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은행 파산 후폭풍]
SVB 자금계획 발표뒤 뱅크런 시작… 美, 48시간만에 초고속 은행 폐쇄
테크기업들 “13일의 월요일 될라” 줄도산 우려 속 정부 지원 호소
韓금융당국, 국내시장 영향 촉각
미국 테크 기업들의 주거래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대규모 예금 인출(뱅크런) 사태 48시간 만에 폐쇄됐다.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보유한 국채 급락 등의 사태에 대응하려다가 자산 277조 원 규모의 은행이 순식간에 붕괴한 것이다. 글로벌 스타트업 업계는 줄도산 공포 속에 정부에 긴급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10일(현지 시간) 오전 미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지급 불능 사태에 빠진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지정했다. 1983년 설립된 SVB는 미 서부지역 벤처캐피털(VC) 및 스타트업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은행이다. 테크 기업 예금을 유치하고, 초기 스타트업에 대출을 해주며 미국을 비롯해 영국, 인도, 중국 등 테크 산업의 ‘자금줄’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발 금리 인상으로 SVB가 보유한 국채 가격이 급락하고, 예금 이자 부담이 커지자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을 발표한 것이 시장의 공포를 불러왔다. 8일 오후 SVB의 모회사 SVB파이낸셜그룹이 22억5000만 달러(약 3조 원) 규모의 신주 조달 계획 등을 발표하자 ‘뱅크런’이 시작됐다. 고금리로 자금 경색에 시달리던 미 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예금 인출에 나선 것이다.
9일 하루 동안 420억 달러(약 56조 원)가 인출됐고 주가는 60% 이상 급락했다. 결국 48시간 만인 10일 오전 은행 폐쇄로 이어졌다. “2008년 워싱턴뮤추얼 은행 붕괴 이후 미 역사상 두 번째 규모 은행 실패”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당장 13일부터 줄도산이 벌어질 수 있다며 서양에서 불길하게 여기는 ‘13일의 금요일’을 빗대 ‘13일의 월요일’을 우려하고 있다. 벤처 투자가 데이비드 색스는 트위터에 “월요일 전에 ‘모든 예금이 안전하다’고 발표하지 않으면 위기는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사태가 팬데믹 거품과 고금리의 영향임을 감안하면 부동산 대출은행 등이 다음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SVB의 고객이 테크 업계에 한정돼 2008년 리먼브러더스 부도로 금융시스템 전반이 붕괴하며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했던 것처럼 ‘제2의 리먼 모먼트’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우리 금융당국도 국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승헌 한국은행 부총재, 최상목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12일 정례 간담회를 열고 SVB 사태에 대해 집중 점검했다. 금융당국은 “이번 SVB의 유동성 위기가 은행 폐쇄로 확산되면서 금융시장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SVB 주식 약 10만 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주식 가치가 304억 원가량이지만 9일 주가 폭락으로 반 토막이 났다.
美 금융위기 후 최대규모 은행 폐쇄… 스타트업 줄도산 우려
‘실리콘밸리 돈줄’ 파산 자산 277조원 美 16위 대형은행 가파른 금리 인상에 투자손실 커져 “美 금융 전반 위험으로 확산 안될것” “부동산 대출은행 등 위험” 의견 갈려
미국 테크 산업의 ‘자금줄’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의 갑작스러운 붕괴는 팬데믹 거품과 가파른 금리 인상이 주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부실대출’에서 비롯됐다면 이번 사태는 유동성이 넘쳐나던 시장이 갑작스러운 자금 경색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빚어졌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발 고강도 긴축 1년 만에 벌어진 대규모 은행 실패가 글로벌 시장에 미칠 파장에 각국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277조 원 규모’ 은행 붕괴 어떻게 벌어졌나
10일(현지 시간) SVB의 붕괴에 실리콘밸리는 충격에 빠졌다. 자산 규모 2090억 달러(약 277조 원), 총예금액 1754억 달러(약 232조 원)에 달하던 대형 은행이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이다.
SVB는 최근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예금이 급증했다. 2020년 1분기(1∼3월) 총예금 600억 달러에서 2022년 1분기 약 2000억 달러 수준으로 늘었다. 비대면 산업 확산으로 테크 기업의 수익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장된 미국 벤처캐피털(VC) 지원 테크·헬스 분야 기업 중 44%가 SVB의 고객이라 다른 은행보다 예금이 더 크게 늘었다.
SVB는 다른 일반 은행처럼 예금 금리보다 높은 금리로 대출을 해주는 방식의 ‘예대 마진’을 통한 수익은 별로 내지 못했다. 투자금이 넘치는 테크 기업들이 SVB에서 돈을 빌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SVB는 안전 자산인 미국 장기 국채에 주로 투자했다. 하지만 지난해 3월부터 이뤄진 연준의 고강도 긴축 속에 국채 가격이 급락했다. 손실은 커졌고 금리 인상에 따른 예금 이자 상승 부담까지 겹쳤다.
SVB는 8일 유동성 확보를 위해 22억5000만 달러(약 3조 원)의 대규모 자금 조달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치명적 악재가 됐다. 은행 예금 지급 능력에 어려움이 있다는 신호에 주 고객인 스타트업들이 대규모 인출에 나선 것이다. 테크 산업은 최근 지속된 고금리로 자금줄이 말라가는 상태라 공포감이 더욱 컸다. 그 결과 9일 하루 동안 420억 달러(약 56조 원)가 빠져나갔다.
● “제2의 리먼 오나” vs “확산 없을 것”
2008년 금융위기는 부실 채권에 기반한 파생상품이 금융사 전반으로 확산된 상태에서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 파산이 도화선이 돼 벌어졌다. 당시 미 최대 은행 실패로 기록된 워싱턴뮤추얼 은행은 주택 관련 대출 비중이 높아 결국 문을 닫았다.
래리 서머스 미 전 재무장관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리먼 사태와 달리 SVB는 (예금 지급 불능 위험이) 테크 산업에 집중돼 있어 미 금융 전반으로 위험이 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미국 주요 은행들은 일반 소비자 비중이 높고, 신용카드 등 사업이 다각화돼 있어 SVB에 비해 위험이 분산돼 있다. 미국 정부도 은행의 연쇄 도산 우려를 차단하기 위해 SVB 뱅크런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발빠르게 파산 조치에 들어갔다.
하지만 팬데믹 거품 영향으로 이미 가상화폐 산업이 줄도산 위기를 겪은 만큼 다음은 부동산 대출은행 등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VC인 퍼스트마크캐피털의 릭 하이츠만 창업자는 “40년간 스타트업 생태계의 한 축이었던 SVB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면 또 무엇이 추락할지 모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대응 논의에 나섰고,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사태를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SVB 영국 지점도 파산 선언을 앞두고 있다. 이에 영국의 180개 스타트업은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에 개입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연방정부가 구제금융에 나서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와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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