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 내 자체 핵개발 요구 등에 대응하고 핵 확장억제 약속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아시아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기획그룹(NPG)’을 신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헤리티지재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등 주요 싱크탱크에서 속속 제기됐다. 4월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전략자산 전개 확대 등 확장억제 강화에 합의한다 해도 북한, 중국, 러시아의 핵 위협 고조로 미 핵우산에 대한 신뢰 하락이 예상되는 만큼 한국 일본 호주 등과 나토식 핵공유를 추진해야 한다는 취지다.
● “韓, 유럽과 핵공유 차별대우에 의문”
보수성향 싱크탱크 해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23일(현지 시간) ‘미국의 아시아 확장억제 강화 필요성’ 보고서에서 “한국에서 오랫동안 밀려나 있던 자체 핵개발 논의가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공개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악화되는 지역 안보 환경, 미 안보 공약에 대한 의구심 등 각종 우려가 ‘퍼펙트 스톰’처럼 닥쳤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한국 내 자체 핵무장론이 부상한 배경과 관련해 “한국에선 ‘왜 유럽의 미국 동맹국과 차별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왜 인도가 핵무기를 개발했음에도 (제재를) 받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고 했다. 그는 또 “한국의 전·현직 관료들은 2024년 미 대선 결과 군사동맹을 거래 관계로 여기고, 주한미군 철수나 감축을 다시 위협하는 행정부가 들어설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분담금 문제로 주한미군 감축 카드를 꺼내들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분석이다.
이에 따라 그는 “미국은 한국의 급진적인 정책(자체 핵개발)을 방지하기 위해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며 “한미는 핵 기획과 비상대책, 연합훈련,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 등을 조정할 수 있는 핵기획그룹을 창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공동위협 해결을 위해 일본과 호주도 참여시켜야 한다. 한국과 먼저 핵기획그룹을 만든 뒤 4개국 협력체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요격할 수 있는 차세대요격미사일(NGI) 배치 계획을 현재 20기에서 64기로 늘리고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해상발사핵순항미사일(SLCM-N) 또한 아시아에 배치해야 한다고 했다. 또 한국의 미사일방어체계(KAMD)와 미일 체계의 통합을 추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美서 확산되는 확장억제 대안 목소리
미 정계에서 아시아 내 나토형 핵그룹 창설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초당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역시 보수 싱크탱크로 꼽히는 CSIS 한반도위원회는 지난달 ‘북한 정책과 확장억제에 대한 권고’ 보고서에서 나토식 핵기획그룹 창설을 권고했다. 미국의 저(低)위력 핵무기 재배치 가능성에 대한 기초 작업 또한 준비하라고 강조했다. 친민주당 성향의 씽크탱크 우드로윌슨센터의 수미 테리 아시아국장도 “나토식 핵공유나 잠재적인 전술핵 재배치 등 모든 선택지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북핵 위협 고조, 러시아의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뉴스타트)’ 참여 중단, 중국의 군사대국화 등으로 전 세계의 핵 군비 경쟁이 가열되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확장억제 신뢰 약화를 방치하면 동맹 균열은 물론 아시아 각국의 핵보유 열망을 도미노처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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