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연초부터 충격적인 내용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해당 보고서엔 중국의 침공으로 벌어질 대만 방어전 시나리오가 실렸다. 대만을 공격한 중국과 미국·일본 연합군의 군사적 충돌이 어떻게 전개될지 시뮬레이션해본 결과다. CSIS가 수행한 워게임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쟁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든 중국은 패배하지만, 미국과 일본도 엄청난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워게임 결과에 세계 군사 전문가 충격
워게임 결과로 나온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다. 중국과 미·일 연합군 사이에 벌어질 가장 가능성이 큰 공방전 양상은 1번 시나리오. 해당 워게임 결과 중국이 전투기 155대와 전투함 138척을 상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히 큰 규모의 손실이지만 중국 해공군의 규모와 현재 진행되는 전력 확충 사업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내할 만한 수준이다. 한편 미국과 일본은 전투기 449대, 전투함 43척을 잃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도·태평양에 전개된 미군 전력과 일본 항공자위대 규모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궤멸적 피해다. 중국에 다소 유리한 2번 시나리오에서 미·일 양국은 전투기 646대와 전투함 28척을 잃는다는 결과가 나왔다. 미국과 일본에 다소 유리한 3번 시나리오 결과에서도 미·일 양국이 290대의 전투기와 24척의 전투함을 상실한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어느 시나리오로 대만 공방전이 벌어지든 미국과 일본 양측은 엄청난 손실을 입는다는 것이다. 특히 세 갈래 워게임 결과 모두 “미 항공모함 2척이 격침된다”는 시나리오가 나왔다. 미군 수뇌부는 물론, 세계 군사 전문가들은 상당한 충격에 빠졌다.
이번 워게임 결과가 공개되자 미국 조야에선 조 바이든 행정부를 향한 비판이 쇄도했다. 당초 대만은 중국 침공에 대비해 군사력 증강 계획을 수립했다. 장거리 타격용 미사일, 방공 미사일과 이를 운용할 지상·해상 플랫폼 확충이 뼈대다. 바이든 행정부는 대만의 이 같은 군사력 건설 방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러시아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전훈을 참고해 중대형 전투함, 장거리미사일 대신 보병 휴대용 대전차 무기와 단거리지대공미사일을 대량으로 확보하라는 훈수였다. 러시아 병력을 국토 깊숙이 유인한 우크라이나처럼 유사시 대만도 중국에 유격전, 소모전을 감행하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CSIS는 “우크라이나 모델은 대만에 적용될 수 없다”며 바이든 행정부의 대만 방위 구상을 비판했다. 실제로 이번 워게임에선 중국군이 대만 내륙 깊숙이 진공해 난전(亂戰)을 겪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시뮬레이션 결과이긴 하나, 바이든 행정부의 방침과 달리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전혀 다른 전장임이 드러난 것이다.
여전히 미국은 하드웨어·소프트웨어 모든 면에서 중국을 압도하는 군사력을 지녔다. 적절한 예산과 정책만 뒷받침된다면 중국과 전력 격차를 수십 년 이상으로 확대할 잠재력이 있다. 중국이 최근 10~20년 동안 군비 확장에 엄청나게 투자했으나, 군사력은 단순히 군함 몇 척, 전투기 몇 대 만든다고 강화되는 게 아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국가 지도부가 자국과 적국 전력에 대한 지피지기(知彼知己)에 통달해 완벽한 전략을 갖춰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무기를 획득하고, 기존 전력과 어떤 식으로 융합할지에 대해서도 높은 통찰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군사력의 손과 발이라 할 일선 부대가 지휘부의 의도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군사력 건설엔 실전 경험과 수십 년에 걸친 훈련 및 연구가 필요하다. 미국은 이런 배경을 모두 갖춘 나라다. 미국이 조금만 더 공세적으로 군사력 건설에 나선다면 중국은 감히 대항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을 따라잡으려고 과도한 군비 경쟁을 시도하다 스스로 무너질 수도 있다.
미국·서유럽의 오락가락 안보 정책
변수는 최근 미국과 서유럽 국가의 오락가락하는 안보 정책이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의 지적처럼 최근 유럽연합(EU)과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 한국산 무기를 찾기 시작한 것은 독일, 프랑스 등 전통 군사 강국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른바 ‘메르코지’(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을 함께 일컫는 말) 집권기부터 친러시아 행보를 이어갔다. 그사이 두 나라의 군사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한때 세계적 위상을 자랑하던 양국의 군사력과 군수산업 수준은 나락으로 추락했다.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행정부 이후 군사 대비 태세가 크게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른바 ‘시퀘스터’(sequester: 연방정부 예산 자동 삭감 조치) 존치로 지출을 크게 줄였다. 2013~2021 회계연도 기간에만 1조2000억 달러(약 1506조 원) 규모의 예산이 삭감됐는데 그중 41%가 국방예산이었다. 이로 인해 미군의 주요 항공모함, 잠수함의 정기 창정비가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미사일 및 탄약 구매 예산도 대부분 삭감됐다. 미군 군사력이 급격히 약화된 이 시기 중국은 폭발적으로 군사력을 증강했다. 국방예산에 대대적으로 삭감의 칼을 댄 것은 바이든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현재 미군은 중국의 태평양 진출과 대만 침공을 막고자 중국에 맞서는 군사력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대부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했을 때 수립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사시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에서 막대한 전투기·군함 피해를 막고자 이지스 탄도미사일방어(BMD)체제를 강화했다. 이에 따라 동북아시아 전역에 광역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때 미군은 중국 군함을 원거리 타격해 대만 해협·동중국해 일대에서 움직일 수 없도록 하는 ‘반(反)접근/지역 거부(Anti-Access·Area Denial)’ 전략도 구상했다. 미국의 대중 전력 향상은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차세대 구축함 DDG(X) 프로그램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의 극초음속 미사일 대응 능력 향상 △해군·해병대 원정 선박 차단 체계(NMESIS·네메시스) 구축 △공군 ‘래피드 드래건’(Rapid Dragon: 공군 수송기에 스텔스 공대지·공대함미사일 투발 능력 부여)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한 중국 군사력 견제의 핵심은 미사일 전력 강화다. 당시 미군이 구상한 중국과의 전면전 대비책은 이렇다. 우선 개전 초 대만~일본 오키나와~일본 규슈를 잇는 방어선을 구축해 중국의 탄도미사일 집중 공세를 이지스 BMD체제 및 지상 기반의 MD 시스템으로 막는다. 방어선에 대거 배치된 군함과 지상 발사 플랫폼에서 장거리 스텔스 대함미사일을 발사해 500~900㎞ 거리 중국 군함을 모조리 수장시키겠다는 것이다. 일견 간단한 전술이지만 당시 중국으로선 여기에 대응할 마땅한 방안이 없었다. 이에 따라 미군은 중국의 탄도미사일과 극초음속 무기를 막고자 SM-3, SM-6 같은 요격 미사일을 대량으로 도입할 계획이었다. 중국 군함을 먼 거리에서 요격하기 위한 스텔스 대함미사일, 노르웨이 스텔스 대함미사일(NSM)/ 합동타격미사일(JSM), 장거리대함미사일(LRASM) 대량 조달도 추진됐다. 중국이 발만 동동 구르던 와중에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됐다. 미국은 대통령이 바뀌자 미군 전비 태세의 방향도 크게 바뀌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대중(對中) 방어선을 구축할 플랫폼은 확보되고 있지만, 정작 해당 플랫폼에서 운용할 미사일이 턱없이 부족해진 것이다.
“장거리대함미사일 400발, 일주일 미만 분량”
미 공군이 2019년 발표한 합동장거리공대지미사일(JASSM) 계열 미사일과 LRASM 양산 목표 물량은 각각 1만 발, 410발이었다. 이듬해 미 공군이 수송기를 미사일 발사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래피드 드래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JASSM, LRASM 조달 물량은 더 늘어날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된 후 대형 미사일 조달 계획이 전면 재조정됐다. 추가 조달 계획이 사실상 무산된 것이다. 미국은 2025년까지 총 19개 차수(LOT·생산단위) 계약으로 400발의 LRASM만 조달하고 미사일 도입을 일단락할 계획이다. 미군이 도입할 LRASM 400발에 대해 CSIS는 이번 보고서에서 “단 일주일치 물량”이라고 평가했다. 워게임보다 빠르게 상황이 급변하는 실전에선 화력 소모가 훨씬 늘어나기 마련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실제 전면전이 벌어지면 LRASM 400발은 사나흘 정도면 소모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네메시스, 래피드 드래건 등 대량의 미사일을 쏟아붓는 플랫폼을 개발해 배치하고 있다. 네메시스는 소형 전술 차량을 기반으로 대함미사일 2~4발을 발사하는 플랫폼이다. 수백 대 규모의 조달이 예정돼 있다. 래피드 드래건도 C-17 수송기 기준 45발, C-130 수송기 기준 12발의 미사일을 투발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플랫폼 몇 대만 투입되면 미사일 수백 발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들 플랫폼이 제아무리 스텔스 미사일을 발사한다 해도 중국의 다단계 밀집 방공망을 돌파해 모두 명중할 순 없다. 중국은 ‘중국판 이지스’ 시스템을 장착한 대형 방공 구축함을 40척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이지스함에 버금가는 방공 시스템을 갖춘 4000t급 이상 전투함은 50척이 넘는다. 중국의 신식 초계함·미사일 고속정 전력까지 감안하면 미국이 가진 모든 대함미사일을 쏟아부어도 100% 격침할 수 없다. 이런 점을 감안해 CSIS는 미국군에 중국 군함을 장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대량 조달하라고 권고했다.
美 방산 생산성 정상화해야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드러난 미국 방위산업의 생산성 문제다. 유럽처럼 미국도 냉전체제 종식 후 지속적으로 군비 지출을 줄였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땐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미사일·탄약 개발 및 생산 예산이 크게 감축됐다.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 등 미국의 주요 미사일 생산업체의 설비도 상당히 줄어든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미국 방산업계가 생산 라인 증설에 나서고는 있지만, 대개 재블린·스팅어 같은 보병용 미사일에 집중돼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LRASM, NSM 등 대함미사일 생산 능력은 연간 각각 100발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일본이 “향후 장사정 미사일 1000여 발을 갖추겠다”며 양산을 선언한 것도 미국의 미사일 재고 부족 및 생산력 악화를 감안한 행보다.
최근 중국은 그야말로 폭발적 속도로 해공군력을 증강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과 우방국에서 제기되는 군비 증강, 미사일 전력 확충 요구에 화답해야 한다. 미국의 미사일 전력 약화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에 큰 재앙을 몰고 올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중국이 미국 미사일 전력을 얕보고 대만을 침공한다면 미·일 연합군과 대만군의 피해는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일본이 미사일 대량 조달 계획을 발표하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지금, 한미일 공조 강화를 선언한 한국도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한국군도 대량의 미사일 전력 확보와 해공군력 재정비에 나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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