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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ks, as we all apparently agree. Social Security is off the books. We got unanimity!”
(여러분들, 우리 모두 동의했으니 사회보장 문제는 해결된 거네. 만장일치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신년 국정연설에서 이렇게 말하자 백악관 참모들은 무릎을 탁 쳤습니다. ‘winning moment’(승리의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큰 박수가 터졌습니다. CNN이 “the most eye-catching moment”(가장 눈길을 잡는 순간)이라고 평가한 이 발언은 놀랍게도 국정연설 원고에 없습니다. 73분간 진행된 연설 원고 어디를 뒤져봐도 이런 구절은 없습니다. 사회보장 예산을 둘러쌓고 바이든 대통령이 공화당 의원들과 설전을 벌이다가 즉석에서 나온 발언입니다.
공화당은 사회보장 예산 축소를 요구하면서도 이에 대해 쉬쉬합니다. 복지 축소를 반길 국민은 없기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에서 공화당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반발을 유도한 것입니다. 정곡을 찔린 의원들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야유가 쏟아졌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야유에 발끈하지 않고 오히려 “folks”(친구들)라고 부르며 야당과의 즉석 합의를 끌어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협치에 능한 노련한 정치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명장면이었습니다. ‘off the books’는 원래 세금 용어로 ‘장부에서 빼다’라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빼놔도 되는 이슈,’ 즉 ‘해결된 이슈’라는 뜻입니다.
이번 국정연설을 보면 바이든 대통령은 더는 “나이 많은 대통령” “말실수 기계”라는 오명을 달고 살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활력 넘치고 소통할 줄 아는 모습이었습니다. 미국 역사에 길이 남는 국정연설 명장면을 알아봤습니다.
“The State of the Union is not good.” (국가의 상태는 좋지 않다)
상원과 하원 의원들이 모인 합동회의에서 국정 상황에 대해 알리는 것은 미국 헌법 2조 3항에 나온 대통령의 의무입니다. 국정연설이 ‘the State of the Union’(연합의 상태)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건국 초기 대통령들이 연설의 대부분을 연방 결속 문제에 할애했기 때문입니다.
역대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보면 “the State of the Union is good”(국가의 상태는 좋다)이라는 구절이 꼭 등장합니다. “good” 대신에 “strong” “stronger than ever”을 넣기도 합니다. 국정연설이 연초에 열리기 때문에 향후 계획을 밝히는 자리 같지만 실은 과거 성과를 평가하는 연설입니다. “good” “strong” 등의 단어를 쓰는 것은 “지난 한 해 동안 국가를 잘 운영했다”라고 자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good’의 전통을 깬 대통령이 있습니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입니다. 그는 1975년 국정연설을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I‘ve got bad news. the State of the Union is not good”(나쁜 소식이 있다. 국가의 상태는 좋지 않다). 그만큼 국가 상황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난 바로 이듬해였습니다. 국가적 위신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인플레이션, 실업률 급증으로 경제도 위기였습니다. 포드 대통령은 위기를 타개할 방안도 내놓았지만 국민의 뇌리에 남는 것은 “not good”이라는 두 단어였습니다.
비관적인 내용으로 연설을 시작하는 전략을 ’bad news first’(나쁜 뉴스 먼저) 모델이라고 합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전임 포드 대통령의 전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1979년 국정연설에서 국가의 상태를 “crisis of confidence”(신뢰의 위기)라고 규정했습니다. 이 연설은 얼마나 분위기가 암울한지 ‘malaise speech’(불안감 조성 연설)라고 불립니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Let’s Make America Great Again’(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공약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1970년대 후반 포드와 카터 대통령이 조성해놓은 비관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입니다.
“Talk about a suck up!” (누가 아첨꾼인지 얘기해볼까!)
2014년 국정연설에서 화제의 주인공은 바이든 대통령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연설자가 아니었습니다. 부통령 자격으로 대통령 뒤쪽에 앉아있었습니다. 그가 주목받은 이유는 ‘핑거건 사건’ 때문입니다. 상대를 가리킬 때 둘째 손가락을 들어 올려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것을 ‘finger gun’(손가락 총)이라고 합니다. 바이든 부통령은 한창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설할 때 청중석을 향해 핑거건을 쏘기에 바빴습니다. ‘딴짓’ 하는 부통령을 비꼬는 인터넷 패러디가 쏟아졌습니다.
나중에 토크쇼에 출연한 바이든 부통령은 핑거건을 쏜 이유를 “기립박수 때문이었다”라고 밝혔습니다. 국정연설에서 대통령이 강조하는 부분에서 참석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냅니다. 바이든 부통령은 연설 전에 동료 의원으로부터 “아첨꾼 같아 보이니까 너무 자주 일어나서 박수를 치지 말라”는 농담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농담을 건넨 의원이 정작 더 자주 일어나서 17차례나 박수를 보내자 그를 향해 핑거건을 쐈다는 것입니다. “Talk about a suck up!”(당신이야말로 아첨꾼이잖아!)
‘suck’은 ‘빨아들이다’ ‘실망하다’ 등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릴 때 “life sucks”라고 합니다. 사람을 가리켜 “suck up”이라고 하면 ‘들러붙는 사람,’ 즉 ‘아첨꾼’을 말합니다. 바이든 부통령의 재치 있는 답변은 핑거건 포즈만큼이나 화제가 됐습니다. 기립박수가 수시로 터질 만큼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연설이 좋았다는 칭찬이기 때문입니다.
“The British government has learned that Saddam Hussein recently sought significant quantities of uranium from Africa.” (영국 정부는 사담 후세인이 최근 아프리카에서 상당량의 우라늄 구입을 시도한 정황을 확보했다)
‘쇼킹한 국정연설’ 하면 조지 W 부시 대통령입니다. 2002년 국정연설에서 “axis of evil”(악의 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하더니 이듬해 국정연설에서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한국에게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2002년 연설이 유명하지만 9·11테러 후 대테러 전쟁으로 정신이 없던 미국에게는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폭로한 2003년 연설이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이 발언의 글자 수를 따서 ‘Bush’s 16 words’(부시의 16개의 단어)라고 하면 2003년 국정연설을 의미합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 2개월 후 이라크 전쟁을 개시했습니다. 하지만 연설 내용이 거짓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정체불명의 소문을 ‘팩트’로 둔갑시키기 위해 중앙정보국(CIA)이 불법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조지 테닛 CIA 국장은 나중에 이렇게 반성했습니다. “These 16 words should never have been included in the text written for the president.”(이 16개의 단어는 대통령 연설 원고에 절대 들어가서는 안 되었다)
명언의 품격
제5대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1823년 국정연설에서 밝힌 외교방침을 ‘먼로 독트린’이라고 합니다. 미국이 대외적으로 천명한 최초의 외교원칙입니다. 당시 국정연설은 의원들 앞에서 구두로 밝히는 것이 아니라 서류로 만들어 의회에 전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먼로 독트린은 먼로 대통령이 의회에 보낸 국정연설 서류 더미 속에 한 장짜리 종이로 끼어있었습니다. 미국 최초의 외교원칙이 자칫 빛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습니다. 의원들이 찾아서 읽어보니 의외로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핵심 구절입니다.
“The American continents, by the free and independent condition which they have assumed and maintain, are henceforth not to be considered as subjects for colonization by any European powers.” (미주대륙들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상황을 유지해왔기 때문에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을 것이다)
먼로 독트린은 미국은 물론 남미를 포함한 미주대륙 전체, 즉 ‘Western Hemisphere’(서반구)에 대한 유럽의 불간섭 원칙을 밝히고 있습니다. 먼로 대통령은 스페인 견제를 위해 영국과 힘을 합쳐 불간섭 원칙을 만들려고 하다가 존 퀸시 애덤스 국무장관이 “영국도 식민지의 야심이 큰 나라이니 빼야 한다”라고 해서 단독으로 만들었습니다.
처음 공개됐을 때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듣보잡’ 외교원칙에 코웃음을 쳤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국의 군사력은 보잘것없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미국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먼로 독트린도 힘을 얻었습니다.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소련에 물러날 것을 경고했을 때도 먼로 독트린을 내세웠습니다.
실전 보케 360
실생활에서 쓰는 쉬운 단어로 영어를 익히는 코너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연설 때 ‘the lady in a white coat’(흰색 코트의 여인)이 화제였습니다. 마조리 테일러 그린 공화당 하원의원을 말합니다. 검은색 옷을 입은 다른 의원들 사이에서 나홀로 흰색 코트를 입었으니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린 의원의 흰색 코트에는 ‘깊은 뜻’이 있다고 합니다. 보좌관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정찰 풍선에 늑장 대응한 것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풍선이 흰색이라 옷도 흰색으로 맞춰 입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그냥 튀는 것을 좋아하는 그린 의원의 성격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합니다.
그린 의원의 흰색 코트보다 더 주목을 받은 것은 행동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연설할 때 큰 목소리로 “liar”(거짓말쟁이)라는 야유를 보내며 손으로 ‘thumbs down’ 표시를 했습니다. 엄지를 아래로 향하게 하는 ‘thumbs down’은 불만의 뜻입니다. 무례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그린 의원은 2021년부터 의정 생활을 시작한 초선급 의원이지만 화제성에서는 고참급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각종 돌출 행동으로 언론에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습니다. 언론은 그녀 이름 약자를 따서 ‘MTG’라고 부릅니다.
그린 의원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야유 사건을 벌인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밝혔습니다.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과 친분을 은근히 과시하며 “제재를 받을 걱정도 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If the American people had been on that House floor listening to that speech, it would have been a lot worse names than I called him.” (만약 국민들이 연설장에 있었다면 나보다 더 심한 욕을 했을 것이다)
‘call’은 ‘부르다’라는 뜻이고, ‘name’은 ‘이름’을 말합니다. 이 둘이 합쳐지면 ‘욕하다’ ‘조롱하다’라는 뜻입니다 ‘name’은 원래 ‘reputation’(평판)을 의미합니다. ‘이름을 부르다’라는 것은 ‘평판을 소환하다, 문제 삼다’라는 의미입니다. 평판은 다양하므로 ‘욕하다’라는 의미일 때는 복수형 ‘names’를 써야 합니다. “나한테 욕하지 마”는 “don’t call me names”라고 합니다. 명사형은 ‘name-calling’(욕하기)이 됩니다.
이런 저런 리와인드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장기 연재된 ‘정미경 기자의 이런 영어 저런 미국 칼럼’ 중에서 핵심 아이템을 선정해 그 내용 그대로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오늘은 2022년 3월 7일 소개된 국정연설 손님에 관한 내용입니다. 국정연설에는 손님들이 초대됩니다. 레이건 대통령 때 시작된 전통입니다. 올해는 환경운동가 겸 가수 보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타이어 니콜스의 부모 등이 초청됐습니다.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국정연설을 했습니다. 대통령은 국정연설에 맞춰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상징하는 인물 11명을 초대했습니다. 이들은 퍼스트레이디 옆쪽 게스트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Please rise if you are able and show that, ‘yes, we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with the Ukrainian people’.” (모두 일어나서 ‘미국은 우크라이나인들과 함께한다’라는 지지를 표해 달라)
연설 중에 대통령이 손님들을 소개하면 박수가 터집니다. 이렇게 소개하는 것을 ‘acknowledge’(알린다)라고 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가장 먼저 ‘알린’ 초대객은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녀를 소개하며 의원들에게 모두 일어나 경의를 표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일어서다’에는 ‘stand up’을 많이 쓰지만 국정연설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rise’가 더 적절합니다.
“In recognition of all you have done for our nation.” (국가를 위한 당신의 공로를 인정해서)
TV 리얼리티쇼를 진행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연설도 쇼처럼 진행했습니다. 2020년 국정연설 때 손님으로 초대한 극우 성향 언론인 러시 림보를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깜짝 행사로 자유의 메달 수여식을 열었습니다. 상장이나 훈장을 수여하면서 ‘공로를 인정한다’라고 할 때 ‘in recognition of’라고 합니다.
“We can restore an economy where everyone gets a fair shot, everyone does their fair share.” (누구나 공평한 기회를 얻고 공평하게 분담하는 경제를 재건해야 한다)
2012년 국정연설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억만장자 투자가 워런 버핏의 여비서를 초대했습니다. ‘부자 증세’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버핏과 여비서에게 부과되는 세율의 불합리성을 비교하자 카메라가 여비서를 비췄습니다. ‘fair’는 ‘공정한’ ‘전시회’ ‘베이지색’ 등 다양한 뜻이 있습니다. ‘공정’을 의미할 때는 ‘shot’(기회), ‘share’(책임)이라는 단어가 따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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