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 일대 스타트업 ‘돈줄’로 꼽히는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갑작스런 붕괴로 미 테크 산업 전반으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워싱턴 뮤추얼 은행 파산 이후 최대의 은행 실패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2의 리먼 모먼트’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이틀 만에 멀쩡한 은행 붕괴, 무슨 일?
1983년 설립된 실리콘밸리은행은 미 서부지역 벤처캐피털(VC) 및 스타트업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은행이다. 하지만 10일(현지시간) 예금인출사태 이틀만에 자산 규모가 2090억 달러(277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은행이 순식간에 붕괴했다.
수요일인 8일 오후 대규모 자금조달 계획이 뱅크런의 빌미를 제공했다. 안전자산인 미 국채를 다량 보유한 실리콘밸리은행은 최근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인상에 따라 국채 금리 급등(국채 가격 하락)으로 시장가격과 은행 장부가의 차이가 커지자 이를 해소하고자 약 18억 달러(2조4000억 원) 손실을 보고 220억 달러(30조 원)어치의 채권 등 증권을 매각했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22억5000만 달러(3조 원) 규모의 자금 조달 계획도 발표했다. 예금은 줄어드는데 예금 이자 인상 압박으로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공포는 순식간에 확산됐다. 차입경영과 미래 가능성에 투자하는 모험적 투자에 의존하는 테크산업은 최근 고금리 국면에 자금줄이 말라가는 상태다. 테크 산업에 감원이 집중되는 이유다. 실리콘밸리 은행은 자금조달 계획은 위험신호로 받아들여졌고, 미 언론에 따르면 주요 VC들이 고객사에 예금 인출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9일 하루 동안 420억 달러(56조 원)가 인출됐고, 은행의 자금조달 계획은 실패했으며 주가는 60% 이상 급락했다.
결국 10일 오전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샌타클래라 예금보험국립은행(DINB)’라는 법인을 설립해 실리콘밸리은행의 자산을 이전 받았다.
●미 스타트업 후폭풍… “‘제2의 리먼’은 제한적”
2008년 이후 최대 은행 붕괴에 따른 후폭풍에 관심이 집중된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나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 등 미 경제계 대표 분석가들은 ‘제 2의 리먼’ 사태로 비화되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실리콘밸리 은행 고객이 미 테크 산업에 집중돼 있어 전반적 위기 전이는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안 그래도 취약해져 있는 미 테크 스타트업들이다. 미 스타트업 44% 가량이 해당 은행과 거래할 정도로 40년 동안 실리콘밸리 은행은 현지 생태계의 중심축을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예금자 보호 한도가 최대 25만 달러(3억3000만 원)으로 기업 고객으로서는 적은 규모라 당장 직원 월급도 주기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다. 월요일인 13일 연쇄 감원마저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유명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Y콤비네이터가 10일 400여개 스타트업을 긴급 조사한 결과 약 100여 곳이 “30일 이내 은행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급여를 지급할 수 없다”고 답했다. 개리 탠 Y컴비네이터 CEO는 WSJ에 “스타트업 전체가 긴장하고 있다”며 주로 신생 소규모 스타트업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FTX 사태 이후 취약해진 가상화폐 산업도 또다시 충격에 노출됐다. 11일 글로벌 최대 스테이블코인 ‘USDC’ 운영사인 ‘서클’이 4조 원대 금액을 인출하지 못했다는 소식에 미 달러화와의 1대1 연동이 깨졌다. 블룸버그통신은 “FDIC가 서둘러 자산을 매각해 13일 예금지급보호기준을 넘어서는 예금을 지급하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연방정부 차원의 구제 금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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