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의 반도체 규제에 보복 조치로 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보복이 중국과 다른 나라의 ‘기술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또한 앞당길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경쟁을 조명한 세계적 베스트셀러 ‘반도체 전쟁(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 미국 터프츠대 교수가 4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의 단독 화상 인터뷰에서 중국이 지난달 31일 미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에 나서는 등 대립 강도가 날로 격화하는 양국 상황을 진단하며 한 말이다. 밀러 교수는 중국이 마이크론 조사를 넘어 대대적인 경제 보복을 가할 수 있지만 되레 중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부메랑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반도체를 포함한 각국 첨단 기술 기업의 ‘탈(脫)중국’을 부추기는 ‘대전환(Big Shift)’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중국과 한국, 대만 등 반도체 선진국의 기술 격차 또한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기업이 보유한 중국 반도체 공장에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며 10월까지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에 대해서는 “미국 또한 1년 이상의 장기적인 플랜(규제 유예)을 원한다”며 수개월 안에 규제 유예 연장 조치가 발표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음은 밀러 교수와의 일문일답.
―중국이 마이크론에 대한 조사에 나섰다.
“중국의 핵심 전략은 미국이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반도체 기술 분야를 국산화하는 것이지만 이는 어려운 일이다. 우선 중국 반도체 기업들은 핵심 영역에서 한국, 대만, 일본 기업의 수준에 크게 뒤처져 있다. 중국이 일부 진전을 이룰 수 있다 해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다만 중국이 (미국의 수출 규제에) 보복 조치로 대응할 것이냐는 질문을 한다면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내 대답이다.”
―한국과 일본 또한 중국의 보복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중국은 분명히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한 긴 보복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유럽의 여러 국가, 호주 등도 중국의 보복 조치를 겪었다. 하지만 중국의 보복은 기술 기업들이 중국 시장을 이탈하게 하는 ‘대전환’의 원인이 됐다. 중국은 미국의 규제에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중국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상실하는 것 또한 원치 않는다. 보복 조치에는 비용이 뒤따른다. 중국의 보복 조치는 기술 디커플링을 가속화할 수 있다.”
―미 일각에서는 첨단 반도체는 물론 범용(레거시) 반도체로도 반도체 규제를 확대하자는 주장이 있다.
“반도체 규제가 극적으로 확대되는 것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미국은 일본, 네덜란드와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와 관련해 상당히 미미한 수준의 합의에 그쳤다. 두 번째로 첨단 반도체일수록 장비 공급업체가 적기 때문에 수출 통제를 시행하는 것이 훨씬 쉽다. 레거시 반도체는 공급 업체의 수가 많은 만큼 수출 규제가 어려울 것이다.”
―한국이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에 동참해야 하나.
“현재 수출이 금지된 반도체 장비를 생산하지 않고 있는 한국이 동참할 필요는 없다. 특히 한국에는 (중국의) 보복 우려 등으로 수출 규제 동참에 대한 신중한 분위기가 있다. 현재 수출 규제의 핵심은 미국이 먼저 움직여 (중국의) 비판을 집중시킴으로써 일본과 네덜란드에 대한 중국의 보복을 가능한 한 줄이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감안할 때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는 현재의 비공식적인 3국 체제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공장을 둔 한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 유예 연장 전망은….
“한국과 미국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해 왔다. 양측 모두 1년간의 유예보다 장기간의 플랜을 원하는 것으로 안다. 몇 달 안에 장기적인 (유예) 플랜이 발표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반도체 보조금을 미끼로 각국 기업에 지나친 기밀을 요구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반도체법은 기업들에 대규모 보조금을 제공하는 대신 일부 제한 사항과 요구 조건을 내놨다. 하지만 상무부는 이를 엄격한 요건이라기보다 권고나 제안으로 표현하고 있다. 논란에 휩싸인 요구들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조건이 아니라 일종의 선호 조건이다. 따라서 상무부와 기업들이 구체적인 보조금 구조에 대해 협상을 하게 될 것이다. 일부 조항은 지나치게 비용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그러나 보조금 규모가 상당히 크므로 대형 반도체 기업은 보조금을 신청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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