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은행 위기 공포가 독일 최대 투자은행(IB) 도이체방크로 확산되며 주가가 급락했다. 독일 총리가 “도이체방크는 크레디트스위스(CS)와 다르다”고 이례적으로 민간 은행을 비호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은행 위기가 길어질 것이라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24일(현지 시간) 독일 증시에서 도이체방크 주가는 장 중 14% 이상 급락하다 최종 8.5% 하락했다. 독일 내 도이체방크의 라이벌 은행 코메르츠방크 주가도 이날 9% 떨어지는 등 유럽 은행 전반으로 시장 불신이 증폭되며 유로스톡스600 은행지수도 3.8% 하락했다.
부도 가능성을 가리키는 도이체방크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최근 급등하면서 주가가 빠졌다. CDS 프리미엄은 22일 1.34%포인트에서 23일 2.03%포인트로, 24일 2.2%포인트로 올랐다.
도이체방크는 각종 스캔들 속에 구조조정 위기를 거쳤지만 2019년 이후 재무건전성이 건강한 은행으로 꼽혀 왔다. 하지만 스위스 1위 투자은행 UBS가 CS를 전격 인수하면서 170억 달러 규모 신종자본증권인 AT1(코코본드)이 전액 상각 처리돼 휴지 조각이 된 것이 시장 공포를 증폭시켰고 AT1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도이체방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 대형은행 씨티그룹은 “비이성이 지배한 시장이 희생자를 찾고 있다”며 은행 위기 공포가 건강한 은행까지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CS 코코본드에 놀란 투자자, 위기설 돌자 도이체방크株 투매
글로벌 은행 위기 확산
CS 22조 코코본드, 모두 상각처리 ‘보유채권이 0원 될수도’ 공포 확산 美중소은행 2주새 716조원 유출 월가 “비이성이 시장 지배” 경고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가 촉발한 은행 위기가 상대적으로 건강한 독일 도이체방크에까지 미친 것은 투자자 공포가 극에 달했음을 알리는 방증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스위스 1위 은행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 과정에서 약 170억 달러(약 22조 원) 규모 코코본드(조건부 전환사채)의 일종인 AT1이 모두 상각 처리돼 휴지조각이 되면서 또 다른 불씨로 남았다. AT1 발행이 집중된 유럽은행, 그중에서도 CS처럼 구조조정 위기를 겪은 도이체방크가 ‘다음 위기 은행’으로 지목된 것으로 보인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4일(현지 시간) “CS처럼 수년간 위기를 겪은 도이체방크에 대해 소셜미디어에서 (위기라는) 언급이 급증하며 ‘우려 은행’으로 지목돼 주식 투매 현상이 빚어졌다”고 분석했다.
● 코코본드발(發) 공포 확산
코코본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은행 실패를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자자들이 은행 위기 시 ‘구제금융’ 역할을 하도록 설계된 채권을 말한다. 유럽에서 소개돼 주로 유럽과 아시아 은행들이 발행해 온 채권이다.
코코본드는 파산 변제 순위가 일반적으로 채권보다 뒤지지만 주식에는 앞섰다. 하지만 스위스 당국이 CS 주주에게 UBS 주식을 일정 비율로 교환해 주면서 코코본드는 상각해버려 ‘은행이 순식간에 파산하면 보유 채권값은 0이 될 수 있다’는 공포를 남겼다. 유럽중앙은행(ECB) 영국은행 등은 CS 코코본드 상각은 스위스 당국의 결정일 뿐, 유럽연합(EU)과 영국에선 변제 순위를 지킬 것이라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미국 중소형 은행 대규모 인출 위기, 유럽 은행 채권 상각 위기가 겹치며 불안은 깊어지고 있다.
보통주자본(CET1) 대비 AT1 채권 비율이 유럽 평균(16%)보다 높은 바클레이스(28.2%) 소시에테제네랄(20.7%) 스탠다드차타드(19%) 도이체방크(17.7%) HSBC(16.6%) 같은 은행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다. UBS의 CS 인수 이후 유럽 은행주 중심으로 주가가 급락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 ‘찍히면 공포’ 확산 주가 와르르
SVB 파산 사태 전부터 대규모 예금 인출과 손실 누적에 시달린 CS와 달리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순수익이 전년 대비 159% 상승한 50억 유로(약 7조 원)를 기록했다. 2007년 이후 가장 큰 규모였다.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도 142%로 유동성이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벨기에 브뤼셀 유럽 정상회의에 참석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24일 기자들에게 “유럽 은행 시스템은 안정적”이라며 “도이체방크는 CS가 아니다. 수익성이 좋은 은행”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도이체방크는 AT1 비중이 높은 데다 CS처럼 돈세탁 혐의를 비롯해 각종 스캔들에 연루된 전력이 있어 ‘우려 은행’ 이미지가 강해진 것으로 보인다. 또, 붕괴 조짐이 보이는 상업부동산 노출 비중이 높다는 지적과 헤지펀드들이 시장 불안 심리를 이용해 은행주 하락에 집중 베팅한 점도 영향을 줬다.
도이체방크 신용부도스와프(CDS)는 이달 초 1.0%포인트를 밑돌았지만 24일 2.02%포인트까지 치솟았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나 기업이 부도를 내도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파생상품으로 부도 위험이 높아지면 수수료 격인 CDS 프리미엄이 높아진다. 주가도 이날 장중 14%나 급락했다. 미 CNBC 방송은 시장이 “타깃을 정해 무너뜨리자”는 식의 공포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중소은행발 뱅크런 사태 우려도 지속되고 있다. 대형 은행 JP모건체이스에 따르면 최근 2주 동안 5500억 달러(약 716조 원)가 중소형 은행에서 대형 은행과 머니마켓펀드(MMF) 등으로 이동했다.
코코본드
은행 자본비율이 일정 수준 밑으로 떨어지는 등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상각되거나 보통주로 전환돼 은행의 자본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손실 가능성이 있지만 주식보다는 안전한 상품으로 여겨져 왔으나, 크레디트스위스(CS)의 코코본드 170억 달러어치가 상각 처리된 후 투자자들의 불신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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