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지원 방안-경제협력 등 논의
수낵 “새로운 시작” 마크롱 “관계회복”
양국, 英의 EU 탈퇴 이후 갈등 빚어
英 찰스3세, 26일 佛 국빈방문 예정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 과정에서 관계가 악화된 영국과 프랑스 정상이 10일 5년 만에 정상회담을 했다. 유럽 내 ‘영원한 라이벌’로 불리는 영국과 프랑스는 브렉시트 이후 각종 현안을 두고 자존심 대결을 벌이며 감정의 골이 깊었다. 이번에 정상 간 만남을 통해 양국이 관계 개선의 신호탄을 올렸다는 관측이 나온다. 26일에는 찰스 3세 영국 국왕도 프랑스를 국빈 방문한다.
● 5년 만의 훈풍…
AFP통신 등에 따르면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날 프랑스 파리 엘리제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영국 총리의 프랑스 방문은 2018년 이후 5년 만이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양국 최대 현안으로 꼽히던 영불해협을 통한 불법 이주민 대책에 합의했다. 프랑스가 드론(무인항공기) 등을 통해 불법 이주민 순찰을 강화하고, 이를 위해 영국이 3년간 5억4100만 유로(약 7600억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동안 영국은 불법 이주민들이 소형보트를 이용해 프랑스 해안에서 영국으로 건너오고 있는데 프랑스가 단속에 손놓고 있다며 문제 제기를 해왔다. 이들은 각각 장관 7명을 대동한 채 양국 재계 인사들과도 만나 경제 협력 방안도 논의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수낵 총리와 영어에 능통한 마크롱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통역사 등 배석자 없이 둘이서만 1시간 넘게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 회담 후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수낵 총리 역시 마크롱 대통령에게 프랑스어로 “고마워요, 내 친구(Merci, mon ami)”라고 인사하며 화답했다. 양 정상은 회견 내내 어깨를 다독이거나 끌어안는 등 해빙 모드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수낵 총리는 “오늘 만남은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했고, 마크롱 대통령은 “이 순간은 아주 명백한 관계 회복의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관계 개선은 지난해 10월 수낵 총리 취임으로 어느 정도 예견돼 왔다. 수낵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 모두 40대이며 금융권 근무 경력과 정계 입문 후 단시간에 지도자에 오른 것 등 비슷한 점이 많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경제 침체에 직면한 영국이 EU와의 협력 강화를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 정치평론가 니콜라 둥간은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두 정상 모두 이념보다 실용을 강조하는 정치인”이라고 전했다.
● 브렉시트 이후 양국 충돌 잇달아
영국과 프랑스는 브렉시트 이후 안보, 경제,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갈등을 빚었다. 어업권 분쟁이 대표적이다. 영국이 영불해협 일부 해역에서 프랑스 어선 조업을 규제하자 프랑스는 2021년 영국 어선을 나포하고 영국 어선 프랑스 입항 금지, 세관 통제 강화, 에너지 공급 중단 등 보복 조치를 예고하기도 했다. 문제가 된 수역에서 프랑스인이 즐겨 먹는 조개류가 많이 잡혀 ‘가리비 전쟁’으로 불렸다.
2021년 미국 영국 호주가 3자 안보협의체 오커스(AUKUS)를 발족시키면서 호주가 프랑스와 맺은 560억 유로(약 77조 원) 규모 핵추진 잠수함 계약을 무산시키자 프랑스는 “3국이 전통적 동맹 관계를 배신하고 등에 칼을 꽂았다”며 격노하기도 했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재임 시절에는 양국 정상이 우크라이나 전쟁 해법을 두고 언론을 통해 날 선 비판을 주고받았다. 존슨 전 총리는 “마크롱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대화를 통해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는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주권국가와 국제 시장을 영구적으로 조종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마크롱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을 때에는 12일 만에야 축하 전화를 해 ‘가깝지만 먼 이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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