드족은 IS의 폭거를 용납할 수 없어 거리를 뒀다.
강대국의 이해관계도 복잡하다. 미국 등 서방은 ‘IS 격퇴-반아사드’를 이유로 반군을 지원했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의 후원자다. 서방의 지원으로 IS는 사라졌지만 남은 세력 간 입장 차이가 첨예해 내전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아사드 정권이 통치하는 시리아에 대대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튀르키예와 달리 시리아는 각국 원조를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바삼 삽바그 주유엔 시리아대사는 CNN에 “제재 때문에 많은 비행기와 화물 수송기가 시리아 공항에 착륙하기를 거부한다”고 했다. 이에 아사드 정권은 결국 8일 EU에 직접적인 도움을 요청했고, EU도 “회원국에 의약품과 식량 지원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엘 벤람리 시리아주재 유엔 인도주의 조정관은 “내전으로 인프라가 마비된 유령 도시가 많다”며 지진까지 겹쳐 시리아가 ‘위기 속 위기’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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