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월드’는 세계 각국에서 세상을 이롭게 이끄는 혁신적인 기업과 새로운 정보기술(IT) 소식들을 소개합니다. ‘파괴적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부터 글로벌 주요 기업까지, 빠르게 변해가는 ‘신(新) 글로벌 비즈니스’를 알차게 전달하겠습니다.
● 역사적인 해에 대규모 감원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콘텐츠 제국’ 미 월트디즈니가 호실적에도 구조조정과 비용 절감을 발표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다.
디즈니는 8일(현지 시간) 시장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실적을 공개했다. 디즈니의 지난해 10∼12월(자체 회계연도 1분기) 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8% 늘어난 235억1200만 달러(약 30조4700억 원)로 애널리스트 전망치(233억7000만 달러)를 뛰어넘었다. 같은 기간 순익도 11억 달러(약 1조4300억 원)에서 12억8000만 달러(1조6600억 원)로 늘어났다. 주당 순익(EPS)은 1.06달러에서 0.99달러로 줄었지만, 시장 예상치(0.78달러)보다는 높았다.
테마파크 ‘디즈니랜드’가 팬데믹(대유행) 이후 활기를 보이면서 디즈니 실적을 끌어올렸다. 디즈니 전체 매출의 44%를 차지하는 놀이공원 관련 영업이익이 25%나 뛰었다.
그런데, 로버트 앨런 아이거(애칭 ‘밥 아이거’) 디즈니 최고경영자(CEO)는 이러한 실적에도 사업 재편 및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전체 사업을 엔터테인먼트(영화·텔레비전·스트리밍)와 ESPN(스포츠), 테마파크(디즈니랜드, 크루즈) 등 3개로 재편하고, 전 직원(22만여 명)의 3%가량인 7000명을 내보내겠다고 밝혔다. 인건비에 비(非) 스포츠 콘텐츠 투자를 줄여 총 55억 달러(약 7조1200억 원)를 절감하겠다고 했다. 디즈니플러스(디즈니+)의 ‘카지노’ 같은 드라마를 덜 만들겠다는 것이다.
디즈니플러스, 훌루(Hulu), ESPN+ 등 디즈니의 스트리밍(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때문이다. 이번 분기에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만 10억5000만 달러(약 1조3600억 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그나마 직전 분기보다는 나았다. 이전 분기에서는 스트리밍 사업에서 14억7000만 달러(약 1조9100억 원)의 손실을 냈다. 당시 충격에 빠진 디즈니는 밥 체이펙 CEO를 쫓아내고, 2005년부터 15년간 회사를 이끌었던 아이거를 다시 모셔 왔다.
아이거 역시 당장에 뾰족한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번 분기에 스트리밍 사업에서 손실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전임 CEO가 디즈니플러스의 구독료를 월 7.99달러에서 10.99달러로 올리고 직원들에게 비용을 줄이라고 압박한 영향이다.
디즈니가 2019년 11월 디즈니플러스 출시 이후 스트리밍에서 입은 손실만 80억 달러(약 10조3600억 원)에 달한다. 그야말로 디즈니플러스가 영화 어벤져스의 빌런 ‘타노스’처럼 디즈니의 돈을 소멸시키고 있다.
아이거는 2016년 디즈니가 스트리밍 회사에 영화 등 콘텐츠를 많이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당시 최고책임자였던 케빈 마이어에게 “넷플릭스, 아마존 같은 큰 곳과 독점 거래를 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콘텐츠마다 개별적으로 판매하는 것이 괜찮은지 알아보라”라고 지시했다. 마이어는 “아마존과 글로벌 계약을 체결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지만, 스트리밍 사업이 빠르게 커지는 만큼 디즈니가 자체 서비스를 만드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밖의 조언을 내놓았다.
아이거는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허락했다. 넷플릭스·아마존·애플 같은 돈 많은 기술 회사와의 ‘값비싼 전투’는 생각보다 우연히 시작됐다.
어찌 됐든 3년이 지나고 우디와 엘사, 다스베이더, 아이언맨 등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디즈니플러스가 나왔다. 아이거는 “디즈니플러스로 몇 년간 돈을 잃을 수 있지만, 수십 년 먹거리를 마련했다”는 자평을 남기고 2020년 초 은퇴했다. 디즈니플러스를 준비했던 마이어 역시 소셜미디어 회사 ‘틱톡’으로 자리를 옮겼다.
디즈니플러스는 서비스 초기에 토이 스토리·스타워즈·어벤져스 시리즈뿐만 아니라 만달로리안(스타워즈), 완다비전(어벤져스) 같은 유명 작품의 스핀오프(외전)를 선보이며 관심을 모았다. 넷플릭스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월 6달러의 구독료도 눈길을 끌었다.
2021년 3월 가입자 1억 명을 돌파한 디즈니플러스. 넷플릭스가 10년 이상 걸린 일을 1년 반 만에 달성했다. 디즈니 주가는 신고가(203달러)를 기록했고,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주식시장에서 제너럴모터스(GM)나 포드의 회사 시가총액보다 많은 가치를 디즈니플러스가 창출했다”고 높게 평가했다.
디즈니는 2021년 7월 어벤져스 스핀오프 영화인 ‘블랙 위도우’를 영화관과 디즈니플러스에서 동시에 공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2억 달러(약 2600억 원)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를 집에서 곧바로 볼 수 있게 만든 것. 디즈니플러스 고객몰이에는 성공했지만, 영화 주연이었던 스칼렛 요한슨과 법정 다툼까지 벌이는 등 할리우드에서 잡음을 일으켰다.
● 디즈니는 왜 스트리밍(OTT)으로 돈을 못 벌까
현재 디즈니플러스의 유료 가입자 수는 1억6180만 명에 달한다. 직전 분기보다는 240만 명 줄었지만, 훌루, ESPN 등 디즈니의 다른 스트리밍 가입자를 합치면 2억3570만 명으로 넷플릭스(지난해 말 기준 2억3000만 명)보다도 많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손실이 클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번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써서 그렇다. 디즈니는 지난해 콘텐츠 제작에 300억 달러(약 38조8600억 원)나 썼다. 넷플릭스(약 22조800억 원)나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WBD)의 HBO맥스(약 23조3800억 원)와도 차이를 보였다.
넷플릭스, 아마존프라임(아마존)부터 애플TV+(애플), HBO맥스, 패러마운트플러스(패러마운트), 피콕(컴캐스트)까지 다수의 경쟁자가 ‘조 단위’를 투입하며 점유율 싸움을 하는 상황에서 후발주자인 디즈니가 돈을 더 쏟아부을 수밖에 없었다. 체이펙 당시 CEO도 코로나19 확산으로 놀이공원과 영화 사업이 멈춰서면서 스트리밍 사업에 더 집중했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누가 더 쓰나 경쟁하는 분위기였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8월 ‘왕좌의 게임 vs. 반지의 제왕: 오래된 할리우드와 새로운 할리우드 이야기’라는 글에서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사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와 아마존의 제작비 경쟁을 다뤘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는 전 세계인이 열광했던 미드 ‘왕좌의 게임’의 스핀오프 드라마인 ‘하우스 오브 드래곤’을 지난해 8월 선보였는데, 이 드라마를 만드는 데 1억5000만 달러(약 1950억 원)가 투입됐다. 그러자 한 달 뒤, 아마존이 책 ‘반지의 제왕’을 기반으로 만든 TV 시리즈 ‘반지의 제왕: 링즈 오브 파워’를 내놓았다. 아마존은 링즈 오브 파워에 4억6500만 달러(약 6030억 원)나 쏟아 부었다. 드라마 한 편에… 정말 피 흘리는 전투다.
이코노미스트는 “10억 달러 상당의 검술과 마법이 여러분 근처의 작은 화면(TV나 모바일)으로 향하고 있다. 100년 된 회사와 부업(스트리밍)을 5년 전 시작한 전자상거래 업체의 대결”이라고 소개했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는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가 지난해 4월 합병하며 설립됐다. 워너미디어의 유명 영화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 픽처스 역시 디즈니처럼 1923년 설립돼 올해 100년을 맞았다.
● ‘더 글로리’ 다 봤으니 끊고 ‘카지노’ 봐야지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입되면 그 자체로 홍보 효과가 있다. 아마존프라임에서 전 세계에 방영된 링즈 오브 파워는 방영 첫날에만 2500만 명을 끌어모았다. 하우스 오브 드래곤 역시 공개된 첫날 미국에서만 시청자 1000만 명을 넘겼다.
이 같은 작품들은 신규 가입자 확보에 도움이 된다. 미디어 분석 업체 안테나에 따르면 2020년 7월 2일 디즈니플러스의 일일 가입자 수는 13만6000명이었는데, 뮤지컬 ‘해밀턴’을 선보이자 다음날 41만3000명으로 치솟았다. 같은 해, HBO맥스에서 ‘원더우먼 1984’를, 애플TV+가 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그레이하운드’를 내놓았을 때도 비슷했다.
문제는 비싸게 데려온 고객들이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고, 해지하고, 간다.
미국 샌디에이고에 사는 케이트 비겔과 그의 남편은 돈을 절약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바꿔가며 이용한다. 넷플릭스에서 TV 시리즈 ‘더 글로리’를 보고 구독을 취소한 뒤, 디즈니플러스에 돈을 내고 ‘카지노’를 보는 식이다.
비겔의 가족은 이 같은 방법으로 지난해 3~4개 서비스를 해지했다. 마지막으로 본 것은 디즈니의 ‘캡틴 아메리카’였다. 물론, 보고 난 뒤 디즈니플러스 구독도 취소했다. 비겔은 “어떻게 가입하고 취소할지 1년의 시행착오를 거쳤다”고 했다.
비겔만이 아니다. 켄터키주 루이빌에 사는 브라이언 대니얼 가족도 지난해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아마존프라임, 애플TV+ 등을 한 번씩 거치고 또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를 찾고 있다. 대니얼은 “쇼가 중요하지, 회사는 중요치 않다. 우리는 쇼를 따른다”고 했다.
스트리밍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이 업체, 저 업체에서 좋은 작품을 내놓을수록) 이러한 추세는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안테나에 따르면 최근 2년(2020년 6월~2022년 6월) 동안 스트리밍 가입자 중 19%가 3개 이상의 서비스 구독을 취소했다. 이전 조사(2018년 6월~2020년 6월) 때는 6%였다.
미국 시장분석 기업 모페센이던슨의 미디어 분석가 마이클 네이던슨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내놓으며 방대한 라이브러리를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분기마다 크고 멋진 영화 몇 편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고객들을 잡아두려면 훌륭한(돈이 많이 들어간) 작품들을 끊임없이 내놓아야 한다는 분석이다.
● 예전 같지 않은 OTT 시장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해 보였던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이 벌써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에서는 20, 30대 젊은 층을 시작으로 중장년층까지 케이블 TV에서 스트리밍 서비스로 갈아타는 분위기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닐슨에 따르면 스트리밍 서비스 시청 시간 중 50세 이상의 중장년층이 차지하는 비중이 39%(지난해 5월 기준)로 전년(35%)보다 증가했다. 닐슨은 미 스트리밍 시장에서 50~64세 시청자들이 처음으로 35~49세보다 더 큰 시청 점유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정보기술(IT)에서 후발주자인 중장년층의 이용이 늘었다는 점에서 스트리밍 시장이 가파른 성장 사이클을 지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WSJ은 “주요 시청자 나이만큼 스트리밍 사업이 성숙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볼 만한 사람은 대부분 어딘가에 가입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이제는 뺏어 오거나, 지키거나 둘 중 하나다.
기업들이 처음부터 시장 크기를 잘못 계산했다는 주장도 있다. 넷플릭스는 글로벌 시장에서 스트리밍 서비스에 비용을 지급할 의사가 있는 대상을 최대 10억 가구로 봤다. 하지만, 모페센이던슨은 스마트TV의 확산세가 빠르지 않고, 데이터 요금이 비싸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스트리밍 시장 규모를 4억 가구 정도로 보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2억 명이 넘는 가입자에 숨은 고객(비밀번호를 공유하는) 1억 명을 합치면 넷플릭스는 이미 전체 시장의 80%를 달성한 것”이라고 전했다.
기업들은 신규 고객을 찾는 것은 어려워졌지만, 기존 고객들의 소비량(시청 시간)이 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닐슨에 따르면 미국인들은 지난해 5월, 스트리밍 콘텐츠를 보는데 하루 4억 시간 이상(245억 분)을 썼다. 1년 전보다 21% 늘어난 수치다. 무엇보다 TV 시청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중장년층이 가세하기 시작했다.
스트리밍 서비스 분석 회사인 콘비바의 CEO인 키이스 주브체비치는 “전통적인 TV 시청자가 더 넘어올 것”이라며 “무엇보다 이들은 소비량이 많다. (콘텐츠 시청을) 먹는 것으로 치면 우리 엄마는 자주 폭식을 한다”라고 전했다.
● 중장년 카우치 포테이토(couch potato)를 잡아라
스트리밍 업체들은 새로운 고객을 찾기보다 기존 고객을 지키면서 수익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전략을 짜고 있다. 기업들은 드라마 한 시즌을 통째로 보여주던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반으로 쪼개거나 매주 한 편씩 보여주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는 추세다. 콘텐츠 공급의 시차를 두면서 고객을 더 잡아두려는 것이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처럼 스트리밍 서비스들을 합친 곳도 있다. 자사 스트리밍 서비스인 HBO맥스(가입자 7400만 명)와 디스커버리플러스(2000만 명)를 합쳐 통합 OTT ‘맥스’를 선보인다. HBO 콘텐츠와 워너브러더스의 영화, 드라마, 디스커버리의 다큐멘터리를 한 곳에서 볼 수 있게 했다.
넷플릭스는 비밀번호를 몰래 공유하는 고객을 단속하기 시작했고, 광고를 보면 비용을 저렴하게 받는 구독 모델도 선보였다. WSJ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10년 전, 광고 수익 모델을 검토하는 프로젝트를 내부에서 진행했는데, 경영진이 구글, 페이스북과 광고 경쟁을 벌이고 싶지 않아 이를 포기했었다. 이후 넷플릭스는 광고가 없다는 점을 플랫폼의 강점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수익성 압박에 결국 광고 요금제를 꺼내 들었다.
디즈니플러스도 지난해 12월 북미에서 광고 요금제를 시작했다. 여기에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상품을 살 수 있는 ‘쇼핑’ 서비스까지 준비 중이다. 스타워즈나 겨울왕국을 보는 시청자에게 ‘광선검’이나 ‘엘사 드레스’를 추천하려는 것이다.
디즈니는 이번 실적 발표에서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경쟁자들에게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까지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아이거를 비롯해 경영진이 제3자에게 더 많은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을 논의했다”고 3일 전했다.
아이거는 지난해 1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어느 날 잠에서 깨 생각해보니 우리가 제3세계 국가(넷플릭스 등)에 핵무기 기술을 판매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은 그 기술을 우리에게 불리하게 사용하고 있었다”면서 스트리밍 서비스를 직접 시작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콘텐츠’를 ‘핵무기 기술’ 전수에 빗댄 것. 다시 CEO 자리에 오른 아이거는 투자자들의 성화에 못 이긴 것인지 핵무기 기술을 다시 팔기로 했다.
● 케이블TV가 벼랑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디즈니의 속내는 다른 스트리밍 업체보다 더 복잡하다. 디즈니플러스 가입은 환영할 일이지만, 이들이 집에 있는 케이블TV 선을 끊고 온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케이블TV 사업은 디즈니의 ‘캐시카우’다. 2012년 디즈니의 케이블TV 방송 수익은 194억 달러(25조3000억 원)였다. 지난해에는 283억 달러(약 36조9000억 원)를 벌었다. 연평균 3.8%씩, 미국의 경제성장률보다 높게 커왔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5년 동안 미국 케이블TV 가입자 수가 연간 4.6%씩 감소했다. 디즈니가 소유한 ABC방송의 황금 시간대 시청자는 최근 4년 동안 거의 3분의 1토막이 났다. ‘디즈니플러스’ 같은 스트리밍 때문이다.
지난해 7월 미국에서 역사적인 기록이 나왔다. 미국인들이 케이블TV보다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 시장조사기업 이마케터는 내년부터 미국 가정의 일부만이 케이블TV를 구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디즈니에서 일종의 ‘카니발리제이션(신제품이 주력 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ABC방송 대신 디즈니플러스를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아니다. 수익성에서 차이가 크다. 디즈니는 지난해 케이블TV의 영업이익률이 30%라고 밝혔다. 미국의 케이블TV 요금은 월 100달러(약 13만 원)에 달하고, 시청자들은 광고까지 봐준다. 디즈니플러스의 월 구독료는 몇 차례 올려서 10.99달러(1만4300원)다.
디즈니는 어떻게 하면 스트리밍에서 최대한 빠르게 이익을 낼 지, 전통적인 TV 사업의 쇠퇴는 어떻게 하면 늦출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수십 년간 수익성이 좋았던 극장 관련 사업도 걱정이다. 팬데믹이 지나갔지만, 사람들은 ‘탑건: 매버릭’이나 ‘아바타2’ 같은 대작이 나올 때만 영화관을 찾고 있다. 스트리밍에 볼 콘텐츠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특정 장르를 보기 위해 극장에 가는 습관이 사라지고 있다. 처음에는 드라마, 그다음은 코미디였다. 최근에는 애니메이션이 우려스럽다”고 지난해 12월 전했다. 이러다 액션 영화 나올 때만 영화관에 갈 것 같다.
● 디즈니가 디즈니플러스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디즈니는 ‘마이너스’인 스트리밍 사업을 꼭 해야 할까. 과거처럼 대작으로 극장을 점령하고, 마블의 영웅들을 비싼 값에 파는 방법(라이선스 판매)이 낫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디즈니는 매우 친숙하지만, 디즈니는 우리가 ‘아이언맨’을 좋아하는지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지 알지 못한다. 개별 고객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서다. 보통 기업은 고객 수요를 기반으로 콘텐츠와 상품을 생산하고, 마케팅 효과를 높인다. 고객의 개별적인 취향을 알게 되면 더 많은 제품과 경험을 판매할 수 있다.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유통 플랫폼은 제작사에 제한된 데이터만 공유한다. 개별 고객 정보는 공유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라이선스 판매만으로는 디즈니 팬들의 속내를 알아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디즈니가 자체 서비스를 시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디즈니처럼 여러 사업을 보유한 회사에게 고객 정보는 굉장한 위력을 발휘한다. 디즈니는 디즈니플러스에서 고객에게 월 10.99달러만 받지만, 회사는 1000달러 이상의 크루즈 휴가나 연간 디즈니랜드 이용권 판매를 기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생일, 성별 같은 개인정보와 콘텐츠 시청 기록을 기반으로 틈날 때마다 상품을 추천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디즈니가 스트리밍을 시작할 당시 “디즈니플러스는 장기적 야망”이라면서 “저렴한 가격과 막대한 투자, 재무적 위험 이면에는 훨씬 더 큰 보상이 있다. 디즈니는 놀이공원, 리조트 등 각 사업부의 상호 연결(데이터 공유)과 교차 판매를 기대할 것”이라고 평했다. 디즈니에 중요한 것은 비디오가 아니라 전체 생태계라는 분석이다.
한편으로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넷플릭스보다 아마존이나 애플과 유사해 보인다. 아마존이나 애플은 수익보다는 고객을 자사 비즈니스에 잡아두기 위해 스트리밍 사업을 하고 있다. 애플의 여러 서비스에서 시간을 쓰게 만들고, 고객이 회사와 이별하는 것을 멈칫하게 만들려는 목적이다.
● 월트 디즈니의 66년 된 디즈니플러스 전략
사실, 이러한 계획은 100년 전 디즈니를 세운 ‘월트 디즈니’의 전략과 큰 틀에서 맞아떨어진다. 만화가이자 성우, 애니메이터, 스튜디오 대표, 테마파크 및 영화 제작자였던 월트 디즈니는 1957년 낙서처럼 그린 ‘시너지 맵’을 제시했다. (맵에는 실제로 ‘도널드 덕’과 ‘미키 마우스’ 캐릭터 그림도 들어있다)
그림에는 극장 영화를 정중앙에 두고 놀이공원과 상품, 음악, 출판, TV, 만화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뜯어보면 단순하다. 지식재산(IP)을 중심으로 비즈니스의 각 부분을 강화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 각각의 사업은 콘텐츠를 만드는 동시에, 다른 사업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판매·마케팅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로, 디즈니랜드는 음악 사업에 앨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연재만화 사업에서는 영화 사업의 홍보를 돕는다. 영화관 상영이 끝난 이후에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게 하기 위해 음악을 활용한다는 아이디어도 있다.
디즈니는 66년 전 그림에서 ‘극장 영화’ 자리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넣으려는 듯하다. 디즈니는 여러 사업이 지속해서 서로 시너지를 내려면, 온라인에서의 고객과의 접점은 꼭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고객 데이터가 사업에서 굉장히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아이거는 스트리밍 서비스를 두고 “시대를 정의하는 기회”라고 강조했다. 가야만 하는 길이라는 의미다.
최근 몇 년간 디즈니가 스트리밍 서비스로 피를 철철 흘리긴 했지만, 해외에서는 아이거가 지난해 11월 CEO로 복귀했다는 점에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는 15년간(2005~2020) ‘디즈니 왕국’을 건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임 동안 주가는 4배 넘게 뛰었고, 픽사와 마블, 루카스필름(스타워즈 시리즈) 등을 인수하면서 회사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 “모든 것이 쥐(미키 마우스)에서 시작됐다”
아이거는 지식재산(IP)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그는 2005년 CEO로 취임하고 홍콩 디즈니랜드에 직접 방문했는데, 중국 사람들이 월트 디즈니의 ‘미키 마우스’보다 픽사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음 해 아이거는 1년에 영화 한 편 정도를 제작했던 픽사 스튜디오를 무려 74억 달러(약 9조6500억 원)를 주고 인수해버렸다.
참고로, 당시 픽사의 최대 주주는 까다롭기로 유명한 애플의 ‘스티브 잡스’였다. 아이거는 잡스에게 “픽사의 창의성과 자유, 독립성을 지켜주겠다”고 했고, 끝내 거래를 성사했다. 이후 픽사는 디즈니 콘텐츠 제작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디즈니가 2009년 사들인 마블엔터테인먼트의 인수 금액은 40억 달러(약 5조2100억 원)였다. 비싸기도 했지만, 사는 것도 힘들었다. CEO였던 이삭 펄머터가 억만장자인데다가 은둔형 사업가였기 때문이다. 당시 펄머터를 설득한 사람이 잡스였다. 아이거는 억만장자인 팔머터와 회의를 잡는 데만 6개월이 걸렸다.
아이거는 ‘토이 스토리’부터 ‘어벤져스’, ‘스타워즈’까지, 수많은 지식재산을 확보하면서 10대와 부모 세대를 모두 기쁘게 하는 마법에 가까운 경영을 펼쳤다.
당시에는 (해당 기업들을) “너무 비싸게 주고 샀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거는 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거뒀다. 지식재산이 그를 ‘전설의 CEO’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역시 디즈니 창립자인 ‘월트 디즈니’의 생각과 일맥상통한다.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랜드 개장 직전에 이같이 말했다.
“저는 우리가 한 가지를 절대로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쥐(미키 마우스)’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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