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흘렀습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려 정부의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받아 닷새간 수도 키이우를 찾았습니다. 이곳에 발을 닿은 순간부터 떠날 때까지 매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그래야만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제 눈에 보이는 장면, 만나는 모든 사람이 큰 울림을 줬습니다. 키이우는 제게 이 모든 걸 꼭 널리 알려달라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채널A에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취재 후기로 소개합니다.
동아일보·채널A가 지난달 13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와 인터뷰를 할 때까지 대통령실 비서는 인터뷰 장소를 철저히 함구했다. 여사의 동선이 노출되면 언제든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인터뷰에 늦지 않으려면 이동 시간을 가늠해야 했다. ‘장소가 키이우 내부이긴 한가’라고 물었더니 ‘그렇다’란 답을 겨우 들었다. 이외에 기자가 아는 정보는 ‘오후 2시에 시작해 1시간 내에 끝내야 한다’는 것 뿐.
젤렌스카 여사와의 인터뷰는 준비부터 거의 007 작전이었다. 기자도 혹여나 동선을 외부에 노출해 전쟁 중인 국가 정상에 피해를 줄까 조심하고 긴장했다. 취재팀의 운전과 가이드를 맡아준 현지인들에게도 인터뷰 직전까지 “정부 고위 관료를 만난다”고만 말했다.
● 키이우에 진심이 닿다
러시아 침공 1년을 앞두고 키이우 방문을 검토하면서 기자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 젤렌스카 여사와의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치·외교적 의미가 있는 특종을 듣진 못해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일상을 전쟁처럼 사는 사람들도 힘든데, 실제 전쟁의 한 가운데에 있는 대통령 부부는 어떤 마음일까’란 생각이었다. 이런 개인적이고 소소한 이야기에서 깊은 공감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깊은 공감이 한국 독자와 시청자들에겐 머나먼 일처럼 느껴질 수 있는 전쟁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어찌 보면 전쟁의 무게에 비해 다소 가벼울 수 있는 질문까지 준비한 것도 그래서다. 물론 심각한 질문들도 덧붙였다.
e메일로 질의서를 보내자 대통령실 비서가 반갑게도 긍정적인 답변을 줬다. 질문의 내용에 어느 정도 공감한 듯했다. 대통령실 비서는 “인터뷰를 뻔하게 하지 말고 창의적으로 해보자”고 말했다. 인간적인 교감을 통해 전쟁과 평화에 대한 공감대를 키우고자 한 기자의 진심이 닿은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말 인터뷰가 성사될지는 직전까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비서진이 정확한 장소와 계획을 잘 알려주지 않아 더욱 그랬다. 전쟁 중인 국가의 대통령 부인이기에 언제든 일정이 뒤바뀌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 임시 대통령궁에 들어서다
인터뷰 당일, ‘시작 3시간 반 전에 지정한 장소로 와 달라’는 비서의 지침대로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다시 차량으로 10여 분을 이동해 ‘임시 대통령궁’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직접 머물며 전쟁을 지휘하는 곳이었다. 대통령궁 내부에 닿기까지 3단계 검문을 거쳤다. 자동소총을 들고 방탄조끼를 입은 군인들이 취재팀을 항상 감시했다.
궁 안으로 들어서니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당장 총격전이라도 일어날 법한 최전선에 세워진 건물에 온 듯했다. 정문으로 보이는 대문은 나무판과 모래주머니 등이 가로막았고 건물 한쪽 작은 문으로만 사람이 드나들었다. 궁 안 곳곳에도 무장 군인들이 배치돼 있었다. 창문은 모두 가려져 있었다. 참호처럼 쌓아 놓은 모래주머니가 여기저기 보였다.
외부인들이 쉽게 침투할 수 없도록 여러 보호막이 겹겹이 씌워진 듯했다. 대통령 집무실까지 동선은 미로 같았다. 통로는 조명이 꺼져 있어 알아보기가 힘들었고, 띄엄띄엄 설치된 바닥 조명이 양쪽 벽을 향해 희미한 빛을 쏴주는 정도였다. 이동할수록 내가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쯤 있는지 도무지 감 잡을 수가 없었다.
낡은 듯한 대통령궁 안팎과 달리 집무실 내부 인테리어는 현대적이었다. 중앙의 벽에 ‘대통령 사무실’이라고 쓰인 네온사인이 걸려 있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하는 넓은 테이블과 화상회의용인 듯한 대형 스크린이 인상적이었다. 집무실 내부엔 우크라이나 국기 색상인 푸른 조명이 들어오는 화장실, 탕비실 등이 갖춰져 있었다. 집무실 출입자들의 건물 내 동선을 최소화하려는 장치로 보였다.
비서와 취재팀은 마치 웰메이드 영화의 촬영장을 만들 듯 오랜 시간 인터뷰 배경과 방식을 상의했다. 젤렌스카 여사와 기자가 앉을 위치와 촬영 각도, 조명의 종류와 국기 등 소소한 소품까지 정성을 들였다.
● 차분하지만 치열한 답변
비서가 왜 굳이 인터뷰 시작 3시간 반 전에 오라고 했는지 이해가 됐다. 준비할 일이 너무 많아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인터뷰 예정 시각이 되자 집무실 앞 엘리베이터가 열리더니 젤렌스카 여사가 환하게 웃으며 나타나 기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자리에 앉아 정식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기자와 영어로 몇 마디를 나누다 “다 잘 될 것이다”라는 격려의 말을 했다. 잡기 힘든 중요한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기자의 마음을 읽은 듯했다. 기자의 질문에 “흥미로운 질문이다”라고 여러 번 호응하며 성의 있고 자세하게 답변하려 애썼다. 답변하는 태도는 차분했지만 그 내용은 치열했다. 특히 “이 전쟁이 잊혀지지 않도록 내가 오늘 당신과 만났다”는 말에서 절실함이 느껴졌다. 한국에 바라는 점을 물을 땐 원격 수업하는 아이들을 위한 노트북, 정신건강을 위한 애플리케이션과 스마트폰, 병원 재건 등을 세세하게 언급했다.
인터뷰가 끝난 뒤 기자는 한국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자필로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젤렌스카 여사는 남편이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극작가로 일했다는 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짧은 글이더라도 남다른 메시지를 주지 않을까 싶었다. 예상대로 여사는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적은 듯한 필체로 진심이 담긴 글을 전해줬다.
“친애하는 대한민국. 당신들은 키이우에서 7000km 떨어진 곳에 살고 우크라이나인보다 7시간 일찍 해를 맞이하지만 지난 12개월 내내 바로 우리 옆에 있었던 것처럼 느낍니다. 지원에 감사드리고 지원이 더 강해지길 희망합니다.”
이런 진심이 널리 전해지도록 동아일보와 채널A는 지면에서 편집된 인터뷰 전문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방송엔 나가지 못한 젤렌스카 여사의 전체 답변을 유튜브로 별도 제작했다. 이 진심이 많은 이들을 움직여 평화를 향한 작지만 중요한 변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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