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 시간) 오전 튀르키예 남동부 도시 디야르바크르의 길가에서 주민 엥긴 이을마스 씨(37)는 한때 집이라고 불렸던 거대한 콘크리트 잔해 더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회색의 시멘트 파편과 구부러진 철골 사이로 뜯긴 꽃무늬 이불, 솜뭉치, 분홍색 베개가 삐져 나와 있었다.
이을마스 씨는 현장에서 만난 동아일보 기자에게 “저 안의 가족들이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죽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지진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는 그의 어머니와 남동생 2명, 여동생 2명이 갇혀 있다. 결혼 후 인근에서 독립해 살던 그는 6일 새벽 지진이 나자마자 본가인 이곳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가족들에겐 영하의 추위 속에 나흘째 구조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규모 7.8의 대지진이 발생한 진원지에서 270km 떨어진 디야르바크르에서는 8일까지 건물 20여 채가 무너져 139명이 사망했다. 특히 대형 주상복합 쇼핑몰이 붕괴되면서 이곳에서 사망자가 많이 나왔다. 지진이 할퀴고 간 이 건물은 생크림 케이크 단면을 숟가락으로 긁어낸 듯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밖에서도 층층이 들여다보이는 집 내부에는 침대와 식탁 등 각종 살림살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구조 작업은 이날 오전 1시가 넘어서도 조명을 밝힌 채 밤새 이어졌다. 구조요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30분마다 휘파람 소리와 함께 “쉿” “쉿” 하며 모두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러면 곳곳에서 울리던 굴착기 등 중장비 기계음이 잦아들었고, 삽이나 전기톱을 든 작업자들은 인기척이 들려오길 바라며 콘크리트 더미로 귀를 기울였다. 근처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현장을 지키던 실종자 가족들도 이때는 모두 다가와 숨을 죽였다. 하지만 사람 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고 작업은 곧 다시 시작됐다.
수도 앙카라에서 온 하즈 살르시 씨(75)는 기자에게 여동생 얘기를 하며 울먹였다. 원래 앙카라에 사는 여동생 세이란 오즈칸 씨(55)는 지난주 딸(37)과 함께 이 주상복합 건물에 사는 아들(29) 부부를 방문했다가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져 일가족 4명이 모두 매몰됐다. 모처럼 가진 가족 모임이 한순간에 비극이 된 것이다. 살르시 씨는 “기다리는 매 순간 가슴이 타들어 간다. 생존자 구조 소식이 들려오면 잠시 희망이 살아났다가도 또다시 괴롭다. 알라는 재앙도 내리지만 기적도 내리기 때문에 가족들을 끝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6일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으로 9일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만7513명에 이른다.
“1시간전에도 시신 실려나와” 가족 8명 실종에 눈물만
튀르키예 지진 르포
“언니네 가족 2명 죽고 3명 실종 모두가 소중한 사람 잃어” 눈시울 생존자 발견되면 “천천히, 천천히”
“잠자고 있는데 갑자기 집이 요동쳤어요. 아이들과 가족들을 깨워서 뛰쳐나왔죠. 내려오는 내내 3분 정도 건물이 흔들렸는데 그 떨림이 영원히 안 멈출 것 같았어요.”
지진 피해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는 디야르바크르의 이슬람교 예배당에서 만난 이맘 요마스 씨(60)는 “집은 무서워서 못 가고 예배당에 머무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예배당에는 1000여 명이 대피해 있다. 이들은 담요나 옷가지를 뒤집어쓰고 추위와 싸우고 있었다. 식량과 생수가 부족해 힘없이 벽에 기댄 사람이 많았다. 갓난아기를 안은 한 여성은 “급히 대피하느라 아기 옷과 기저귀를 못 가져왔다”고 했다.
11세 소년인 타하는 “바닥이 너무 흔들려서 죽을 만큼 무서웠어요. 집으로 절대 안 돌아갈 거예요. 저는 여기가 좋아요”라고 말했다.
●영원히 안 멎을 듯했던 3분의 흔들림
튀르키예 디야르바크르는 로마와 비잔틴, 이슬람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다. 역사적인 요새와 정원이 많아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6일 새벽 지진으로 도시 곳곳은 폐허가 됐고, 집을 잃은 이재민들이 가족의 생환을 기다리고 있다.
아딜 보즈쿠르 씨(53)는 여동생과 여동생의 가족 8명이 실종 상태다. 8세 조카도 함께 실종됐다. 사흘째 무너진 건물 더미 앞을 지켜온 그는 “1시간 전에도 여기서 시신이 실려 나왔다”며 기자에게 눈물을 보였다.
다행히 붕괴를 피한 옆 건물에 사는 여성은 “새벽에 갑자기 요동과 함께 ‘쿠궁’ 하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나와 보니 32가구가 사는 건물 한 동이 통째로 무너져 있었다. 온 주민이 거리로 뛰쳐나와 아비규환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50대 여성은 “언니네 일가족 5명이 이 건물에 살고 있었는데 2명은 숨진 채 실려 나왔고 3명은 아직 실종 상태”라며 “살아 나오길 기도하는데 날씨도 너무 춥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주상복합 쇼핑몰 구조 현장에서 만난 경찰관 오르한 아칸 씨는 “학창 시절 유도 코치가 이번 지진으로 매몰돼 사망했다. 여기 살아남은 사람들 모두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다”며 “사흘째 못 쉬고 작업을 하고 있지만 밑에 깔려 있을 사람들 생각에 피곤하지 않다”고 했다.
구조 현장에서 간혹 생존자가 발견될 땐 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나오며 “천천히, 천천히”라고 외쳤다. 한 소년은 속옷 차림으로 이틀 넘게 갇혀 있다가 구조되기도 했다.
●여진 공포에 텅텅 빈 유령도시로
디야르바크르는 사람을 보기 힘든 ‘유령 도시’로 변해 가고 있다. 계속되는 여진에 아파트 거주자들은 대부분 집을 나와 대피소로 피난을 가거나 아예 다른 도시로 빠져나갔다. 10대 아들과 단둘이 살았던 40대 여성은 기자에게 “지진이 언제 또 닥칠지 몰라 아들을 동쪽 도시에 있는 친척집에 보내고 혼자 일하며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인근 지역들에서 호텔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어 거기로 많이 갔다”고 전했다. 튀르키예 정부의 비상사태 선포로 상가 역시 거의 문을 닫았다. 구조 현장 근처에만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추위를 견디려고 땔감을 태우느라 주변에 연기가 자욱했다.
도심 곳곳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경찰관들은 검문을 위해 오가는 차량들을 멈춰 세웠다. 길목 곳곳은 중무장한 병력과 특수 차량으로 막혀 있었다. 며칠 전 지진을 틈타 도심에 있는 교도소에서 소요사태가 벌어져 경비가 더욱 삼엄해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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