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부터 집권 친러성향 여당
‘언론통제법’으로 친러 강화 추진, 시민들 격렬 저항에 일단 “철회”
한쪽으로 기울 땐 러 개입 가능성… 러, 우크라 ‘친서방’에 크림 합병
옛 소련 연방이었던 조지아의 집권 여당이 해외 지원을 받는 언론과 시민단체를 통제하는 법안을 추진하다 “러시아식 악법에 반대한다”는 시민들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집권당이 국내외의 반발에 못 이겨 법안 철회 의사를 밝히긴 했지만 이번 사태로 2008년 러시아의 조지아 침공 이후 이어져온 조지아의 반(反)러시아 여론이 또다시 고조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4년 러시아에 크림반도를 강제합병당한 우크라이나와 같은 신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 “언론-NGO 억압하는 러시아식 악법”
미국 CNN 등에 따르면 8일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의회 앞에서는 수만 명이 모여 ‘외국대행기관법’을 철회하라는 규탄 시위를 벌였다. 이 법은 언론과 비정부기구(NGO) 중 연간 수입의 20% 이상을 해외에서 지원받는 단체 및 개인에게 ‘외국대행기관(foreign agent)’ 등록을 의무화하고 자금 내역 등을 제출할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위반 시 최대 5년 이하의 징역형이 부과될 수 있다. 이 법안은 7일 조지아 의회에서 집권 여당 ‘조지아의 꿈’의 주도하에 1차 독회(심의)에서 76-13의 압도적 표차로 통과됐다. 조지아의 경우 3차 독회를 거쳐 법안이 통과된다.
이 법안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재집권한 2012년 러시아에서 통과된 ‘외국대리인법’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러시아는 당시 정치활동에 참여하며 해외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는 단체들을 외국대행기관으로 등록해 엄격한 규정을 준수하도록 했으며 이후 등록 대상을 개인으로까지 확대했다. 러시아는 이 법을 악용해 러시아의 언론과 시민사회를 억압해 왔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2년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출신 비지나 이바니슈빌리의 주도로 창당된 ‘조지아의 꿈’은 러시아에 실용주의 노선을 택하고 있는 친러시아 성향의 정당이다. 내각제인 조지아에서 2012년부터 집권을 시작해 현재까지 집권당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과거 소련의 지배를 받은 조지아는 반러시아 감정이 높은 국가 중 하나다. 2003년 ‘장미혁명’을 통해 친러시아 정권을 몰아내기도 했다. 특히 2008년 러시아가 친러시아 분리주의 성향이 강한 남오세티야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조지아를 침공한 이후 양국은 단교했다.
이번 사태는 2014년 대규모 친서방 시위 이후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합병으로 이어진 우크라이나 사태와 유사하다는 시각이 많다. 2013년 11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당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럽연합(EU) 가입 논의를 전격 중단하고 친러시아 노선으로 선회하자 우크라이나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대규모 ‘유로마이단 혁명’이 일어났다. 이후 우크라이나에서 친서방 세력으로 정권이 교체됐으나 러시아가 이를 빌미 삼아 크림반도를 침공했다.
● 시민 저항에 집권당 법안 철회했지만…
외국대행기관법 1차 통과 소식이 알려지자 국내외에서 거센 반발이 일었다. 조지아 시민들은 의회 밖 장벽을 무너뜨리거나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등 강하게 저항했다. 무소속 출신 살로메 주라비슈빌리 조지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시위대에 지지를 표명한다”며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주제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성명을 통해 “EU의 가치와 기준에 맞지 않는 이 법이 최종 통과될 경우 조지아와 EU의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집권당은 이에 9일 “(해당 법안이) 사회적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조건 없이 법안을 철회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민들은 계속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시민운동가인 헬렌 호슈타리아는 트위터에 “여당 측 발표를 신뢰하기 어렵다. 이번 시위는 법안 철회만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집권 여당의 친러시아 성향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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