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셨으면 시동 금지’ 후… 美 사망자 19% 줄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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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 생명 지키는 M-Tech]
〈1〉 음주운전, 첨단기술로 원천봉쇄

본보 윤다빈 기자가 10일 경기 파주시 알코올 전용 감지 센서 장비 생산업체에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체험하고 있다. 맥주 두 잔을 마신 기자는 음주측정기에 ‘BLOW(불라)’ 표시를 보고(왼쪽 사진). 기기에 숨을 힘껏 불어넣었다(가운데 사진). 그러자 경고음이 울리면서 측정기에 ‘FAIL(실패)’ 표시가 나오더니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본보 윤다빈 기자가 10일 경기 파주시 알코올 전용 감지 센서 장비 생산업체에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체험하고 있다. 맥주 두 잔을 마신 기자는 음주측정기에 ‘BLOW(불라)’ 표시를 보고(왼쪽 사진). 기기에 숨을 힘껏 불어넣었다(가운데 사진). 그러자 경고음이 울리면서 측정기에 ‘FAIL(실패)’ 표시가 나오더니 자동차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삐삐삐….”

10일 경기 파주시의 알코올 전용 감지 센서 장비 생산업체 센텍코리아.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가 부착된 차량에 올라 장치에 숨을 불어넣자 요란한 경고음이 귓가를 때렸다. 차량 밖에서도 들릴 만큼 큰 소리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동 버튼을 눌렀지만 엔진은 요지부동이었다. 음주 측정기에 ‘FAIL(실패)’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떴다. 500cc 맥주 두 잔을 마시고 체험용 차량에 올랐던 기자는 실제 음주운전이 적발된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이 같은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는 국내에는 아직 도입되지 않고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 교통 선진국에선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음주운전 범죄 전력이 있거나 안전운전이 각별히 요구되는 통학버스 및 화물차 등 운전자에게 장치 설치를 의무화하는 식이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시동이 걸리지 않기 때문에 음주운전 재발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에 따르면 미국 교통사고 사망자 10명 중 3명이 음주운전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2020년 한 해에만 음주운전 사고로 1만1654명이 사망했다. 45분마다 1명꼴로 사망자가 생기는 셈이다.

미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미국 36개 주에서 법률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 전역에 35만 개 이상의 시동잠금장치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10년 전(13만3000개)의 약 3배로 늘어난 것이다.

1986년 미국 최초로 시동잠금장치를 도입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2017년 음주운전자 차량에 시동잠금장치 설치를 의무화했다. 뉴욕주에선 혈중알코올농도 0.08%를 넘기면 사고 유무와 상관없이 최소 1년 동안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하도록 했다. 미 권력 서열 3위였던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의 남편 폴 펠로시도 지난해 5월 음주운전이 적발돼 법원으로부터 벌금 1700달러(약 220만 원)와 함께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설치 명령을 받았다.

음주운전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다 보니 예방 효과도 뛰어나다. 미국은 시동잠금장치를 엄격히 요구하면서 음주운전 사망자가 약 19% 감소했다.

음주운전 적발 후 시동잠금장치를 설치한 미국 캔자스주의 50대 남성 마이클(가명) 씨는 “술을 한 잔이라도 마시면 시동을 걸 수 없는 셈”이라며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그때마다 내가 했던 선택이 얼마나 끔찍했던 일인지 되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교통사고 사망자 4명 중 1명이 음주운전 관련 사망자인 유럽연합(EU)도 시동잠금장치 도입에 적극적이다. 유럽교통안전위원회(ETSC)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벨기에,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리투아니아, 폴란드, 스웨덴 등에선 음주운전 유죄 판결을 받으면 운전 금지와 시동잠금장치 설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특히 EU는 지난해 7월부터 출시되는 모든 차량에 시동잠금장치를 표준으로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안토니오 아베노소 ETSC 사무총장은 “심리 상담, 모니터링 및 피드백과 결합하면 시동잠금장치는 생명을 구하고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평가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음주시동 잠금장치#첨단기술#원천봉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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