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핵군축조약 참여 중단” 바이든 “민주주의 파괴자와 결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1일 23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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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 1년을 사흘 앞둔 21일(현지 시간) 수도 모스크바에서 국정 연설을 갖고 전쟁 개전 및 확전의 책임이 모두 서방에 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외무부 또한 린 트레이시 러시아주재 미국 대사를 초치해 “서방 병력과 장비를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푸틴 대통령은 미국과 맺은 핵무기 통제조약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하며 “미국이 핵실험을 하면 똑같이 할 것”이라고 했다. 올봄 대공세를 앞두고 전쟁 장기화에 지친 자국 여론을 무마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 또한 압박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같은 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최전방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의 ‘맞불 연설’을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침략자들과의 물러설 수 없는 결전”을 강조했다. 신(新)냉전의 양축인 두 정상이 약 1000km 떨어진 유럽 도시에서 서로를 향해 날 선 발언을 쏟아낸 것은 자유민주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의 대립에서 자신들의 승리를 굳히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 푸틴, 탈냉전 상징 ‘뉴스타트’ 파기


푸틴 대통령은 이날 약 2시간의 연설에서 “러시아를 전장에서 패배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전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아 “푸틴의 정복 전쟁은 실패했다”고 일침을 날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맞대응으로 해석된다. 그는 매년 초 국정연설을 통해 정국 운영 방침을 밝혔지만 지난해에는 우크라이나 침공 등을 이유로 연설을 하지 않았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한다면 그것을 멀리 밀어낼 것”이라며 거듭 핵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미국 프랑스 영국의 핵무기가 모두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다”고 불만을 표했다.

2011년 발효된 뉴스타트에 대한 참여 중단도 선언했다. 미국과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핵탄두 수를 각 1550기 이하로 줄이고 상호 핵시설을 사찰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러시아의 뉴스타트 거부로 탈(脫)냉전을 상징했던 양국의 핵 군축 합의가 모두 무효화됐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복귀를 원하면 프랑스와 영국의 핵무기고를 어떻게 할지부터 답하라고도 했다.

그는 이날 불리한 전세를 뒤집거나 전쟁 종료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진 못했다. 서방 제재에도 경제가 잘 버티고 있다며 “돈의 흐름이 마르지 않았다”고도 했다. 외부보다 국내 여론을 신경 썼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러시아 외무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트레이시 대사를 초치했다고 밝혔다. 또 트레이시 대사에게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 미국 시민을 포함한 인력까지 모두 러시아 공격의 합법적 목표물”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9월 발트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폭발 사건에 대한 공정한 조사도 주문했다. 최근 미 탐사보도 전문기자 세이무어 허쉬는 미국이 러시아를 방해하기 위해 노르트스트림에 고의적으로 폭발물을 설치했고 노르웨이와 함께 터트렸다고 주장했다.

20일 키이우를 깜짝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그가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을 포함해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합병 후 결성된 ‘부쿠레슈티 나인’ 지도자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9개국은 옛 소련의 압제에 시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각각 1942년생과 1952년생인 바이든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사실상 직접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계속 부딪혀 온 냉혈 70대 지도자(푸틴 대통령)와 막 80이 넘은 지도자(바이든 대통령)가 직접 전쟁을 벌이기 직전까지 이르렀다”고 해석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1일 러시아가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선언한 것을 두고 “매우 유감스럽고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 美, 바이든 키이우 방문 전 러에 통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일 독일 유력 일간지 ‘디벨트’ 인터뷰에서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 무기를 지원한다면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의 추가 지원을 압박했다. 중국의 러시아 지원 가능성을 감안할 때 미국이 반드시 우크라이나에 전투기를 지원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의 키이우 방문이 남긴 각종 후일담도 화제다. 미 언론은 현직 대통령이 미군이나 동맹국 군대가 상황을 통제하지 않는 ‘전쟁 지역(War Zone)’을 방문하는 점은 지극히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17일 직접 우크라이나행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보안을 우려해 그가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 대신 국내 이동에 사용하는 ‘에어포스 투’를 탔다고도 했다. 백악관이 대통령과 동행한 취재기자 2명에게 보낸 일정 안내 이메일의 제목 또한 ‘골프 대회 지침’이었다.

백악관은 러시아와의 충돌을 우려해 대통령의 출발 몇 시간 전 러시아 측에 이를 사전 공지했다고 밝혔다. 다만 “러시아의 반응은 공개하지 않겠다”고 언급해 격한 반발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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