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터키) 남부와 시리아 북부를 덮친 강진으로 공식적으로 집계된 사망자수가 4만3000명을 넘어섰다.
매몰 261시간 만에 구조되는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오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뜸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또다시 강력한 여진이 발생해 시민들이 공포에 떠는가 하면 정부의 늑장·부실 대응에 대중이 분노하고 반(反)난민 정서까지 확산하는 모양새다.
◇사망자 4만3000명 돌파…규모 5.2 강력 여진 ‘공포’
17일(현지시간)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튀르키예 국가재난위기관리청은(AFAD)은 지진으로 튀르키예에서 3만8044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으며 시리아 정부와 유엔은 시리아에서 최소 5800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날까지 집계된 양국 지진 사망자 수는 4만3844명이다. 하지만 내전 중인 시리아에서 정확한 수치가 파악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많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유엔은 성명을 통해 “향후 3개월 동안 가장 시급한 인도주의적 필요에 대응하기 위해 3억9760만 달러(약 5050억원)가 필요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시리아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했다. 또 튀르키예 구호 활동을 위해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기금 모금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런 상황 속에서 튀르키예에서는 이날 오후 또다시 규모 5.2의 강력한 여진이 발생해 주민들이 공포에 떨었다.
◇골든타임 한참 지난 261시간 만에 기적 생환
이런 가운데 골든타임을 한참 넘긴 구조 소식도 이어졌다.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심각한 곳으로 꼽히는 튀르키예 하타이주의 한 병원 잔해 속에서 남성 2명이 지진 261시간 만에 구조됐다. 이들은 즉시 인근 야전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받고 있다.
이날 지진 발생 260시간 만에 10대 소년 오스만도 하타이에서 극적 구조됐다. 파레틴 코카 튀르키예 보건부 장관은 트위터에 “모두의 치열한 노력의 결과로 현재 병원에서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카흐라만마라슈에서도 258시간 만에 29세 여성이 건물 잔해 속에서 구조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구조작업에 참여했던 아드난 에스는 “침대가 보여서 당겼더니 누군가 손을 들어 올렸다”며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고 구조 당시의 감격을 현지 언론 사바에 전했다.
전날에도 카흐라만마라슈에서 알리나 울메즈(17)가 아파트 잔해 더미 속에서 극적 구조됐다.
◇구조작업 마무리 수순…생존자·이재민 구호 집중
이처럼 기적 같은 생환 소식이 이어졌지만 인명 구조작업이 건물 철거 및 복구 작업으로 전환되기 시작하면서 생존자가 추가로 발견될 가능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담당 사무차장은 지난 13일 시리아 알레포를 방문하며 “지진에 대한 구조 단계가 끝나고 있다”고 말하며 앞으로는 생존자들을 위한 식량과 주거 문제 등에 집중할 단계라고 설명했다.
튀르키예 당국은 일부 지역에서 구조 활동을 중단했으며, 시리아 정부 통제지역에도 이런 조처가 내려졌다.
의료 현장에서도 추가 생존자 발견 가능성은 작다고 보고 있다. 안타키아의 한 야전 병원 의사 일마즈 아이딘은 “잔해 속에서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찾는 것은 기적이다”며 “앞으로 생존자들은 더 위독한 상태에 빠질 것이고 많은 이들이 집중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시리아 정부가 튀르키예와 맞닿은 국경 두 곳을 개방하며 ‘구호 사각지대’였던 시리아 반군 장악 지역에도 구호 물품이 도착해 본격적인 구호 활동이 시작됐다.
이처럼 본격적인 구호 작업이 지진 발생 9일만에 시작되면서 현장에서는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빗발치기도 했다. 아프린 지역 보건국장인 아흐메드 하지 하산은 “시체 주머니가 줄줄이 오기 전에 먼저 지원받았다면 더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부 늑장·부실 대응에 분노…反난민 정서도
한편 지진 피해 복구가 늦어지면서 정부의 늑장·부실 대응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아디야만에 거주하는 하칸 탄리베르디는 정부의 부실·늑장 대응을 지적하면서 “지진으로 죽지 않은 사람들은 추위 속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부 대응이 기대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며 처음으로 잘못을 인정했다.
이번 지진 피해를 키운 부실 건축 의혹에 정부가 손을 놓고 있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앞서 지난 10일 튀르키예 변호사협회는 건설업자, 감리인 및 공무원들에 대해 이번 지진으로 인해 수천 채 이상의 건물이 붕괴한 데 책임을 져야 한다며 고발장을 냈다.
튀르키예 남부 안타키아의 고급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던 세빌 카라브둘로울루는 “아이들 2명 모두 건물 잔해 속에 깔렸다”며 “다들 이곳이 안전하다고 했지만 시공사가 이런 식으로 날림 공사를 한 것을 어떻게 알았겠냐”며 관련자 엄벌을 촉구했다.
불똥은 내전을 피해온 시리아 난민들에게도 튀고 말았다. AFP와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지진 피해 지역에서는 기승을 부리는 약탈 행위의 주범으로 시리아 난민이 지목되는 모습이 여럿 목격되고 있다.
극우 정치 세력도 반시리아 정서에 불을 붙였다. 민족주의 성향 튀르키예 승리당 대표 위미트 외즈다으는 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하면서 “지진이 발생한 순간부터 난민들이 도시를 약탈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튀르키예 싱크탱그 테파브의 오마르 카드코이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정치인들이 “대중의 분노를 시리아로 돌려 튀르키예와 시리아 사이의 연약한 결속을 더 약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