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구호텐트 받은 사람은 그나마 다행… 텐트 없는 사람은 차에서 먹고 자
곳곳 몸싸움속 생존자 구조 환호 “충격 딛고 조금씩 유대-질서 생겨”
“개만도 못한 처지예요.”
지진 발생 6일째인 12일(현지 시간) 오후 튀르키예(터키) 동남부 아디야만의 한 주유소 앞에서 만난 카디르 마샤란 씨(20)는 “오전 6시부터 7시간째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한참 멀었다”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집에서 대피해 6일째 가족들과 차 안에서 지내고 있는 그는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어머니를 따뜻한 곳에서 잠시나마 쉬게 해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오늘도 기름을 넣지 못하면 영하의 날씨 속에 떨면서 자야 한다.
마샤란 씨 뒤로는 주유를 기다리는 차량 행렬이 1km 넘게 이어져 있었다. 인구가 20만 명인 아디야만에서 기름을 넣을 수 있는 주유소는 이곳 하나뿐이다. 마샤란 씨 앞에서 순서를 기다리던 두 청년은 서로 “내가 먼저”라며 주먹다짐을 하다 군인에게 제지당한 뒤 아예 줄 밖으로 밀려났다. 마샤란 씨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절망스럽다”고 했다.
●“자식들 깔려 있어 아무리 힘들어도 못 떠나”
강진이 할퀴고 간 아디야만에서는 실종자 구조 작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살아남은 이들의 고군분투가 펼쳐지고 있다. 이재민들은 혹한의 날씨에 화장실 하나 없는 텐트촌에서 잠을 청했고, 구호텐트마저 구하지 못한 이들은 차에 기름을 채우기 위해 매일 치열한 생존을 벌이고 있었다.
800명의 이재민이 지내고 있다는 한 텐트촌에서는 33㎡(약 10평)도 채 되지 않는 텐트에서 10명씩 지냈다. 두 살 난 아이를 키우는 한 일가족과 같은 텐트에서 지내는 하칸 투르굿 씨(30)는 “지진에서 살아남은 데다 텐트까지 얻었다”며 “다른 도시로 탈출하기에는 연고도, 돈도 없었는데 정말 운이 좋았다”고 했다. 아이순 알타이 씨(22)는 “화장실이 없어 사람들이 15분 거리의 주유소 화장실을 쓰고 있다”고 했다.
이날 아디야만 초입에는 튀르키예 재난관리청(AFAD)으로부터 텐트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차량 행렬이 2km 넘게 늘어서 있었다. 행렬 맨 앞에서 만난 이스마엘 씨(63)는 사흘째 기다리던 중이었다. 기자가 그와 인터뷰를 하자 AFAD 관계자가 갑자기 다가와 제지했다. 이스마엘 씨는 “(AFAD 측에서) 아직까지 언제 텐트를 주겠다는 말도 없었다. 외국인이 오니까 그제서야 사람이 나왔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준중형 승용차에서 가족 5명과 지내온 파트마 씨(50)는 “자식 2명이 아직 잔해 밑에 남아 있다. 아무리 춥고 힘들어도 차에서 지내야 한다. 도시를 떠날 수 없다”며 울었다. 담요와 나뭇가지 따위로 가족들이 머물 텐트를 만든 아뎀 차크마크 씨(43)는 “세 살 난 딸이 지진 트라우마에 밤이면 잠을 설친다. 안락한 거처를 구해야 안정을 찾을 것 같다”고 했다.
●몸싸움 와중에 부부 구조되자 ‘환호’
지진 충격과 부실한 정부 대응에 지친 사람들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11일 한 구조 현장에서는 생존자 발견 소식을 듣고 몰려온 한 가족이 접근을 막는 군인들에게 달려들었다. 이 실종자 가족은 군인들에게 머리를 가격당해 피를 흘리면서도 군인의 멱살을 놓지 않았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군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고 이에 추가 병력이 투입되며 긴장이 고조됐다.
몇 시간 뒤 이 현장에서는 지진 발생 128시간 만에 중년 부부가 구조됐다. 함께 발견된 3명의 자녀는 시신으로 수습됐다. 시신이 실려 나올 때마다 혀를 차던 시민들은 마지막으로 나온 아버지가 손을 흔들어 보이자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파키스탄과 베트남에서 온 구조대가 138시간 만에 17세 청소년을 구조하기도 했다.
구조 현장에서 만난 비정부기구(NGO) ‘사마르칸트’ 자원봉사자 파티 유란 씨(32)는 “첫 이틀간은 도로로 쏟아져나온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며 아무도 믿지 못하는 ‘카오스’ 상태였지만 지금은 조금씩 유대와 질서가 생기고 있다”고 했다. 대학생 자원봉사자인 페르디 굴러 씨(25)는 “이번 지진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기겠지만 튀르키예는 충분히 이겨내리라 믿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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