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탱크에 뭘 저리 덕지덕지 붙였을까.” 지난해부터 계속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뉴스 영상이나 사진을 보면서 많은 이가 가졌을 법한 궁금증일 것이다. 우크라이나군, 러시아군을 막론하고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상당수 전차에는 쐐기형의 금속 덩어리나 벽돌 모양의 금속 물체가 지저분하게 붙어 있다. 심지어 일부 전차는 철근을 그물 모양으로 용접해 마치 파라솔처럼 포탑이나 차체에 붙이고 다니기도 한다. 일견 흉물 같고, 승무원의 시야도 가리는 외부 구조물을 전차에 부착한 까닭은 뭘까.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전차 생존을 위해서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 전차의 차체나 포탑 외부에 붙어 있는 금속 물체는 ‘증가장갑(improvised armour)’으로 불리는 일종의 갑옷이다. 전차의 기본 장갑만으론 적 대전차 무기의 공격에 생존을 장담할 수 없기에 방어력을 높이고자 외부에 덧댄 장갑이다.
전차가 두르는 갑옷 ‘증가장갑’
양국 군대가 가장 널리 사용하는 벽돌 모양의 증가장갑은 1980년대 초부터 대량 배치된 ‘콘탁트 1’ 폭발반응장갑이다. 일부 신형 전차에 부착된 쐐기형의 증가장갑은 2000년대 초부터 배치된 ‘렐릭트’ 폭발반응장갑이다. 폭발반응장갑(explosive reactive armour)은 금속재 외피 안에 둔감 화약을 충전한 장갑재다. 적 대전차 미사일이 폭발반응장갑에 명중하면 장갑 블록이 통째로 폭발한다. 그 폭발력으로 미사일의 폭발력을 상쇄시켜 전차를 보호한다.
최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기갑부대 장병들은 전차는 물론, 장갑차에도 증가장갑을 보기 흉할 정도로 붙이고 있다. 이것도 모자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모래주머니나 강철판, 도로 배수구 뚜껑까지 용접해 덧붙이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전장의 전차들은 원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모양이 제각각이다. 증가장갑을 덧대도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전차들은 너무도 무력하게 대전차 무기에 파괴된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전차 공히 증가장갑을 두르고 있지만 생존율은 상이하다. 영국 싱크탱크 국제전략연구소(IISS)가 2월 15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개전 후 1년 동안 전차의 40~50%를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보고서에서 IISS는 위성·사진·영상 등 객관적 양상을 바탕으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의 전차 손실을 파악했다. 그 결과 러시아군은 2000~2300대에 달하는 전차를 잃은 것으로 추산됐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전차 700대를 잃었지만 500대 이상을 러시아로부터 노획한 것으로 보인다. 우방으로부터 전차를 상당량 제공받은 덕에 우크라이나의 전차 보유 대수는 전쟁 전보다 오히려 늘었다는 게 IISS 측 분석이다.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의 전차 손실 양상이 이처럼 큰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이 꼽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차 교환비의 비밀은 ‘대전차 무기’에 있다. 개전 초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대규모 기갑부대 공세를 보병 휴대용 대전차 무기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당시 대량으로 사용된 미국 재블린 미사일에 ‘세인트(saint) 재블린’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우크라이나군은 1000m 이상 거리에선 재블린이나 자국산 스투그나-P 미사일을, 그것보다 근거리에선 칼 구스타프·AT4 대전차 무반동총, 그리고 판저 파우스트 3·RPG-7 등 대전차 로켓을 사용하고 있다. 이들 무기는 카탈로그 제원보다 뛰어난 관통력을 발휘하면서 그야말로 일격필살(一擊必殺) 전과를 올리고 있다.
전차·장갑차의 약점 측면과 후면
보병 휴대용 대전차 무기는 사람이 들고 다닐 수 있어야 해 중량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강력한 탄두를 장착하긴 어렵다. 칼 구스타프 시리즈나 AT4는 균질압연강판 기준 400㎜ 안팎, 판저 파우스트나 RPG 계열의 경우 600㎜ 정도의 장갑 관통력을 지녔다. 러시아군 T-90·T-80·T-72 계열 전차의 전면 장갑은 400~700㎜ 이상이고, 여기에 증가장갑을 더하면 두께가 900~1200㎜에 달한다. 이론상 우크라이나 측 보병 휴대용 대전차 무기로는 러시아 전차를 파괴할 수 없는 셈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개전 초부터 지금까지 러시아군 전차가 우크라이나 각지에서 보병용 경량 대전차 무기에 그야말로 펑펑 터져나가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 전차를 족족 잡아내는 비결은 전차 정면이 아닌 측면이나 후면을 노리기 때문이다. 전차와 장갑차는 대부분 전면 장갑이 매우 두꺼운 대신 측·후면이 얇다. 두꺼운 전면 장갑, 그보다 얇은 측·후면 장갑은 세계 전차 및 장갑차 설계의 대세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일부 국가의 기갑장비를 제외하면 말이다. 그 때문에 세계 최강 장갑 방어력을 갖췄다는 미국 M1 에이브람스 시리즈조차 구형 RPG-7 대전차 로켓에 측면을 맞고 파괴된 사례가 많다.
이쯤에서 “측·후면 장갑도 두껍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전차 사방의 장갑을 두껍게 하면 무게가 너무 무거워져 기동성이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피탄 가능성이 높은 앞부분 방어력 강화에 집중하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전차는 장거리 이동 시 차량이나 기차에 실려 수송되므로 설계 단계부터 도로, 철도 폭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전차 너비는 3.6~3.8m를 넘기기 어렵다. 그에 비해 길이 제약은 덜하기에 포탑이나 차체 전면부 장갑은 두껍게 설계하고 증가장갑도 덕지덕지 붙일 수 있다. 장갑 두께를 안쪽으로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다. 전차 내부의 여러 장비가 차지하는 공간과 승무원이 활동하는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방어력을 포함한 전차 스펙은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비슷하다. 결국 주먹에 해당하는 대전차 무기 성능이 양국군 전차의 생존을 좌우한 것이다. 그 결과 러시아군 전차는 보기 흉할 정도로 사방에 증가장갑을 덕지덕지 붙이고도 우크라이나군의 보병 휴대용 대전차 무기에 쉽게 파괴됐다.
北 대전차 무기 위협에 노출된 韓 기갑부대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큰 코 다친 러시아군의 처지를 남 일로 치부하긴 어렵다. 한국군 전차의 방어력 부족과 유사 시 전개될 한반도 전장 환경 때문이다. 북한군은 분대 단위까지 대전차 로켓을 지급할 정도로 대전차 화기 보급률이 높다. 시가지와 산악지대가 많은 한반도 전장 환경은 대전차 보병이 매복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달리 말하면 전차가 생존하기엔 극악한 환경이라는 것인데, 한국군 전차는 이에 대한 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
한국군 주력 전차인 K1 계열의 정확한 장갑 소재 및 두께는 기밀이다. 다만 국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몇 차례 공개된 대략적 수치는 포탑 측면 기준 최대 400㎜ 정도다. 북한군 대전차 무기인 7호 발사관 개량형은 물론, 기본 모델로도 간단히 관통할 수 있는 두께다. 보병 휴대용 대전차 무기는 기본적으로 대전차고폭탄(HEAT)을 탄두로 쓴다. HEAT는 화약 모양을 오목하게 만드는 성형작약 설계로 폭발력을 특정 방향에 집중시킨다. HEAT 탄두는 목표물에 명중되는 순간 앞부분 고깔 모양의 중심부로 폭발력이 쏠리면서 엄청난 온도와 속도를 가진 메탈제트(metal jet)를 만들어낸다. 메탈제트가 전차 장갑판을 녹이면서 관통하면 전차 내부는 불바다가 된다. 전차 안에는 연료와 탄약 등이 있기 때문에 HEAT 탄두에 맞으면 연쇄 폭발이 일어난다. 일단 피격된 전차 승무원이 생존할 가능성은 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한국군은 K1 계열 1027대, K1A1/A2 계열 484대, K2 260대, M48 계열 500여 대를 비롯해 약 2300대에 달하는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K1과 M48 계열 전차 대당 4명, K2는 3명이 탑승하므로 한국군 전차 승무원만 9000여 명에 달한다. 북한군은 1개 분대(12명)마다 7호 발사관 2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9000여 명에 달하는 우리 장병이 유사시 북한군 대전차 화기의 위험에 노출되는 것이다.
능동방어체계 도입 시급
장갑차로 눈을 돌리면 대전차 무기 대비책이 더 부실하다. 한국군은 12인승 K200 장갑차와 K808 장갑차를 각각 1700대, 600대 보유하고 있다. K21 보병전투장갑차도 500대 가까이 있다. 이들 장갑차에 탑승하는 승무원과 기계화·차량화 보병의 수는 단순 계산해도 3만 명이 넘는다. 장갑차의 장갑 두께는 전차보다 훨씬 얇다. 어떤 대전차 무기에라도 맞는 순간 불덩이가 되기 십상이다. 내부에 탑승한 병력은 도망칠 겨를도 없이 죽거나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군은 소형전술차량을 대거 도입하는 등 기계화·차량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력 강화라는 순기능이 있지만, 유사시 매복한 적 대전차 보병의 공격에 노출될 위험성도 덩달아 커질 수 있다.
물론 해결책은 있다. 전차와 장갑차 모든 면에 소형 레이더를 달고, 대전차 무기가 감지되면 요격탄을 발사해 막는 능동방어체계가 그것이다. 이스라엘의 ‘트로피’ ‘아이언 피스트’ 등이 대표적인 능동방어체계다. 이들 시스템은 실전에서 50m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발사된 RPG-7을 감지해 요격했을 정도로 성능이 우수하다. 한국도 10년 전 K2 전차 개발 과정에서 비슷한 능동방어체계인 KAPS를 개발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군의 현용 K2 전차 가운데 이 장비를 제대로 탑재한 사례는 없다. 생소한 무기체계라서 관련 교리 및 전술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가격도 한 세트에 20억 원에 달해 군 당국이 도입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론 K2 전차 성능 개량 때 KAPS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긴 하다. 전차 2300대에 KAPS를 장착하려면 단순 계산해도 5조6000억 원, 3000대 넘는 장갑차까지 적용 범위를 넓히면 12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필요하다.
전차 기준 4명, 장갑차 기준 12명인 우리 군 장병의 소중한 목숨을 지킬 수 있다면 차량 1대에 20억 원이라는 비용이 과연 비쌀까. 이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대전차 무기에 덧없이 쓰러져가는 러시아군 장병들을 보면서 한국 정부와 군 수뇌부의 인식이 달라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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